한 국가의 경찰이 일원적 조직으로 되어 있다는 데는 '경찰국가'의 위험이 있다. 한국에서는 검찰의 기소권 독점이 전체주의체제의 더 강력한 조건이기 때문에 그에 가려져 있었지만, 일원적 체제의 경찰은 지팡이 노릇보다 몽동이 노릇에 더 적합하게 되어 있다.

 

한국 경찰을 '국가경찰'로 만든 것은 미군정이었다. 일본 항복 후 이남 지역을 점령하러 들어온 미군은 한국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수만 명 미군 중에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난 윌리엄스 대위 하나뿐이었다.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한국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고, 지내면서 조금씩 알게 되어도 미국의 국익이나 미군의 '軍益'을 위해 묵살하게 되기가 십상이었다. 그러니 민심을 얻을 생각은 않고 힘으로만 억누르는 통치 방침에 매달리게 되었다. 총독부를 그대로 두고 군정청으로 이름만 바꾸는 등 일본의 통치 수단과 방법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그나마 일본인만큼의 이해력도 없었기 때문에 힘에 더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군 점령지역의 경찰 인원은 첫 1년 동안 두 배로 늘어났다. 일본 통치에 앞장섰던 '친일파'의 순도가 제일 높은 집단이 경찰인데, 해방 후 처단이 두려워 도망쳤던 경찰관들까지 다 불러모아 간부로 삼았다. 윌리엄스 대위의 어릴 적 친구인 조병옥을 경찰청장에 앉히고 일제시대에도 있던 지방경찰을 폐지하고 일원적 조직으로 만들었다.

 

조병옥은 1960년 대통령 선거에 이승만의 대항마로 나서서 "반 독재"의 상징처럼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민족의식도 민주의식도 박약한 인물이었다. 경찰은 임명권자에 충성해야 한다며 조선인이 아니라 미군정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1946년 10월의 대구사태, 1948년 4월의 제주사태 등은 미군정 경찰이 일으킨 수많은 분란 중 두드러진 사례들일 뿐이다.

 

이승만 정권은 철저한 경찰국가였다. 또 하나의 무력집단인 군대는 정부 수립 초기에 워낙 허약한 존재여서 경찰에게 구박받던 풍조가 여순 사태의 배경이 되기도 했고, 전쟁을 통해 덩치가 커진 뒤에도 미국의 실제적 통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국내 정치에서 역할이 자라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정부 각료 중 가장 힘있는 자리가 경찰을 장악하는 내무장관이었다.

 

5-16 후 군부정권은 중앙정보부와 검찰을 국가폭력의 핵심부로 만들면서 경찰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지만 현장 동원의 수단으로 남겨두었다. 권력의 주변부로 물러나면서 경찰은 서서히 사회를 위한 '봉사'라는 건전한 역할을 향해 옮겨가기 시작했고 1987년 이후 그 변화가 더 빨라졌지만, '권력의 주구' 역할에 대한 집착도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봉사경찰'과 '주구경찰'의 성향이 엇갈리다 보니 형편에 따라 다른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상황에 와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거리낌없이 자행하던 경찰이 촛불사태 앞에서 진중한 모습을 보인 차이가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불리한 경찰력 집행에 마주친 자유한국당에서 "자치경찰" 얘기 꺼내는 걸 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홍준표와 김성태의 헛발질 앞에서 표정관리에 바쁜 여권 인사들 심정이 이해가 간다. 주제를 살피지도 못하고 터뜨린 헛소리라도, 이 얘기는 진지하게 받아주고 싶다. 한국사회의 거대한 짐 '국가경찰'을 처리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Posted by 문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