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주재 미국대사관의 공사고문 조지 케넌이 워싱턴의 재무부로 보낸 ‘장문전보’가 냉전 이론의 초석이 된 것으로 널리 인정된다. 5,500 단어, 우리 식으로 원고지 약 100매 분량의 이 문서는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련의 본질적 침략성을 규정함으로써 미국의 냉전 정책을 뒷받침한 핵심 내용을 제2장에서 뽑아 옮겨놓는다.


크레믈린의 피해망상적 세계관의 바닥에는 전통적이고 본능적인 러시아인의 불안감이 깔려있다. 이 불안감은 원래 광대한 평원 위에서 공격적 유목민과 이웃해 사는 평화적 농경민의 불안감에서 출발한 것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적 선진국들과 접촉을 가지면서 더 유능하고 더 강하고 잘 조직된 이웃 사회들에 대한 두려움이 이 불안감에 보태졌다.

 

후자의 두려움을 품은 것은 러시아의 민중이 아니라 지배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네 지배의 형태가 후진적이고 심리적 기반이 취약하고 조작된 것이어서 서방 정치조직과의 비교나 접촉을 견뎌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 그들은 경쟁세력과의 연대와 타협보다 그 철저한 파괴를 위한 끈질기고 무자비한 투쟁을 통해서만 안보를 얻는 길을 익히게 되었다.

 

서유럽에서 반세기 동안 연기만 피울 뿐, 불길을 일으키지 못하던 마르크시즘이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활짝 피어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평화적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하는 믿음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이웃과의 우호관계라는 것, 그리고 세력 간의 관용적 균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던 이 나라에서였다.

 

공산정권이 세워진 후 이전의 러시아 지배자들보다도 더 큰 불안감을 가진 볼쉐비키들에게 레닌의 해석을 통해 더욱 투쟁적이고 편협한 형태로 바뀐 마르크시즘 교리는 불안감을 표출하는 완벽한 통로가 되었다. (...) 마르크시즘의 명분 아래 그들은 방법과 전술에서 모든 윤리적 가치를 박멸했다. 이제 그 명분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자기네 도덕적, 지성적 존엄성을 위장해 주는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되었다. (...)

 

소련의 모든 정책이 마르크시즘의 교리로 엄숙하게 치장되어야 하는 이유도, 소련의 모든 일에서 이 교리의 중요성을 경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소련의 군사력과 경찰력 증강, 외부세계로부터의 고립, 그리고 과거의 러시아 지배자들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필요로 했던 것과 같은 경찰 권력의 무한한 확대, 이 모두가 이 테제에 정당성의 근거를 가진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수백 년간 공격과 방어의 개념이 혼동되어 온 러시아 민족주의의 불안감이 연장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 국제 마르크시즘의 새 가면을 쓴 이 불안감은 전쟁으로 파괴된 참혹한 상태의 외부세계에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큰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http://en.wikisource.org/wiki/The_Long_Telegram 에서)


이념의 전문가라기보다 러시아 전통의 전문가인 케넌은 소련의 위협을 강조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전통의 맥락 안에 제한해서 보았다. 요컨대 소련에게 ‘세계정복의 야욕’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일의 냉전론자들은 소련의 위험성을 더 보편적 성격의 것으로 확대해서 보았고, 케넌은 자기 관점이 곡해되는 것을 불평했다.


국무부에서 케넌의 실제 활동에서도 이 차이가 나타났다. 케넌의 관점을 높이 평가한 마셜 국무장관은 국무부에 정책기획국을 만들어 케넌에게 맡겼고, 케넌은 이 자리에서 마셜 플랜의 시행을 지휘했다. 케넌이 대 소련 정책의 기조로 제안한 ‘containment’가 흔히 ‘봉쇄’로 번역되는데, 케넌 자신이 기안하고 집행한 정책 내용은 봉쇄보다 ‘고립’에 가까운 것이었다. 소련을 난처한 입장에 몰아넣기 위해 동유럽 제국에까지 마셜 플랜을 제안한 것, 서유럽 좌익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사회주의 정당을 지원한 것 등이 케넌 정책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1949년 초 국무장관이 애치슨으로 바뀌고 미국의 대 소련 정책이 경화되면서 케넌의 노선이 배제되기 시작했다. 케넌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고, 독일 재무장에 반대했고, 한국전쟁에서 38선 이북으로의 진공을 반대했다. 1946년 당시 주 소련 대사로 그의 상관이었던 해리먼이 그를 이렇게 평한 일이 있단다. “그 친구 러시아란 나라가 어떤 나란지는 잘 아는데,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란지를 잘 모른단 말이야.”


냉전의 출발점을 1947년 3월의 트루먼 독트린으로 흔히 보는데, 나는 일본의 항복으로 본다. 트루먼 독트린은 이미 존재하던 냉전 상황을 공식화한 것일 뿐이다. 케넌의 장문전보도 새로운 상황을 만들자는 제안이 아니라 존재하는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논한 것이므로 이 관점에 부합하는 것이다.


냉전에 관한 이 관점과 부합하는 것이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다. 그는 냉전의 출발점도 1945년 7월 미국의 원자폭탄 확보로 본다. 제2차 세계대전의 양대 승자인 미국과 소련이 전후 세계 패권의 양대 축이 될 것은 필연이었는데, 원자폭탄의 등장이 두 슈퍼파워 사이에 비대칭 요소로 나타났고, 이것을 중심으로 냉전 체제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Eric Hobsbawm, <The Age of Extremes> 225-237쪽)


우리의 해방공간 초기부터 냉전 논리가 이미 작용하고 있었다고 나는 본다. 냉전에 대한 홉스봄의 관점은 아마 한국전쟁에 대한 커밍스의 관점과 마찬가지로 ‘수정주의’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냉전시대 서방의 표준적 관점, 이른바 ‘고전주의’ 관점을 뒤집는다는 의미에서다. 수정주의가 반대편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고전주의 관점에 너무 편향적으로 노출되어 온 우리 사회에서는 설령 지나치는 점이 있더라도 한 차례 충분히 흡수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홉스봄이나 커밍스의 관점에는 지나치는 점이 별로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냉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희생을 요구한 상황이었으므로 그 상황을 누가 빚어냈느냐 하는 책임론이 냉전 관계 논의의 한 중요한 축이다. 고전주의 관점에서는 소련과 공산주의의 침략 야욕에 궁극적 책임을 둔다. 홉스봄은 미국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대외정책에 초점을 맞춘다. ‘냉전의 아버지’로 미국에서 통해 온 케넌 자신이 소련의 ‘세계정복 야욕’을 부정한 것이 홉스봄의 관점을 뒷받침해 준다.


이념 대립은 양대 강국의 패권 대립을 포장한 껍데기였을 뿐이라고 보는 홉스봄의 관점에 나는 공감한다. 산업화에 앞선 서유럽 나라들이 최강국의 대열을 이루던 상황은 제1차 세계대전을 고비로 기울기 시작했다. 먼 곳에 식민지를 경영하던 나라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한편에서 국내에 실질적 식민지를 가진 나라들, 미국과 소련이 최강국으로 올라서는 변화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고비를 넘겼다. 양대 슈퍼파워의 군림은 필연적 상황이었다.


백년 전에는 ‘열강’의 꽁무니에도 낄둥말둥 하던 두 나라가 갑자기 최고 슈퍼파워로 올라서려니, 그 힘을 어떻게 휘두를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판단에 자신이 없을 때 극단으로 가버리는 경향이 있다. 케넌이 분석한 소련의 ‘불안감’도 그런 추세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해리먼의 논평처럼, 케넌이 소련의 문제는 잘 파악하면서 미국 자체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아닐지?


루스벨트 시대의 국제주의가 트루먼 시대에 국가주의로 옮겨가는 추세를 몇 차례 언급한 일이 있다. 이 변화가 바로 미국의 ‘세계패권’ 장악 과정을 비쳐 보여주는 것이다. 국제협력의 틀 속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는 방어적 자세를 자기 기준으로 길을 열어가는 패권국가의 공격적 자세로 바꾼 것이다.


새로 취하는 공격적 자세를 정당화할 명분을 소련도 미국도 필요로 했다. 소련은 마르크시즘 이념에서 명분을 찾았는데, 미국은 ‘진보성’이 없는 자본주의를 명분으로 내걸 수 없으니 막연한 ‘자유민주주의’를 내걸고 그 막연성을 보완할 구체성을 소련의 ‘세계정복 야욕’에서 찾았다. 케넌은 그 야욕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미국의 냉전 노선에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소련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 냉전론자들에게 필요한 케넌의 역할이었고, 그 위험성이 그리 큰 것이 아니라는 케넌의 설명은 그들에게 필요 없었다.


케네디가 1961년 취임 연설에서 “국가가 그대에게 무엇을 해줄지에 앞서 그대가 국가에게 무엇을 해줄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한 말에 그 당시에는 황홀해 하다가 후에 돌아보며 미국이란 나라도 참 한심한 나라였구나, 생각한 일이 있다. 케네디가 선거 과정에서 했던 이야기 두 대목을 홉스봄이 뽑아놓은 것을 보니, 1960년 미국의 국가주의와 반공주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실감나게 되돌아볼 수 있다.


“우리의 적은 공산주의 체제 그 자체입니다. 세계정복을 향해 중단 없이 나아가는 무절제하고 무한한 야욕의 체제입니다. (...) 이것은 군사력의 우위를 위한 투쟁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개의 서로 상치되는 이념 사이의 우위를 위한 투쟁입니다. 하느님 안의 자유냐, 하느님을 부정하는 잔혹한 독재냐 하는 투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키워내 1등의 자리를 되찾을 것입니다. ‘만약’이 붙는 1등도 아니고 ‘그러나’가 붙는 1등도 아닙니다. 그냥 1등입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흐루시초프 씨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습니다. 미국이 무엇을 하는지 그들이 궁금해 하도록 나는 만들고 싶습니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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