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70주년이 다가온다. 사회활동이 거의 없이 지내는 터인지라, 마음속으로나 그 의미를 한 번 되새겨보며 지나가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의견을 청하는 곳이 있다. 민족화해센터 신부님들이 70주년을 맞아 4-3사건의 의미를 공부하는 모임에 도와달라는 것이다.

 

1990년대에 학교를 떠난 뒤 제주에 가서 10년 가까이 살았던 데는 문명교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적 차이가 상당히 있었던 제주와 육지 사이의 관계를 깊이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반세기 전의 4-3사건이 제주의 역사로서 현재까지도 얼마나 큰 무게를 갖고 있는지 놀라운 마음으로 공부하며, 제주의 정체성에 특히 주목하게 된 것은 '교섭'에 내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를 떠난 후 연변으로 갔다가 돌아와 수도권에서 지내며 10년간 4-3사건을 다시 살펴볼 계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해방일기> 작업이 1948년으로 접어들었을 때, 한국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4-3사건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 보면서 몇 편의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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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 부탁을 받고 나서 이 글들을 다시 훑어보며, 이 주제의 이해를 위해 내가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측면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주제에 관한 조사와 연구는 대부분 '제주인'의 입장에서 이뤄져 왔다. 내 공부는 비교적 '외부자' 입장에서 행한 것이어서 제주와 외부 사이의 관계를 잘 살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특히 '대한민국사'의 범위를 넘어 냉전의 한 실마리로서 의미를 살펴볼 수 있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지난 10년간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며 정리한 작업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역시 그 측면이다. 물론 작업에 착수하면서 염두에 둔 측면이기는 하지만, 이제 그 작업에서 벗어나 되돌아보니 꾸역꾸역 엮어낸 성과에서 그 측면을 확인하는 마음이 뿌듯하다. 더우기 새로운 상황으로 접어들며 새로운 시각을 필요로 하는 이 사회에 내 작업 성과도 한 몫 하게 될 것을 바랄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은 확실히 좀 미련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4-3사건에 생각을 모으다 보니, 70주년을 불과 석 달 남겨놓고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내 의견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중요한 사건을 제대로 기념하려면 적어도 1년 전에는 사건의 의미가 파악되어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침 <프레시안>에 올라온 김종민 기자의 글을 보니 http://orunkim.tistory.com/1152 이 생각이 더 굳어진다. 생각난 김에 전화를 걸어 오랜만에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김 기자는 내가 제주 살 때 양조훈 국장, 김애자 기자와 함께 4-3 취재반을 구성하던 분인데 지방신문으로는 이례적인 '전문기자'라 할 수 있다. 그 역시 70주년 기념사업에 뜻을 가진 방면이 많지만 충분히 시간을 두고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위 기고문 끝에 "제주도 농민 김종민"이라고 서명을 해놓아서 의아했는데, 통화 중 내 주소를 묻기에 책을 보내주려나 생각했더니 귤이 한 상자 왔다. 이제 기자 아닌 농민이 맞나보다. 그가 보내준 알이 작은 귤, 대단히 먹기 좋다. 아침결에 먹은 껍질이 벌써 책상 위에 수북하다. 메일로 주문하면 jeju3796@hanmail.net 반가워하리라 믿는다.)

 

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생각하니, 1년 남짓 남은 3-1운동 백주년을 위한 각계의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든다. 4-3 70주년과 격이 다른 큰 계기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도 3-1운동의 의미를 넓고 깊게 되새길 필요가 있는데, 그에 필요한 준비가 충분히 잘 되고 있을까? 남의 일이 아니다. 금년 한 해, 유념해 두고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늘 생각하고 애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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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