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와서 1주일, 한국에서도 조용히 지내지만, 여기 오면 더 조용하다. 전화를 전혀 쓰지 않고 인터넷 접속도 훨씬 적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내가 어디에 서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더 차분하게 살펴볼 수 있다.

 

덕분에 떠오른 큰 생각이, 내가 이 세상에서 물러나는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겪어온 변화들의 의미를 그 기준으로 되짚어보니, 따로따로 생각할 때보다 더 석연하다.

 

그 방향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환갑 나이에 시작한 3년간의 "해방일기" 작업을 하면서였던 것 같다. 그런 변화의 전체적 경향은 욕심이 줄어드는 것이다. 수십 년간 무엇보다 꾸준히 좋아했던 술이 저절로 멀어졌다. 체력 등 신체조건에 확연한 변화가 없는데 술 욕심이 모르는 사이에 사라진 사실이 당시에는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안경도 끼지 않고 살게 되었다. 뭔가를 정확하게 보고 많이 봐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고, 그저 보이는 만큼만 보이는 대로 사는 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멍 때리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전에는 차에든 어디든 10분만 앉아있으려면 책을 꺼내 읽어야 했다. 버스가 흔들려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는 짜증이 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에 잠기든지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 보내는 것이 별로 불편하지 않다.

 

최근 들어, 약 2년 전부터는 작업의 내용과 방식을 바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당시에는 해온 일을 더 잘할 길을 찾는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돌아보면 그게 아니었다. 공부하는 사람(學人)으로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고비에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 역시 욕심이 줄어드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일상생활에서도 욕심을 가급적 억제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왔거니와, 욕심 중에도 공부 욕심은 욕하는 사람도 없으니 마음껏 키우고 펼쳐왔다. 남들이야 학자로서 어떻게 평가를 하든 신경쓰지 않고 내 공부 욕심만 채우는 것을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자임해 왔다.

 

10년 전 본격적 저술활동을 시작하고도 욕심을 절제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우는 작업계획 하나하나가 공부를 키우는 데 첫째 목적을 두었다. 그렇게 3년 전의 "냉전 이후" 작업까지 하고 나니까 비로소 뭔가 "정리"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저술활동을 "에세이" 중심으로 하게 된 것도 이제 생각하면 "완결성"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공부를 키우려는 욕심 때문이었던 셈이다. 2년 전부터 소설도 생각해 보다가 지금은 학술연구로 마음이 쏠리게 된 것이, 이제는 공부를 더 키우기보다 키워놓은 공부를 완결성 있는 형태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따른 변화 아니겠는가.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뒤늦게 돌아보며 마음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어떤 길이든 나아갈 때가 있으면 물러설 때도 있는 것 아닌가. 수십 년 동안 욕심껏 공부를 키우며 살다가 아직 기운 있을 때 거둬들이는 자세를 갖출 수 있다면 한 학인으로서 더 바랄 것이 없다. 병법에서 "진격을 잘하는 장수보다 퇴각을 잘하는 장수가 진짜 훌륭한 장수"라 했다는데, 이제부터의 작업이 지금까지의 성과를 제대로 살려내는 정말 중요한 단계라는 생각이 의욕을 북돋워준다. 퇴각의 길에 아픔은 있을지언정 쓸쓸함은 없을 것이다.

 

퇴각의 길에 접어든 것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퇴각 일기" 쓸 생각을 했다. 얼마나 자주 쓰게 될지는 몰라도, 1주일에 한 차례는 퇴각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 나 자신 퇴각의 길에 더 일찍 매진했더라면 인생이 더 행복했으리라는 아쉬움을 곰씹으며, 읽는 분들이 퇴각에 관한 생각을 더 많이 하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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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