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균형을 잃을까 걱정되어 얼마 전부터 조선일보를 정기적으로 보고 있다. 동네 사우나탕에 들를 때마다 보고 있으니 정기구독자는 아니라도 정기관람객은 된 셈이다.

 

어제 들렀을 때 본 칼럼 하나가 마음에 걸려 집에 와 다시 찾아봤다. "'사드 배치 철회' 땐 각오해야 할 것들"이란 제목이다. 첫 문단을 옮겨놓는다.

 

다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는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중국의 강한 보복에 밀려 흔들리는 모양새다. 중국의 보복? 우리를 향하고 있는 저들의 대규모 미사일군(群)만 봐도 적반하장이지만, 중국이 사드가 군사적 위협이 못 된다는 것을 모를 리는 없다. 정작 내륙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본과 대만 지역의 초(超)장거리 레이더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으니 저의가 따로 있는 게 틀림없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12/2017021201782.html

 

중국의 미사일군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데, "우리"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는 글 끝까지 읽어봐도 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 필자에게 "우리"란 한-미 동맹을 뜻하는 것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얼핏 봐서 한국인 독자들을 가리키는 말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이 한국인 조선일보 독자들을 겨냥해서 미사일체계를 운용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사드가 군사적 위협이 못 된다는" 것을 중국이 모를 리 없다고 한다. 중국에게 위협이 되는지 어떤지를 필자는 의문의 여지 없이 알고 있는데, 시진핑 주석 이하 중국인들이 모르는 척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말이 옳다면 중국인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른 일로 볼 때 시진핑 등이 그리 이상한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필자가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드가 중국에게 군사적 위협이 못 된다는 이유로 필자가 드는 것이 너무 단순하다. "방어 무기인데?" 공격무기라면 위협이 될 수 있지만 방어무기니까 위협이 될 수 없다는 말일 뿐이다.

 

이 글을 쓴 필자 김희상은 예비역 육군중장이며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이라고 한다. 방어무기는 타국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이런 사람이 하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 사람은 MAD가 무엇이고 ABM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군인 노릇을 하고 안보문제를 연구해 왔단 말인가?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말이 현대 핵경쟁에서는 "방어가 최상의 공격"이란 말로 뒤집어진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란 말인가?

 

평화운동가 정욱식이 훨씬 더 잘 안다. <사드의 모든 것> 150쪽에 이렇게 적었다.

 

이러한 미국 주도의 MD 능력 강화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우려는 미중 간의 핵 능력 '불균형'과 맞물려 있다. 2016년 현재 미국과 중국의 핵무기 보유량 차이는 약 7000개 대 260개이다. 여기에 핵무기의 폭발력, 신속 발사 태세 여부, 핵무기 운반 수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미중 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는 건 중국이 왜 그토록 한국 내 사드 배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안 그래도 핵 능력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의 제한적인 보복 능력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는 MD를 갖게 되면, 전략적 균형이 와해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핵 능력의 완벽한 균형은 불가능하다. 미국과의 핵경쟁에서 과거 소련이 중국보다 훨씬 균형에 가까웠지만 무한경쟁을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1972년 미국과 ABM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2002년 미국이 폐기할 때까지 이 조약은 "방어무기"의 개발을 제한함으로써 핵전쟁의 위협을 억제했다. 누구도 폭력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야 폭력을 억제할 수 있다는, 현대 평화정책의 이 기본 원리를 김희상은 정말로 모른단 말인가? 아니라면 무슨 저의가 있어서 모른 척하는 것인가?

 

그 저의가 지난 주 <홍세화칼럼> "흔들리는 세계질서와 사드"에서 지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2037.html "30년 동안 북한에 비해 30배의 국방예산을 쓰면서도 전시작전권을 환수받지 못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미국에 가면서 “나, 이번에 미국에 가!”라고 말하는 대신 “나, 이번에 미국에 들어가!”라고 말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은데, 미국이 자기 나라라는 게 내면화되어 자연스럽게 “미국에 들어간다”고 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부류에게 성주군민과 김천시민, 원불교도를 비롯하여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다수 국민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염치도 없는.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상황이니 추이를 보고 논의하자”고 비켜갈 여지가 있음에도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는 그들의 행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난 주초(7일) 홍 선생 만날 때 정욱식의 책을 낸 유리창 우일문 대표를 함께 만나 막 나온 책을 얻었다. 책을 받아본 홍 선생이 이번 주 칼럼에서 결선투표제 얘기를 하려는 참인데, 사드 문제도 중요한 것이라서 어느 쪽을 쓸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묶어서 쓰시라고 권했다.

 

 

지금 야권 후보들도 사드에 관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고 있죠. 이게 결선투표제가 없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자기 노선을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표를 더 많이 의식하는 상황 때문이죠. 결선투표제가 있어야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의 후보들이 자기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고 선거에 임할 수 있겠지요. 사드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의제를 놓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홍세화칼럼> 결국 나온 것을 보니 결선투표제가 사드에 밀려버렸다. 글 끝에 "유권자 과반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라야 "조금은 더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을 뿐이다. 결선투표제 얘기는 다음 번으로 벼르고 있을 것 같다.

 

정욱식의 논지는 칼럼으로 읽어 온 것이지만 책으로 묶인 데서는 새로운 느낌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번 책은 특히 독자의 배려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것을 강하게 얘기하기보다 차분한 설명으로 그의 논지를 모르고 있던 독자들이나 회의적으로 보던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독전감"으로 몇 자 적어둔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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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16 10:43

    결선투표제나 사드같은 국가의 난이도 높은 정책이 투표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좀 과도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홍선생과, 중국처럼 최고관료들에 의한 국가정책이 결정되는 걸 선호하시는 선생님과는 의견이 극과극의 대척점에 있을 듯한데요. 그래도 두분이 대화하시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시나보죠? 아니면 살어름판을 걷는 조심스러운 대화인간요? ^|^

    • 2017.02.17 22:57 신고

      그 양반이랑 만나면 그런 소소한 주제를 놓고 토론할 여유가 없어요.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리. (더 중요한 일이 뭔지는 이 자리에 까놓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