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블랙리스트는 지금 어떻게 됐나?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악의 평범성'과 김기춘·조윤선 김신동 한림대학교 교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0105

 

생각할 점이 많은 글을 봤다. 뉴스에서는 블랙리스트 등 국정농단에 관계된 자들의 "엽기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 뻔한 일, 이미 들통난 일을 놓고 "모른다"고 잡아떼는 모습을 보면,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저런 괴물이니까 그런 짓을 하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벌어진 일이 모두 그런 괴물들만의 소행일까? 그럴 수 없다. 블랙리스트만 하더라도 많은 문체부 직원들이 관여했다. 이 방침에 저항한 문체부 고위직 여러 명의 "학살"이 회자된다. 고위직의 다수가 학살 대상이 된 것은 당시 장관(유진룡)의 입장이 뚜렷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장관이 없었으면 "위에서" 시키는 일을 마다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 같다.

 

대개의 조직인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웬만하면 따라서 하고, 그러면서 물이 든다. 괴물의 하나로 모습을 드러낸 조윤선만 해도 그렇다. 한겨레 기사 하나가 눈에 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781296.html

 

"젠틀우먼"으로 꽤 평판을 가졌던 사람인 모양이다. 그만한 평판을 누린 사람이라면 그 평판을 지키고 키우는 쪽이 유리한 처신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박근혜의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는... 무엇을 물어도 무조건 모른다고 대답해야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권력자의 편이 되기 위해 자기 기준을 조금 양보해야 한다는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비슷한 괴물이 되어 버리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을까?

 

폭력행위가 있을 때 피해자의 피해는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가해자 자신의 피해가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일 수 있다. 물론 "정의"의 차원에서는 피해자의 책임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 쪽의 문제를 더 세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응징"을 넘어 "교정"의 효과까지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거 새누리당에 속했던 사람들의 재활용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민감한 문제다. "附逆"의 의미를 넓게 잡으면 그 당에 속한 사람들은 면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당정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당 감싸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다만, 드러나고 있는 수준의 헌정 유린의 상황 또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박근혜 편을 들었다면 심각한 부역행위다.

 

김무성은 분당 즈음에 박근혜의 문제점을 웬만한 선수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 일이 있다. 그럴싸한 얘기다. 다른 사람이 한 얘기라면 나도 곧이들었을 거다. 그런데 조그만 득실을 위해 아무 짓이나 태연하게 저지르는(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낭독 등) 그의 행태가 마음에 걸린다. 자기만큼 훤히 알고 있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자기 패거리로 엮으려는 "물타기" 수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른 든다.

 

지난 주 "썰전"에 나온 유승민 얘기가 더 그럴싸하다. 어느 단계에서는 박의 최측근에 있던 그가 보기에, 박의 위상이 강화되는 데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멀어지게 되었다는 해명이 그 자신의 행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 단계에서 "친박 좌장" 행세까지 하던 김무성이 아직 쪼무래기였던 유승민보다 알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새누리당에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바른정당으로 갈라져 나온 사람들도 재활용율이 내 희망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내 관찰력이나 판단력이 시원찮은 문제도 있겠지만, 가해자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노력이 이 사회에 부족한 것도 한 가지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신동 교수는 블랙리스트가 김기춘과 조윤선이 만든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지난 십 년 가까이 한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의한 공포 정치에 흔들렸고 언론인을 탄압하고 언론을 길들이는 만행에 항거하지 못한 대가를 결국 박근혜 국정 농단을 통해 엄청난 비용으로 치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블랙리스트 체제"가 최근 10년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덧붙이고 싶다. "블랙리스트 체제"는 식민지시대 이래의 "공공성 없는 정치"가 낳은 산물이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