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이 마테오 리치 서세 400주년이었다. 누구 출생 몇백 주년, 서거 몇백 주년 등 큰 기념이 있을 때는 연구자들도 그에 맞춰 연구성과를 발표하려고 애쓴다. 주목을 많이 받으려는 속셈도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야 연구 지원을 확보할 기회도 많고, 특정 주제에 관한 연구가 집중됨으로써 연구활동의 한 획기를 만들게 되는 효과도 있다.

 

마테오 리치 연구는 내게 문명교섭사 공부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마 교수직에 남아 있었다면 해외 학자들과의 교류에서 내 몫의 공헌을 계속하기 위해 연구 영역을 점진적으로 옮기고 넓혀 나갔을 것이다. 연구비 확보하기에도 좋은 방향이다.

 

그런데 나는 학교를 떠나고 학회활동도 중단하면서 교류나 지원을 도외시하고 개인적 판단에 따라 공부 방향을 빠른 속도로 옮기며 넓혀 나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시적 관점을 세울 수 있었고, 그 관점에서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0년간 활발한 저술활동은 그래서 가능한 것이었다.

 

근년 들어 저술활동의 효과를 비판적으로 반성하면서 향후 활동방향을 여러 모로 궁리하다 보니, 일단 양적 측면보다 질적 측면을 중시할 마음이 든다. "이런 이야기도 이 사회에 필요한 거야." 하는 기준으로 할일을 생각해서는 할일이 너무 많다. 가치가 인정되는 일 중에서도 다른 사람이 하기 힘든, 꼭 내가 할 일을 가려낼 필요가 있다. 가려내는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차적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가진 주제라야 능동적 공부가 가능한 것이니까. 그래서 "爲己之學"의 기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마테오 리치의 적응주의 노선은 내가 한국인의 관점에서도, 동아시아인의 관점에서도, 세계인의 관점에서도 흥미를 느낀 주제였다. 이후 내 문명교섭사 공부는 적응주의 원리를 중심에 두고 계속 펼쳐졌다. 그런데 이 주제를 가장 치밀하게 고찰했던 연구 영역을 별로 돌아보지 않게 된 것은 내가 네트워크를 떠나 혼자 틀어박혀 공부하며 지내게 된 상황 때문이었다. 내가 공부 성과를 언론과 출판을 통해 발표하는 곳이 한국사회인 만큼 한국 독자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범위로 작업이 쏠리게 되고, 그래서 한국근현대사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번에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모처럼 치밀하게 검토하며 살펴보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을 참 잘 담은 글이다. 지난 십여 년간 관계된 연구성과가 나온 것을 아직 잘 살펴보지 못했지만, 리뷰를 살펴보니 내가 추구한 방향의 연구는 많지 않고, 내 "이야기"를 확충할 만한 자료는 꽤 나온 것 같다. 최근 연구성과를 수용해서 이 논문을 더 좋은 읽을거리로 만드는 작업이 매우 중요한 일로 생각된다. 금년 한 해는 마테오 리치와 함께!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