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補儒易佛論科學활동

 

 

1절 리치의 易佛論

 

리치는 중국에 들어오면서부터 불교 공격을 시작했다.[298] <中國誌>에서 중국의 제 종교를 소개할 때 불교에 관한 설명에서 진리의 빛이 몇 가닥 그 속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불결한 허위에 파묻혀 있어서 알아볼 수조차 없을 지경이라는 것, “좋은 계율이 있어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희귀하고, 멋대로 계율을 어기는 죄는 布施나 기도를 통해 얼마든지 속죄해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299]

[298] 최소자, 명말 지식인 徐光啓의 서학수용태도(<한국문화연구원논총>52, 1987)에는 당시 천주교, 특히 초기 예수회적 전교방법은 처음 불교에 접근하였다가 곧 유교에로 접근 방향을 바꾸면서하였는데, 이는 리치 등이 중국 진입 초에 승복을 입었던 사실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느낌을 준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사비에르가 일본에 갔을 때부터(1549-51) 불교를 宿敵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리치가 肇慶에 처음 들어가서부터 불교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Gernet 상게서: 72-82에 드러나 있다. 유생 복장을 했을 때 儒家의 사상에 접근하려 애쓴 것과 달리 승복을 입었을 때는 사상적 접근이 따르지 않았다.

[299] <中國誌> 99.

그리고 이어서 중국 학인들의 관점을 빌려 불교에 대한 비난을 계속했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올 때 매우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 까닭은 영혼의 불멸성과 來世의 행복을 가르친 때문이었으나 당시 중국 학인들의 기록을 보면 이 종교가 진리에 대한 접근에서 다른 종교들보다 뛰어난 반면, 그 허구성의 극악한 병폐는 모르는 사이에 그 못지않게 빨리 퍼져나갔다고 하였다. 불교의 발전을 가로막은 가장 큰 힘은 중국 지식인들이 이 종교에 내려준 평판이었으니, 불교를 처음 받아들인 임금들이 비명에 참혹한 죽음을 맞았으며, 불교와 관계된 모든 사물이 쇠퇴하고 멸망에 이른 것이 불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300]

[300] <中國誌> 100.

승려들에 대해서도 리치의 비판에는 가차가 없다. 그 중에는 정확치 못한 것도 있고 자기중심적 관점에 얽매인 점도 많다: “(절에 사는) 승려들은 직접 노동을 통해 비용을 벌어들이기도 하지만 신자들의 보시, 또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찰의 수입원에 생계를 의지한다. 사찰의 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특별한 계층은 온 나라에서 가장 비천하고 경멸받는 계급으로 간주되며, 또 실제로 그런 대접이 합당하기도 하다. 그들의 출신은 사회 밑바닥의 찌꺼기이며, 어렸을 때 노예로서 절에 팔려온다. 하인 노릇을 하며 제자가 되고, 나중에는 자기 스승들의 신분과 수입을 계승한다. 이런 계승방법이 僧職의 보존을 위해 통용된다. 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자기 의지로 이 더러운 소굴에 끼어들 사람은 한 사람도 있을 수 없다. 제자들은 스승들의 무지몽매를 그대로 이어받는데다가 학문과 품행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도 없으니 그들의 사악한 성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나빠지기만 할 뿐이다. 이런 생활방식에 대한 예외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학문을 좋아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희귀한 몇몇일 뿐이다.”[301]

[301] <中國誌> 100-101.

宋代에 시작된 승려집단의 타락현상은 元代를 지나 明代까지 계속되어, 후기에 이르러서는 지식인으로서 불교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출가하여 僧門에 들기보다는 재가수행의 길을 걷는 이른바 居士불교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던 것[302]에 비추어 대략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1640년대에 나온 서학 책자인 <闢邪集>에 실린 際明禪師의 편지에도 오늘날의 불제자들은 이름만 있지 뜻이 없는 자들이 많으니, 外難을 계기로 하여 그들을 警悚시킨다면 불법을 위해 다행한 일이 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라 했다.[303] 그러나 達觀이나 智旭처럼 불교계만이 아니라 당대의 사상계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던 고승들에 대해서까지 심한 야유를 퍼붓는 것을 보면 무차별한 비판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302] K Ch'en, Buddhism in China (Princeton, 1964): 447.

[303] <天主敎東傳文獻續編> 910: 且今時釋子 有名無義者多 藉此外難警悚之 未必非佛法之幸也.

達觀이라는 사람은 상당한 학식을 가진, 약삭빠르고 영리한 자인데, 모든 종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이 편을 표방했다가 저 편을 표방했다가 한다. 그는 리치 신부를 만나고 싶어 했는데, 어떤 관리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기 앞에 무릎 꿇고 찾아오면 만나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뜻을 리치 신부에게 심부름꾼을 시켜 전했는데, 신부는 지체 없이 답신을 보냈다. 신부는 그에게서 배우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만약 達觀 당신이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찾아와서 배워 가라는 것이었다. 리치는 이 사람이 속한 비천한 계급과는 아무 관계도 가지지 않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었다. 사기꾼 중에도 이 사기꾼의 거만함은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허기야 사탄의 학교에서 가르쳐 준 것이 거만함밖에 무엇이 있었겠는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아무도 참아낼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정직한 사람들)은 이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 왔으며, 그의 몰락을 바라보고 있었다.”[304]

[304] <中國誌> 402.

達觀이 몇몇 편지에서 금상황제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글을 적은 것이 또한 드러났다. 그가 조심성도 없이 편지에서 황제를 비난한 것은 황제가 우상숭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어머니에게 효성이 충분치 못하다는, 중국인에게는 중요한 不德 하나를 지적한 것이었다. 심한 笞刑 끝에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죽은 후 그의 이름은 육체의 고통에 상관하지 않는다고 허황한 장담을 하는 사람의 대명사처럼 되었는데, 그는 평소의 장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매질을 당하는 어느 하찮은 인간 못지않게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다.”[305]

[305] <中國誌> 403.

그 교파의 또 하나 괴수인 智旭은 북경에서 쫓겨나 머나먼 광동성으로 추방되었는데, (그가 자리잡은 南華寺에서) 가까운 도시 韶州에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 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해남도)으로 거듭 추방되었다. 천주님이 오직 하늘에서만 권능을 가지셨다고 감히 떠들어대던 그는 그분의 권능이 땅 위에도 미친다는 사실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 배웠다.”[306]

[306] <中國誌> 404. 智旭은 선교사들이 불교를 공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천주가 하늘에서 권능을 가졌다면, 이 땅에서는 우리 神佛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하며 선교사들을 실력으로 공격할 뜻을 비쳤다고 리치가 기록한 바 있다: 같은 책 400.

虞淳熙라는 사람이 리치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가 보기에는 리치의 책에 나오는 내용이 불교와 비슷한 것이 많은데 어째서 리치는 불교 서적을 널리 읽어보지도 않고 불교를 敵對하는지 묻고, 불교 서적의 목록까지 적어 리치에게 읽기를 권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해 리치는 아주 긴 답장을 써 보냈지만, 불교를 비난하는 이유는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잘라 말했다.[307]

[307] <辨學遺牘> 맨 앞의 虞德園銓部與利西泰先生書利先生復虞銓部書. 이 편지들이 언제 오고간 것인지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16088월 아콰비바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보다 약간 앞서 있었던 일 같다.

결국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많은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리치가 불교를 배척한 궁극적 근거였다고 할 수 있다. 앞의 제12절에서 三淮화상과의 논쟁을 소개했는데, 그 논쟁의 출발점도 창조주-주재자로서 신의 존재를 둘러싼 것이었다. 三淮佛性이 만물에 遍在하는 것이며 모든 造化가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고 하는 唯心論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해 리치는 마음속의 형상과 몸 밖의 실체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형상을 수용하는 마음의 기억능력과 재현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스콜라철학의 관점에서 반박했다.[308]

[308] <中國誌> 339-343.

<天主實義>에서도 맨 앞 두 편에서 창조주-주재자로서 유일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주력했다먼저 주재자의 존재를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증명했다. 첫째는 사람들의 타고난 誠情이 하나의 절대자를 우러러보게 되어 있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어진 부모에게 바라듯 도움을 바라고 죄지은 사람은 무서운 을 가진 듯 마음이 무겁고 괴로우니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주재하는 절대자가 계신 증거라는 것이다. 둘째는 도 없고 知覺도 없는 물체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법인데 日月星辰의 움직임 같은 것을 보아도 주재자의 존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知覺은 있지만 靈性이 없는 동물들이 온갖 영리한 짓을 하는 것은 靈性을 가진 존재가 도와주는 덕분이니, 이것이 바로 주재자라는 것이다.[309]

[309] <天主實義> 29-31.

그리고는 이어서 그 주재자가 바로 창조주임을 다시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첫째 이유는 목수가 있어야 집이 만들어지듯이 모든 존재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우주 만물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가 그 제작자의 의지가 아니고서는 그토록 공교로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이유는 생물의 출생을 그 씨앗이나 알, 로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물체가 스스로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니,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310]

[310] <天主實義> 34-40.

이렇게 창조주-주재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세워놓은 다음 이를 근거로 도가의 와 불가의 을 공격한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남에게 주어서 가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이치인데, ‘이니 니 하는 것들은 스스로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들이 다른 것에게 어떻게 을 주어서 물체로 만든단 말인가?”[311] 하나하나의 물체를 놓고는 처음에 없다가 나중에 있게 된다고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체를 놓고 말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는 과연 그 사람이 없다가 태어난 이후에는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는 그 어버이가 있어서 낳아주는 것이다. 천하의 물체에 이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물체가 하나도 없이 渾然하던 시초에는 천주가 계셔서 만물의 근원을 여신 것이 틀림없다.”[312] 五常은 모양이 없고 소리가 없지만, 누가 이것을 없는 것이라 하는가? 無形한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처럼 서로 다른 것이다. 이것()으로 가르침을 삼는다면 세상을 밝히기는커녕 오히려 더 어둡게 만들 것이다.”[313]

[311] <天主實義> 72: 己之所無 不得施之於物以爲有 此理明也 今 曰空曰無者 絶無所有於己者也 則胡能施有性形以爲物體哉.

[312] <天主實義> 74: 謂每物先無後有 可也 若總而言之 則否也 譬如某人未生之先 果無 某人旣生之後 有也 然未生某人之先 却有某人之親 以生之 天下之物 莫不皆然 至其渾無一物之初 始必有天主 開其原也.

[313] <天主實義> 76: 五常之德 無形無聲 孰爲之無哉 無形者之於無也 隔宵壤矣 以此爲敎 非惟不能昭世 愈滋惑矣.

절대자인 천주는 피조물들과 엄격히 구별되는 존재다. 따라서 궁극적 원리가 만물과 합일한다고 보는 당대의 성향에 대해 하느님의 권능을 넘보다가 악마가 되어 지옥으로 쫓겨간 루시퍼에 비교한 다음, “세상 사람들이 불교의 거짓된 경전을 금하지 않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말의 해독에 물든 것이다. 周公, 孔子의 말씀, 중국의 옛 經書后帝를 데리고 놀며 그와 자기가 하나라 한 자가 누가 있는가?” 하여 이런 잘못도 불교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비난한다.[314]

[314] <天主實義> 209: 世人不禁佛氏狂經 不覺染其毒語 周公仲尼之論 貴邦古經書 孰有狎后帝而與之一者.

불교 교리 가운데 리치가 가장 열심히 공격한 것은 輪回說이다. <中國誌>에서는 심지어 幼兒살해 관습의 원인으로 윤회설을 지목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악행으로 (노예제도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여러 에서 여자 갓난아이들을 물에 빠뜨려 죽이는 관습이다. 이런 행위를 저지르는 까닭은 어버이들이 부양할 능력이 없는 데 절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굶어죽을 지경이 아니면서 이런 짓을 하기도 하는데, 장차 언젠가는 더 이상 아이들을 돌봐줄 수 없게 되어 모르는 사람들, 잔인한 사람들에게 노예로 팔아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말하자면 잘해 주기 위해서 잔인한 짓을 하는 셈이다. 이런 야만스런 짓을 그리 끔찍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마 그들이 靈魂離體說, 또는 輪回說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영혼이 사망하는 육체를 떠나 탄생하는 다른 육체로 옮겨간다고 믿기 때문에 이 무서운 죄악을 경건한 행위처럼 분식하면서 아이를 죽이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아이들을 태어난 집안의 가난과 굴레에서 풀어줌으로써 형편이 더 나은 자리에 태어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 결과 죄 없는 아이들을 이렇게 죽이는 일이 비밀리에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아는 가운데 공공연히 저질러지는 것이다.”[315]

[315] <中國誌> 86-87.

<天主實義>에서도 윤회설 비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리치는 윤회설을 만든 것이 피타고라스였으며, 이 설을 만든 까닭은 사람들의 악행을 막기 위해 포학한 사람은 다시 태어나 虎豹가 되고, 음탕한 사람은 개돼지가 되고, 도둑질 하는 자는 여우, 이리, 늑대 따위가 된다는 등 報應을 갖고 위협한 것이라 설명한[316] 다음 이것이 석가에게 흘러가 채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타고라스가 죽은 후 그 말을 이어받은 門人이 적었다. 그 때 이 말이 문득 외국으로 흘러나가 身毒[인도]에 이르니 釋氏가 새 교파를 세우려 함에 이 윤회의 설을 이어받고 거기에 六道을 비롯한 온갖 거짓말을 보태 책으로 묶어 이라 일컬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한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에 이르러 이것을 중국에 전한 것이다. 이것이 그 내력인 바, 비록 확실한 근거는 없다 하더라도 이치로 따져서 믿을 수 있다. 身毒은 작은 땅으로 上國의 반열에 끼지 못하며 文禮도 없고 德行도 없는 곳이어서 諸國史書에 그 존재조차 다루지 않았는데, 어찌 이 넓은 천하에 보여줄 만한 것이 있겠는가?”[317]

[316] <天主實義> 260.

[317] <天主實義> 261: 旣沒之後 門人少嗣其詞者 彼時此語忽漏國外 以及身毒釋氏圖立新門 承此輪廻 加之六道 百端誑言 輯書謂經 數年之後 漢人至其國而傳之中國 此其來歷 殊無眞傳可信 實理可倚 身毒微地也 未班上國 無文禮之敎 無德行之風 諸國之史未之爲有無 豈足以示普天之下哉.

그리고는 윤회설이 이치에 맞지 않는 증거라 하여, 만일 사람의 영혼이 다른 사람이나 동물로 옮겨간다면 마땅히 前生의 일을 기억해야 할 것인데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하고,[318] 불가와 도가의 책에 前生을 기억한 예가 많은 것에 대해서는 마귀의 소행이라고 단정했다:

[318] <天主實義> 264: 一曰 假如人鬼遷往他身復生世界 或爲別人 或爲禽獸 必不失其本性之靈 當說記念前身所爲 然吾絶無能記焉 倂無聞人有能記之者焉 則無前世明甚.

그런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귀가 사람을 속여 자기 무리를 따르게 하고 싶은 뜻에서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붙어서 그로 하여금 어느 집 자식이라 하게 시키고 그 집안일을 읊게 함으로써 그 거짓을 믿게 만드는 것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필히 불가나 도가의 무리가 아니면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뒤의 일이다. 모든 곳에서 온갖 생물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숫자가 엄청나게 많은 것은 고금에 변하지 않는 일인데, 어이하여 불가를 제외하고는 여러 나라, 여러 학파의 뛰어난 인물들이 千卷萬句를 기억할 만큼 학식이 廣淵함에도 前世의 일 한 가지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인가?”[319]

[319] <天主實義> 266: 西士曰 魔鬼欲誑人而從其類 故附人及獸身 詒云爲某家子 述其家事 以徵其謬 則有之 記之者必佛老之徒或佛敎入中國之後耳 萬方萬類生死衆多 古今所同 何爲自佛氏而外 異邦異門雖齊聖廣淵 可記天卷萬句 而不克記前世之一事乎.

인생을 苦海로 보는 불교적 관점에는 리치도 동의한다. 中士의 입을 통해 설령 太平之世를 만난다 한들 成全無缺한 집이 어디 있는가? 재화가 있으면 자손이 없고, 자손이 있으면 재능이 없고, 재능이 있으면 몸에 안일이 없고, 안일을 얻으면 권세가 없다. 알지 못게라, 천주께서 무슨 까닭으로 사람을 이 患難의 자리에 나게 하셨는지. 그 사람을 사랑하심이 오히려 禽獸에게만도 같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놓고[320] 그에 대한 西士의 답으로 사람들의 괴로움을 연민하여 늘 울던 데모크리토스,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어 늘 웃던 헤라클리토스의 이야기와 사람의 출생을 哭弔하고 죽음을 축하하는 어느 나라의 이야기로 이에 공감을 표한[321] 다음 인간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320] <天主實義> 117-124.

[321] <天主實義> 126: 古西國有二聞賢 一名黑蠟 一名德牧 黑蠟恒笑 德牧恒哭 皆因視世人之逐虛物也 笑因譏之 哭因憐之耳 又聞近古一國之禮(不知今尙存否) 凡有産子者 親友共至其門哭而弔之 爲其人之生于苦勞世也 凡有喪者 至其門作樂賀之 爲其人之去勞苦世也 則又以生爲凶 以死爲吉焉 夫夫也 太甚矣 然而可謂達現世之情者也.

現世는 원래 인간의 세상이 아니고 짐승들의 거처다. 짐승들이 여기서 오히려 더 편안한 것은 이 까닭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잠시 머무르는 것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원래 집은 今世 아닌 後世에 있는 것이요, 사람들 사이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니, 그곳에서 참된 삶을 살 것이다. 今世는 짐승의 세상이므로 온갖 鳥獸들은 그 모습이 땅을 향해 엎드려 있는 것이요, 인간은 하늘의 백성이므로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今世를 본 집으로 삼는 자들은 짐승의 무리이니, 천주께서 인간에게 괴로움을 주시는 일이 진정 이상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322]

[322] <天主實義> 127-128: 現世者 非人世也 禽獸之本處所也 所以于是反自得有餘也 人之在世 不過暫次寄居也 所以于是不寧不足也 ... 吾本家室 不在今世 在後世 不在人 在天 當于彼創本業焉 今世也 禽獸之世也 故鳥獸各類之像俯向於地 人爲天民 則昻首向順于天 以今世爲本處所者 禽獸之徒也 以天主爲薄於人 固無怪耳.

이에 中士後世의 천당, 지옥을 말한다면 바로 불교와 같은 것이 아니냐고 함에 천주교는 오래된 인데, 釋氏西民이므로 필히 그 을 훔쳐들었을 것이다. 무릇 私道를 전하려 함에 있어 옳은 말을 몇 가지라도 끼워놓지 않는다면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고 이어서 釋氏가 태어나기도 전에 천주교인들은 이미 이 설을 가지고 있었다고까지 한다.[323]

[323] <天主實義> 129-130: 中士曰 如言後世天堂地獄 便是佛敎 吾儒不信 / 西士曰 是何語乎 佛氏戒殺人 儒者亦禁人亂法殺人 則儒佛同歟 鳳凰飛 蝙蝠亦飛 則鳳凰蝙蝠同歟 事物有一二情相似 而其實大獲不同者 天主敎 古敎也 釋氏西民 必竊聞其說也 凡欲傳私道者 不以三四正語雜入 其誰信之 釋氏借天主天堂地獄之義 以傳己私意邪道 吾傳正道 豈反置佛講乎 釋氏未生 天主敎人已有其說 修道者後世必登天堂受無窮之樂 免墮地獄受不息之殃 故知人之精靈常生不滅. 천주교인이 석가보다 먼저 천당, 지옥의 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리치의 말에 대해 영문판 번역자는 여기 말하는 천주교가 유태교를 포함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지만,(<天主實義> 영문판 142: 5, 6) 이것은 불교의 연원을 잘 알지 못한 리치의 착오를 덮어주려는 견강부회로 보인다. 리치가 천주교의 이름으로 유태교까지 포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리치가 중국에 귀화한 지 오래되는 開封의 유태인들과 연락을 가져서 그쪽 제사장이 리치에게 만일 돼지고기 먹는 것만 삼가겠다면 유태교의 높은 사제직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中國誌> 107-109.

리치는 인간이 禽獸, 草木 이하 다른 만물과 다른 근본적 차이가 靈魂을 가졌다는 데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한 靈魂이란 禽獸覺魂, 草木生魂과 다른 차원의 것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物情을 알게 하고 사물을 推論케 하며 理義를 가리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靈魂覺魂, 生魂 따위와 달리 永存不滅하는 것이어서, 靈魂의 관점에서 본 인간은 有始無終한 존재로 無始無終한 천주를 제외하고는 만물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다는 것이다.[324]

[324] <天主實義> 133-134: 삼비아시(Francesco Sambiasi 畢方濟, 1582-1649)<靈言蠡勺>에서 이 주제를 상세히 논했다. 박종홍, 西歐思想導入批判攝取(<亞細亞硏究> 12-3, 1969: 17-75), 최동희, <西學에 대한 韓國 實學反應>(서울, 1988)은 모두 이 주제에 상당한 비중을 둔 연구들이다.

따라서 인간이 동물로 환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輪回說을 이유로 殺生을 꺼린다는 것도 근거 없는 일이며 삼라만상은 인간에게 쓰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인간이 정말로 변하여 禽獸가 된다고 한다면 君子는 진정 작은 생물 하나 죽이는 것을 사람 죽이는 것과 같이 삼가야 할 것이니, 비록 그 겉모양이 다르다 하더라도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인간이] 禽獸로 변하지 않는 이치를 밝히 증명하였으니 殺生도 없다는 것이 또한 분명하다. 천주께서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일을 한 번 생각해 본다면 그 어느 하나도 사람에게 쓰이도록 만들지 않으신 것이 없다. 무릇 一月星辰은 하늘을 수놓아 우리를 비춰주고 萬色을 비추어 우리가 보게 한다. 鳥獸 가운데는 毛羽皮革을 가져서 옷과 신을 만들 만한 것이 있고 寶牙角殼을 가져서 奇器를 만들 만한 것이 있으며, 妙藥을 품고 있어서 疾病을 다스리는 데 좋은 것이 있고 좋은 맛을 가져서 인간의 老幼를 양육할 만한 것이 있다. 이런 좋은 것들이 쓰임새 없이 어찌 그냥 존재하겠는가?”[325]

[325] <天主實義> 286-288.

그러므로 식물이건 동물이건, 인간만 아니라면 잡아먹는 데 거리낌이 있을 수 없다. 中士천주께서 산 것을 내심은 필히 그 삶을 사랑하셔서 그 죽음을 바라지 않으신 것이리니, 殺生함이 그 높으신 뜻에 맞지 않는가[326] 하는 물음에 西士는 이렇게 답한다:

[326] <天主實義> 294: 中士曰 天主生生者 必愛其生 而不欲其死 則戒殺生順 合其尊旨矣.

草木 또한 生魂을 가진 것이니 마찬가지로 산 것인데 당신은 매일 나물을 뜯어먹고 나무를 베어 불 때면서 필히 말하기를 천주께서 이 나물과 나무를 내셔서 인간이 쓰도록 마련하신 것이니 이를 쓰는 것이 무방하다하리라. 나 또한 말하리라. 천주께서 저 새와 짐승들을 내셔서 우리가 쓰도록 하셨으니 이를 죽여 人命을 양육하는 데 쓰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느냐고. 의 규범에도 다른 사람이 네게 베풀기 원치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했을 뿐이지, 禽獸에게 베풀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또한 천하의 법률에도 다만 살인을 금하지, 鳥獸 죽이는 것을 막지 않는다. 무릇 鳥獸草木財貨와 마찬가지여서, 다만 이를 씀에 절도가 있으면 족한 것이다. 孟子가 임금을 가르침에도 눈 밭은 그물로 고기를 잡지 못하게 하고 산림에 도끼 들어가는 때를 지키게 하라하였지, 도끼와 그물을 아주 쓰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327]

[327] <天主實義> 295-6: 西士曰 草木亦稟生魂 均爲生類 爾日取菜以茹 折薪以焚 而殘忍其命 必將曰 天主生此菜薪以憑人用耳 則用而無妨 我亦曰天主生彼鳥獸以隨我使耳 則殺之而使之以養人命 何傷乎 仁之範 惟言 無欲人加諸我 我勿加諸人耳 不言 勿欲加諸禽獸者 / 且天下之法律但禁殺人 無制殺鳥獸者 夫鳥獸草木 與財貨竝行 惟用之有節 足矣 古孟軻示世主  以數罟不可入洿池 而斧斤以時入山林 非不用也.

7편 뒷부분에 가서 리치의 불교 공격은 절정에 오른다. 中士불상에 참배하고 불경을 읽는 것이 전혀 무익한 일인가묻는 데 대해 西士무익함에 그칠 뿐 아니라 正道를 크게 해치는 짓이다. 異端에 대해서는 祭拜尊崇을 하면 더할수록 죄가 더 커지는 것이다하고는 한 나라에 임금이 하나이듯 천지에도 주인이 하나뿐이며, 두 임금 섬기는 것이 죄가 되듯 천지의 주인을 여럿 모시는 것도 큰 죄가 된다고 했다.[328] 이에 천지의 광대함을 들어 마치 천자가 관리들에게 행정을 맡기는 것과 같이 佛祖, 神仙, 菩薩 등도 천주의 위임을 받은 神格으로 볼 수는 없겠느냐고 하는 中士의 이어진 물음에[329] 대해서는 천주의 절대성을 단호히 강조하여, 地主(天子)와도 격이 같지 않음을 주장한다:

[328] <天主實義> 489-490: 西士曰 奚啻無益乎 大害正道 惟此異端 愈祭拜尊崇 罪愈重矣  / 一家止有一長 二之則罪 一國惟一君 二之則罪 乾坤亦特由一主 二之豈非宇宙間重大罪犯乎.

[329] <天主實義> 491: 中士曰 天主爲宇內至尊 無疑也 然天下萬國九州之廣 或天主委此等佛祖神仙菩薩 保固各方 如天子宅中 而差官布政于九州百郡 或者貴方別有神祖耳.

그 말은 근본을 잃고서도 마치 얻은 것처럼 들려서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잘못 곧이듣기 쉽다. 천주는 한 방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사람을 보내 책임을 맡기지 않으면 다른 방면들을 한꺼번에 다스릴 수가 없는 地主와는 다른 존재다. 上帝은 무한한 것이어서 드러나게 움직이지 않아도 일을 이루시며, 존재하시지 않는 곳이 없다. 九天萬國을 다스리시며 몸소 조화를 일으키심이 우리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도 쉬운데 다른 이를 보내 대신 다스리도록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330]

[330] <天主實義> 492-493: 西士曰 此語本失而似得 不細察則誤信之矣 天主者非若地主但居一方 不遣人分任 卽不能兼治他方者也 / 上帝知能無限 無外爲而成 無所不在 所御九天萬國 體用造化 比吾示掌猶易 奚待彼流人代司之哉.

그리고는 무릇 經文半句의 잘못이라도 들어 있으면 이를 올바른 경전이라 할 수 없다고 강조한 다음 불교 경전의 천문과 지리 해석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예컨대 태양이 밤에는 須彌山의 뒤에 숨는다든가, “천하에 네 개의 대륙이 있는데, 모두 바다 위에 떠 있어 반은 드러나 있고 반은 가라앉아 있다든가, “阿函이 두 손으로 해와 달을 가림으로써 日食月食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 것 등이다.[331]

[331] <天主實義> 496.

계속해서, 獨身의 권장은 살생의 금지와 함께 인류를 絶滅시켜 천하를 짐승들에게 넘겨주려는 것이냐,[332] 誦經이나 念佛을 통해 천당에 갈 자격이 생긴다면 죽기 직전까지 마음 놓고 악행을 저지르고도 천당 갈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냐,[333] 하는 등 야유조로 불교를 공격하지만 교리 비판의 차원에서 논할 것은 되지 못한다.

[332] <天主實義> 498.

[333] <中國誌> 499-501.

<天主實義>를 비롯한 리치의 저술에 나타난 불교 공격은 우상숭배라는 초점에 모여 있어서 실질적인 교리 비판이라고 할 만한 것은 매우 빈약하며, 리치의 불교 이해 수준이 피상적인 데 그쳤다는 인상을 준다. 구체적으로 파악된 교리는 四生六道, 人魂輪廻”, “殺生者靈魂不昇天堂”, “及地獄充滿之際, 復得再生于人間”, “禽獸聽講佛法, 亦成道果등으로 모두 윤회설의 테두리를 넘지 않는 것이다.[334] 기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리치의 입장은 다음 말로 요약되는 것 같다.

[334] 이 항목들은 같은 책 제4, 5편에서 논의된 것들로 <天主實義> 497단에 모아져 있다. 이용범, 利瑪竇輪廻論攻駁과 그 반응(<김재원박사회갑기념논총>, 1969)에는 리치가 윤회론을 공박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우주관에 대한 兩敎 間의 근본적 차이에 있었다고 논했지만, 이 연구에서 리치의 행적을 검토한 바에 의하면, 리치의 불교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불교의 내용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되었고, <天主實義>를 지을 때까지도 그의 불교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치에는 옳은 것이 두 가지가 있을 수 없다. 만일 上帝가 옳은 것이라면 곧 다른 가 틀린 것이며, 만일 다른 가 옳은 것이라면 곧 上帝가 틀린 것이다. 조정에 設官分職을 하여도 모두 하나의 임금을 받들며 다른 禮樂이 따로 없고 다른 法令이 따로 없다. 그들 두 는 저희들끼리도 서로 같지 못한데, 하물며 천주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들은 上帝를 받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한 몸만을 받드는 것이며 大原大本에는 어두운 것이다.”[335]

[335] <天主實義> 494: 且理無二是 設上帝之敎是 則他敎非矣 設他敎是 則上帝之敎非矣 朝廷設官分職 咸俸一君 無異禮樂 無異法令 彼二氏敎自不同 況可謂天主同乎 彼敎不尊上帝 惟尊一 昧于大原大本焉.

上帝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去佛補儒의 입장을 취했다는 것은 리치가 虞淳熙에게 쓴 답장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멀리서 온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공자에게 덕을 본 것이 무엇이며 부처에게 원수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약 내가 공자에게 예쁘게 굴어 사대부에게 아첨함으로써 서서히 내 설을 펴려는 것이라고 한다면, 중국의 人士 가운데 부처를 믿는 이가 공자를 믿는 이보다 훨씬 많으니, 부처에게도 함께 예쁘게 굴어서 모든 사대부에게 아첨하여 서서히 내 설을 펴려 하지 않겠습니까? , , , 은 모두 몸을 닦고 上帝 섬기는 것으로 를 삼았으니 옳다고 하는 것이요, 佛氏上帝에 대들고 욕하며 그 위에 올라타려 하니 그르다 하는 것입니다.”[336]

[336] <辨學遺牘> 4(<天學初函> 644): 區區遠人 何德於孔 何仇於佛也 若謂竇姑佞孔以諂士大夫 而徐伸其說 則中夏人士 信佛者於信孔者甚多 何不幷佞佛 以盡諂士大夫 而徐伸其說也 堯舜周孔 皆以修身事上帝爲敎 則是之 佛氏 抗誣上帝 而欲加諸其上 則非之.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