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차이나 모델이 살아남는 길은 정부가 체제를 개방해서 기층부의 참여와 숙의 통로를 확충하는 것뿐이다. 숙의를 위한 얼마간의 장치는 그 정치체제 안에 이미 갖춰져 있다. 예를 들어 재산법이 전인대(全人代)를 통과하는 데 걸린 9년 동안 전문가 의견 청취와 공개토론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그러나 더 넓은 영역에서 비전문가들을 토론에 참여시키고 발언권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 정책결정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결정에 대한 책임감을 확산시키기 위해 그런 개방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확대할 필요가 있고 당 내외에 토론과 숙의를 위한 장치를 늘릴 필요가 있으며, 실적이 나쁜 관리들을 도태시키는 투명한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기층부의 선거민주주의가 개선되고 시급(市級)까지 확대되고 당 안에서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 공개청문회, 숙의적 여론조사, 주요 의제에 대한 주민투표 등 현대 민주사회의 여러 개선책을 도입하는 것도 정치체제의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기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법치의 원칙을 더욱 굳건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이런 방향의 변화가 많은 서방 분석가들의 견해처럼 11표의 원칙이 최고지도부 선출에도 적용되는 목표를 향해 필연적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완전한 선거민주주의의 시행이 중국을 과거의 혼란과 대외적 굴욕으로 돌려보낼 것이라는 걱정은 중국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만이 아니라 대다수 일반인이 가진 것이다. 아무리 바람직한 민주화의 길을 걷더라도 최고지도부까지 일반선거에 맡길 경우 현행 정치체제의 장점을 잃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현행 정치체제의 확실한 장점은 지도자들이 수십 년 단련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숙성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정책 결정에 장기적 관점을 취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밝힌 2030년까지의 기후변화 대응책을 보라. 중국 정부니까 이 정책을 지킬 것을 믿을 수 있지, 미국 정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집권당이 바뀌면 전임 정권과의 차별성을 내세우기 위해 일부러라도 정책을 바꾸는 일이 많지 않은가. 최고지도부의 안정성은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지 모르는 기층부의 체제개혁 실험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중국이 완전한 선거민주주의를 도입할 경우 공산당의 집권이 계속될 수도 있지만 국가 운영 경험이 적은 선동가가 권력을 쥘 수도 있다. 부유층의 재산을 몰수하고 일본에 전쟁을 걸고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몽땅 취소하자는 공산당 판 도널드 트럼프가 어느 날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유능하고 양심적인 정치가들도 다음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정책결정 과정에서 재선에 도움이 될 단기적 효과를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정책 관련 능력의 연마보다 선거자금 모금을 위해 똑같은 연설을 수없이 되풀이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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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