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하나 봤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4735

"야당, 계산기 두드리지 마라"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사회에 문제가 나타났을 때 시스템 전체의 복합적인 문제로 보기보다 단순한 국부적인 문제로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인식체계의 구조적 특성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근대문명의 '환원주의' 성향 때문에 더 심해지기도 한 것이다. 제대로 파고들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까 완벽한 해결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환원주의다. 건강 문제에 총체적으로 접근해서 완벽한 치료보다 상대적 향상을 꾀하는 한의학을 비롯한 전통의학과 우리가 익숙한 근대의학을 비교하면 그 성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최순실과 그 "부역자"들을 응징하고 배제하기만 하면 정의가 세워지고 정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데도 환원주의 성향이 작동하는 것 같다. 물론 큰 방향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어림짐작만으로 나아가다가는 해결하는 문제보다 새로 일으키는 문제가 더 클 수 있다. 예컨대 박근혜를 탄핵 대상으로 여기면서 내가 원하는 범주의 인물을 그가 총리로 임명해 주기 바라는 모순도 그런 데서 나온다. 그런 모순이 탄핵 전선에 균열을 일으키고 박근혜 일당에게 방어 내지 반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

 

장 교수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을 주로 염두에 두고 "이익의 정치"보다 "가치의 정치"를 당부하는데, 탄핵 전선의 균열을 막으려는 뜻으로 읽힌다. 歐陽修의 "朋黨論"에서 소인의 모임은 이득을 따르기 때문에 쉽게 흩어지고 군자의 모임은 뜻을 따르기 때문에 단단하다고 한 의미를 따른 것이겠다.

 

좋은 말씀이다. 하지만 이것이 행여 현실주의보다 이상주의를 권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이득"의 크고 작음을 잘 가릴 필요를 더 강조하고 싶다. 지금 한국의 정치계는 "이념"을 논할 수준과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익숙해져 있는 "이득"에 대한 인식을 더 투철하게 하는 것이 당장의 급선무라는 생각이다. 작은 이득에 휘둘리는 형편없는 수준을 일단 벗어나고 난 다음에 이념 생각은 천천히 해도 좋지 않겠는가.

 

김무성이 "대권 포기"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막 들었는데, 이것이 이득의 크고 작음을 잘 가린 태도라고 나는 본다. 정치인이 웬만한 존재감을 갖게 되면 "잠룡"이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잠재적 대권 주자로 인식되어야만 세를 규합할 근거가 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모두 그 딱지를 붙이고 싶어 안달이고, 한 번 붙이면 떼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전제로 한 관습이다.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의 작태처럼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세력이 모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절대 권력의 해체가 민심의 표적 아닌가. 문재인 같은 "가장 유력한" 주자라도 그 민심에 부응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문재인이 과도정권의 총리로 나섬으로써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 바란다고 지난 주 썼던 것이다. 현실적 가능성이 더 적은 잠룡들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나는 김무성이 "훌륭한 정치인"은 아니라도 "유능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하게 된다.

 

장 교수 글도 좋지만, 현실적 차원에서 더 마음에 드는 글이 하나 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4588

"누가 박근혜의 '명예로운 퇴진'을 말하나" 유종성 호주국립대학교 교수

 

이런 대목에서 유 교수의 현실적 관점을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다음으로 야권에서 우려하는 것은 보수적인 황교안 총리가 헌재의 탄핵 심판 기간 중(40~50일간 예상)과 헌재의 탄핵 결정 시 대통령 보궐 선거 기간 중(60일간 예상)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하게 되는 문제이다. 필자는 황 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황 총리가 보수적인 인물이긴 하나 박-최 게이트에 연루된 정황은 없다. 대통령 권한 대행이 독단적으로 지나친 권한 행사를 하면 문제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지금 거대한 성난 민심에 의해 탄핵이 진행되는데, 황 총리가 권한 대행 지위를 이용해 민심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황 총리가 권한 대행으로서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여 걸림돌이 되면 국회가 단 2~3일이면 탄핵을 의결할 수 있고, 그 즉시 황 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며 헌재의 탄핵 심판 기간 중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게 된다. 테크노크라트인 유 부총리가 권한 대행을 하면 민심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치적 행위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탄핵을 바라보는 사람들 대부분이(나도 포함해서) "탄핵은 좋은데, 그러다가 황교안 같은 인물이 정부를 이끄는 꼴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갖고 있다. 그 걱정 때문에 어떻게 하면 탄핵 시점에서 괜찮은 인물이 총리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게 될까 하는 궁리를 하게 되고, 바로 그 때문에 박근혜가 아직도 쥐고 있는 칼자루가 힘을 쓸 수 있는 것이다.

 

황교안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허수아비 총리 노릇 좋다고 해온 사람이니까 내가 존경할 만한(또는 좋아할 만한) 사람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서 과도정권을 이끌 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박근혜나 우병우 같은 강심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눈치꾼이 소신가보다 "과도적" 역할에는 적합한 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박근혜의 "때"가 묻은 사람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결벽증은 지금 현실에서 혼란을 더 부추길 소지가 있을 것 같다.

 

탄핵을 지향하는 논설 중에 "신 보수" 진영의 형성으로 모처럼의 쇄신 기회가 도루묵이 될 것을 걱정하는 기색이 많다. 보수주의자를 자임해 온 나로서도 이 나라에 바뀌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이 기회에 좋은 변화가 많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도루묵 될까봐 걱정이 된다. 하지만 한 술 밥에 배가 부르겠는가? 이번 기회를 가져온 것은 보수 노선의 좌초가 아니라 박근혜 일당의 일탈 아닌가? 그 일탈만 응징이 되고, 그런 일탈을 가능하게 한 조건만 해소가 된다면, 장차의 바람직한 변화가 더 순조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나친 욕심을 억누르고자 한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