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일기가 중단된 것은 몸이 아파서 때문이었던 듯. 3월 19일자 일기에는 그 동안 있었던 중요한 일과 쌓여 있던 생각들을 길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4월 22일 아주 중단되기 전까지, 이 공책에 남아있는 일기를 마저 정리해 올립니다.

 

그런데 이번에 눈에 띈 사실이 있는데, 이 공책의 모양으로 봐서 1946년 4월 22일자 일기 이후 상당량(3-40장?)의 공책장이 뜯겨 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조수(조교) 신분의 대학 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인데, 일기를 적었다가 어느 시점에서 없애야겠다는 판단을 한 것인지?

 

 

3월 19일 (발행)

 

3월 20일

요사이는 차표 사기가 몹시 힘든다 하므로 전번에 鉉澈 군에게 손님 차표를 사오라고 부탁하엿더니 용산역에 가서 사지 못하고 和信 옆 旅行公社에 늦게 가서 거기서도 차표는 거진 다 팔리고 느러선 사람은 많아서 아주 못 살 뻔한 것을 언젠가 오래 전에 제가 차표를 살려고 느러섰을 때 늦게 와서 다급해 하는 女人을 제 앞에 넣어준 일이 잇는데 마침 공교로이 이번엔 그 女人이 줄에 서 잇다가 鉉澈이가 차표를 못 사서 애타 하는 것을 보고 줄에 끼워주어서 無難히 차표를 끊을 수 있엇다고 뜻밖에 차표를 사왓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듯고 여러 가지로 느끼는 점이 있엇다.

세상은 넓고도 좁은 것이며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착한 일이란 가만한 갚음이 있는 것인 줄 알엇는데 이러케 드러나게 갚음이 잇는 것은 자미난 현상이다.

그러나 이 일 전체를 통해선 역시 倫理的으로 反省해야 할 점이 잇다. 一列의 規律을 깨트려서 어떤 한 사람의 편의를 보아주엇다가 내종에 다시 그 사람에게 역시 같은 수단에 依한 顯報를 받는다는 건 根本的으로 어긋난 일이다. 그러나 切迫한 사정에 잇는 女人의 편의를 보아준 것이 인연으로 내종에 우연한 기회에 그 女人의 아름다운 마음의 선사를 받는다는 건 세상이 효박하고 까다로우면 까다로워질수록 이런 따뜻한 人情의 흐름이 人間 생황에 없지 못할 것이다.

善惡의 갈림은 이러케 보는 角度에 따라서 다르다. 세상 일은 함부로 判斷할 것이 아니다.

[중간부 발행]

아침에 林興植 씨 宅에서 발바리 색기 한 마리를 얻어다 돈암정 집에 갓다두게 하고 競馬場 옆에 잇는 지방법원 출장소에 가서 登記열람을 마치고 平和堂에 들럿다 낮 지나서 聯合會에 出勤하엿다.

오후에는 일직 나와서 大學에 金庠基 씨와 李本寧 군을 만나고 돈암정을 다녀서 朴 선생님과 李哲 군을 찾고 밤늦게 집으로 왓다. 哲 군에게서 語學 관계의 책을 빌려오다.

 

3월 21일

밤에 자고 나니 봄눈이 하야케 왼 누리를 덮엇더니 아침나절 날세가 따뜻해서 눈은 이내 녹아버리고 낮에 法專엘 가니 학생들이 南向 잔디밭 우에 누워 노는 양이 이 어지러운 세상과 치운 봄날세를 잠시 잊게 하는 다사로운 風景이엇다.

哲 군을 시켜서 그저께 內諾은 얻어놓은 일이므로 오늘 勇氣를 내어서 河祥鏞 씨에게 辭意를 表明하엿다. 저녁에는 柳興相 씨, 權五翕 씨가 와서 우리 집에서 특산품전람회 제1회 위원회가 열리엇다. 내가 企劃한 일이 내가 간 후에도 이 사람들의 힘으로 잘 되어 나가기를 心祝한다.

 

3월 22일 (발행)

 

3월 23일

밤에 李載瀅 군과 金周仁 군이 찾아와서 聯合會 일을 걱정하고 우리 세 사람이 손 잡고 推進力이 되어서 部內의 空氣를 革X하고 全國組合의 무기력과 혼미에 빠져 있는 것을 救해내자는 意見을 말하엿다. 나는 매우 좋은 일이라고 대답은 하였으나 이미 正式 辭表를 제출해 있으므로 積極的인 發言은 하고 싶지 않엇다.

 

3월 24, 25, 26일 (발행)

 

3월 27일

감기 기운이 있어서 집에서 쉬엇다.

鮎貝의 雜攷 제1집 新羅王位號 竝 追封王號考를 읽다.

1. 居西干 2, 次次雄 3. 尼師今 4. 麻立干 5. 葛文王

 

3월 28일

종일 봄비 거쎄게 내리다.

몸이 약간 찌부둥해서 講義시간이 臨迫해서 집을 나섯더니 비는 논날같이 퍼붓고 電車는 좀처럼 오지 않고 겨우 얻어 탄 것이 그나마 中途에서 故障이 나고 해서 50분이나 늦어서 학교엘 갓더니 그레도 학생들이 모다 기대리고 있어서 매우 미안하엿다. 그나마 2, 3학년은 午前 시간도 없는 것을 이 雨中에 순전히 내 시간만 드르려고 와서 한 시간 가까이 기대린 것을 생각하니 여간 미안하질 않엇다.

연합회에 들럿더니 충북支部의 柳根喆 씨가 왓기에 함께 나와서 집에서 留宿케 하엿다.

 

3월 29, 30일 (발행)

 

3월 31일

今日 附 朝金聯 解職 發令

 

4월 1일 발행

 

4월 2일

아침부터의 朝金聯 課長회의에 出席, 이것이 最後의 課長회의가 될 것이다.

낮에 란드래이 會長으로부터 解任辭令을 받다. 몸이 갓든해지는 한편 두 번이나 金融組合의 신세를 지고 다시 훌훌히 떠나게 되는 것이 몹시 未安스러웁다.

午後에는 各에 解任 인사를 다니다.

오늘 法專 休講

기봉이 理髮

 

4월 3, 4일 (발행)

 

4월 5일

權五翕 씨에게 事務引繼 해주다.

 

4월 6일

종일 짐 묶으다.

저녁은 李載瀅 군 宅에서 먹다.

元町에서의 마지막 밤을 새이다.

 

4월 7, 8, 9, 10일 (발행)

 

4월 11일

종일 硏究室에서 蕭一山의 淸代通史를 읽엇다. 제15장 61절에 이러한 말이 잇다.

[입력 보류]

 

4월 12일

東星商業의 불타다 남은 形骸가 언제나 보기 숭업더니 오늘아침은 오다보니 그 앞에 벽돌을 갖다 샇어둔 것이 곳 새로운 建設에 着手할 것 같아 보여서 어쩐지 내 마음이 흐뭇해지다.

오랫동안 日帝의 虐政으로 또 전쟁 中의 뒷일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살림살이로 해서 荒廢해진 祖國의 江山에 同胞의 마음속에 하로속히 建設의 굉이가 나려지기를.

 

4월 13, 14, 15, 16, 17일 (발행)

 

4월 18일

金庠基 씨가 연구실에 오서서 趙潤濟 선생을 찾어보앗는가 하고 뭇기에 아직 그럴 겨를이 없엇노라 하니 趙씨가 한 번 보고저 하니 가보는 것이 좋겟다 하고 우스시기에 낮에 學部長室을 찾어갓다. 그 버티고 앉아잇는 모양이라거나 말수작이라거나 學者다운 안존한 氣風이 없는 것이 愛惜한 일이다. 그러나 내 個人에게는 여러 가지 좋은 言辭를 많이 베푸러주어서 감사하다. 詩歌史綱을 통하여 선생님의 學風엔 오래 전부터 敬服하고 잇노라 햇더니 助手로서 學部長님을 진즉 찾아가 뵈입지 않은 怠慢을 용서하시는 것 같다.

 

4월 19일

종일 연구실에서 湛軒說叢을 읽엇다.

午後에 元町 나가서 기봉이 돌 사진을 찾엇다. 엄전한 품이 아주 몇 살 난 것 같어보인다. 노- 하는 버릇으로 혓바닥으로 오른편 볼을 내민 것이 더욱 귀여웁고 이지음의 유니-크한 점을 잘 낱아내엇다.

그 길로 李載瀅 군의 집에 들러서 저녁 먹고 늦어저서 終電車로 동대문까지 와서 동대문서 步行으로 辛苦하엿다. 밤거리를 것는 것은 여러 해 만인 듯 싶다.

 

4월 20일

아침에 일직 大學에 들러서 門어두고 곳 연합회 定期總會에 參席.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한 組合人들을 邂逅할 수 있엇다.

그러나 회의를 방청해본 결과 모다 제 잘난 체하고 그리고 하치않은 일에 서로 다투고 또 그 雰圍氣가 하도 어수선해서 中途에 구만두고 나오려고 하든 차에 마침 俊圭가 찾어와서 데리고 나왓다.

 

4월 21일

화창한 日요일이었으나 종일 집에 들어앉아서 湛軒說叢을 읽엇다. 안해가 健康에 害로울까 해서 걱정하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니 그리 害되지 않을 것이며 또 운동은 學校 來往만으로써도 充分하지 않을까 녁임으로써이다.

午後엔 李容兌 씨가 찾아와서 初面 인사 하고 두어 시간 이야기하다 가섯다. 大倧敎의 內容 처음으로 자세히 들을 수 있엇다. 이 老人들의 思想은 陳腐하다고 할 수 있을찌라도 세상이 모다 親日 保身으로 趨向하든 時代에 있어서 眞心으로 民族의 將來를 걱정하고 또 實踐한 그 꿋꿋한 志慨는 우리가 우러러 받들지 않을 수 없는 바이다.

 

4월 22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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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