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7. 13:07
 

 요즘 어머니 표정은 크게 나눠 세 갈래다. 제일 많이 보이시는 것은 눈을 뜨고 계셔도 정신이 몽롱하신 듯 멍한 표정. 이따금 뭔가 불편하신 듯 찌푸린 표정, 조금 더하실 때는 완전히 울상으로 찡그려지고 눈물까지 흘리신다. 그리고 입꼬리가 귓가에 걸릴 듯이 쭈욱 올라가는 웃음. 최근에 정신이 좋아지고 편안해지시면서 찌푸린 표정보다 웃음이 훨씬 많아지고 종류도 늘어난다. 늘어난 종류 중에는 피식 하는 실소도 있다.

오늘 모시고 앉아 있는 동안 새 환자가 한 분 들어오셨다. 새 환자의 보호자인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지나가는 길에 내게 말을 걸고, 몇 마디 말 끝에 "참 효자시네요~" 인사치레 말씀을 했다. 좀 겸연쩍어서 어머니를 보고 "이분께서 저를 효자라시네요, 어머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했더니 대뜸 피식! 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어제는 미열이 있으시다고 들었지만 용태에 별로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제보다도 훨씬 기색이 좋으시다. 들어설 때 보니 독경집을 펼쳐 침대 난간에 기대 놓았다. 그 시점에서는 들여다 보지 않고 계셨지만, 아마 어느 여사님이 읽어드릴 때 관심을 강하게 보이시니까 펼쳐놓아 드린 모양이다. 김 여사의 보고도 재미있다. 여사님들이 피딩 준비해 드릴 때마다 아침인가 점심인가 저녁인가 말씀하시게 하는데, 아까 점심 때 또 채근하니까, "'점심' 말하기 싫어." 하시더라고. 그 말을 듣고 어머니께 "잘 하셨어요, 어머니. 고분고분 시키는 말씀만 하지 말고 호통도 치고 그러세요." 했더니 순간에 입끝이 귓가로 달려가신다. 이야기 알아들으시는 수준이 며칠 전과도 비교할 수 없게 회복되셨다. 유머감각도 되살아나시는 것 같다. 조금 더 나아지시면 내 '똥배'를 다시 들먹이실 수도 있겠다 싶다.

여사님들이 드리는 자극에 예민하신 것에 비하면 내가 드리는 말씀에는 주의도 빨리 모이지 않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시는 편인데, 오늘은 내 말씀도 잘 알아들으시고 반응도 활발하시다. 내 말씀에 대한 대답 말씀은 그 동안 어쩌다 나와도 한 단어로 늘 끝났는데, 오늘은 세 단어 문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씀이었는지 지금 생각이 안 난다. 지금 알고 있는 것도 이렇게 적어놓지 않으면 얼마나 남길 수 있을지. 설마 전염성 치매는 아니시겠지?

새로 나온 책을 우선 어머니 가까운 분들께 먼저 발송하는데, 이화여전 동기 동창이 두 분이셨다. 이혜숙 선생님과 이윤재 선생님. 어머니 쓰러지시기 한두 달 전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을 때 두 분을 점심에 청해 오랫만에 깔깔대며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셨는데, 그런 자리를 다시 바랄 수도 없게 되었다. 이윤재 선생님께 보내는 책에는 사인 위에 "동녕 형을 부러워하며"라고 써넣었다. 그 아드님, 우리 큰형보다 한 살 밑인 김동녕 선배는 큰형 못지 않게 모범생에 효자로 내가 보는 이다. 이 선생님께 전화드릴 때 정정하신 것을 치하드리느라고 "저는 동녕 형이 부러워요~" 하곤 하는데, 사실 어머니가 요새만큼 몸과 마음이 편안하시기만 하다면 동녕 형도 별로 부럽지 않다.

3년 전 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어 한국에 주저앉은 뒤 대개 철 하나 지날 때마다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고, 그럴 때는 친척이나 친구분들 보실 기회를 만들어드리려고 내 딴에 애를 썼다. 기억력 감퇴만이 아니라 기력도 많이 쇠하셔서, 한나절 어디 다녀오시면 이튿날 꼼짝도 못 하시는 지경이기 때문에 나들이를 효과적으로 조직해야 했다. 쓰러지시기 전에 모시고 가 만날 기회를 드린 분으로 이정희 선생님과 윤정옥 선생님 생각이 얼른 난다.

어머니보다 서너 살 아래인 이정희 선생님은 늦게(아마 환갑들 지나신 뒤에?) 서로 만나고도 허물없이 가깝게 되신 분이다. 어머니가 소녀기를 지내신 함경도 출신이시라서, 그리고 거침없는 성격이시라서 쉽게 가까워지신 것 같다. 신군부 초기에 어디 잡혀 들어가셨을 때의 일화가 그분의 거침없는 성격을 보여준다. 심문을 앞두고 담당자에게 이런 모두발언을 하셨다고. "미리 말해두는데, 날 빨갱이라고 뒤집어씌울 생각은 하들 말어. 난 공산당이 싫어서 고향 두고 온 사람이야. 그리고 조직활동 뒤집어쒸울 생각도 하지 마. 난 단 두 사람 조직도 못해서 평생 혼자 산 사람이야." 요즘도 어머니 건강 관리에 도움말씀 주시기 위해 거침없는 전화를 제일 자주 주시는 분이다.

영문과 윤정옥 선생님과 사회학과 이효재 선생님은 어머니와 마음이 통하는 동료로 다년간 3자매처럼 지낸 분들이다. 어머니가 대저, 이 선생님이 중저, 윤 선생님이 소저로 통했다. 다정다감하신 윤 선생님은 어머니가 이정희 선생님 댁에 다니러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리 달려오셨다. 이효재 선생님은 진해에 은거하고 거동도 불편하셔서 전화로 인사 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 근엄하신 분께서 요새 내가 낸 책과 글을 무척 반가워하고 전화로 격려해주시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사람이 마흔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어울리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어머니 친구분들이 어머니 아껴드리는 것을 보며, 나도 어머니 못지 않게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애쓸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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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