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쓰던 글에서 "묘수 세 번 두면 바둑 진다"는 말을 앞세워 세상사의 이치를 바둑에 비유하면서 이런 비유가 어떤 의미와 한계를 가지는 것인지 잠깐 생각해 보게 됐다.

 

바둑은 한 판이 완결성을 갖는 게임이다. 대회에는 3번기, 5번기 등 여러 판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그 대회를 위한 장치일 뿐, 바둑 자체로는 한 판 한 판이 독립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승과 패가 있을 뿐, 많이 이기고 적게 이기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이 인생의 의미를 보는 특정한 시각을 반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한 차례뿐이고 그 안에서 모든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시각. "다음 생에는..." 이번보다 더 잘 살 것이라는 다짐에 의미를 두지 않는 시각.

 

그리고 인생의 가치를 잘 살았느냐, 그러지 못했느냐, 두 갈래로만 갈라서 보는 시각. 많이 잘 살고 적게 잘 사는 차이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훌륭한 삶의 길을 찾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하게 하고, 지나친 욕심 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건실한 시각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자세로 바둑을 둔다면 쌍방 모두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기는 사람은 성공의 기쁨을 누리고, 지는 사람도 열패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각자의 노력은 '자신과의 싸움', 더 잘 두려는 데 목적이 있지,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패배를 반성할 때 스스로 부족했던 점을 찾게 되지, 상대방의 적개심을 찾는 것이 아니다.

 

이 원리에서 벗어나는 풍속이 '방내기'다. [바둑 모르는 분들 위한 설명: 내기바둑 중 몇 집 차이냐에 따라 지는 사람이 내는 돈을 정하는 것이 '방내기'다. 보통 열 집 이하를 기본으로 하고 열 집 단위를 넘어설 때마다 액수를 추가하게 하고 다섯 방, 즉 50집을 한도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미 이겨놓은 바둑을 더 많이 이기기 위해 재간을 부리고, 불리한 쪽에서는 모험을 하다가 판을 키우기 쉽다.

 

방내기 바둑이 자본주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이해된다. 그렇다면 원래의 바둑 원리는 사회주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방내기 바둑의 살벌한 느낌 때문에 승부감각을 찐하게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중세사회에서 발달된 바둑의 주류 원리가 그런 찐한 승부감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사회주의 정신이 문명사회에서 더 보편적인 타당성을 인정받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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