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현상은 현대과학의 정밀성으로도 아직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는 복잡한 영역이다. 중국에서 나비 한 마리가 일으키는 날갯짓이 미국에 폭풍우를 몰고 올 수도 있다고 하는 나비현상(butterfly effect)’은 대기중의 여러 요소 사이의 인과관계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말해준다.

 

그래서 근년 엘니뇨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는 다양한 기상이변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짚어 말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화석연료의 대량소비에 따른 온실현상(greenhouse effect)’에 의심을 두고 있다. 대기권에 늘어나는 탄산가스가 우주공간으로 방출되는 지구의 복사에너지를 가로막음으로써 지구 표면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으며, 이 때문에 기후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 특히 기상이변이 많은 것도 화석연료의 소비가 제일 큰 나라이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폭설, 혹한, 태풍, 홍수, 폭염, 가뭄 등 미국에서는 몇 년간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개인의 권리를 극도로 존중하는 그 나라에서조차 최근의 가뭄에는 비상사태 선포로 시민의 물 소비를 규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5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뉴저지 주에서는 잔디밭에 물주는 일이 논란거리가 됐다. 미국 중산층의 전통적 상징인 잔디밭 관리는 도시지역 수돗물의 3분의 1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하는 것처럼 매일 잔디에 물을 주는 것은 잔디의 뿌리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지적도 있으니 잔디밭이 수돗물 낭비의 주요한 범인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 뜰에 마음대로 물을 준다고 벌금을 매기는 것은 시민권 침해라고 시민단체들은 반발한다. 가뭄 정도 기상이변에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해 시민생활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란 것이다.

 

극심한 가뭄을 당해서도 벌금 정도로 소비를 규제하는 것을 보면 미국은 역시 기반시설이 잘돼 있는 나라다. 또 그 정도 규제에 시민권을 들먹이며 반발하는 것을 보면 정말 민권이 발달한 나라다. 그토록 고통을 모르는 나라를 바라보며 입맛이 씁쓸한 것은 질투심 때문만일까.

 

수천 명 목숨을 앗아간 유고슬라비아 폭격에서 단 한 명의 조종사도 목숨을 잃지 않게 배려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다른 지역에서 같으면 수백만 이재민을 낼 자연재해 속에서도 잔디밭에 물 줄 권리를 따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 좋은 점을 배워 우리도 위대한 사회를 만들고 싶지만 온 세계가 그 흉내를 냈다가는 지구가 남아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199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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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