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을에 새로 부임한 원님이 풍속 교화를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고을에서 제일가는 효자를 뽑아 무명 열 필 상을 주는 거야 기발할 게 없는 일인데, 제일가는 불효자를 뽑아 매 열 대 벌을 준 것이 독특한 조치였다. 무엇보다 기발한 것은 불효자를 효자 집에 가서 열흘 함께 지내며 효도를 배우게 한 일이다.

 

불효자가 효자 집에서 지내 보니 효도란 게 별것 없었다. 효자는 아침에 일어나 아버님 잠자리 곁으로 가서 아버님 옷을 입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시자 벗어드렸다. 옷을 체온으로 덥혀놓는 것이었다. 아버님 밥상이 들어오자 자기 수저를 들고 먼저 다가가 음식을 이것저것 조금씩 먹었다. 잘못된 음식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잘 때가 가까워지자 아버님 이불에 들어가 들어오실 때까지 누워 있었다. 덥혀놓는 것이었다.

 

불효자가 효도 연수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자 그 아버님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내 옷을 이놈이 입고 앉아있는 게 아닌가! 바로 귀싸대기를 올렸다. 조금 있다가 밥상이 들어오니 이놈이 수저를 들고 먼저 달려들어 마구 퍼먹는 게 아닌가!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버렸다.

 

합숙훈련을 받고도 저 모양이니 어쩐단 말인가! 하루종일 답답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밤이 이슥해서 잠자리에 들려고 방에 들어가니 이놈이 내 이불속에 활개를 펴고 누워있는 게 아닌가! 몽둥이로 두들겨패니 이놈이 달아나면서 외친다. "젠장! 효도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Posted by 문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4.03.26 09:13

    그러고 보면 효에 관한 옛날 이야기는 참 다양하게 많은 것 같습니다. 이참에 좀 궁금한 점을 여쭤보자면...

    우리나라의 효라는 덕목을 좀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는 좀 없을까요? 제 생각은 효가 인간의 천성에 비해 지나치게 과잉규율화된 면이 있는 점, 자식에 대한 덕목이 거의 없는 점을 고려했을 때, 부모자식간의 규율과 의무가 비대칭적이라는 점, 자식이 성인이 되었을 시 대등한 (혹은 친구같은) 인격적인 교류를 가로막는 다는 점, 등등.

    너무 근대적인 시각일까요? ㅎㅎ

    • 2014.03.26 10:39

      근대적 시각 맞는 것 같아요. ^^ 근데 근대적 시각이라 해서 몽땅 갖다버려야 하는 건 아니죠. 매몰되지 않을 필요가 있는 거죠.
      가치 있는 어떤 사회현상도 '말기 증세'를 보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전통'의 이미지가 수백 년 수천 년의 전통시대를 대표하기보다 전통시대 말기의 수십 년 내지 2~3백 년의 현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화'가 시작될 당시의 이미지가 고착된 결과이기도 하고, 전통을 매도하기 위해 그 말기 증세만을 부각시킨 선전의 결과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전통의 참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전형화된 이미지에 매이지 않고 전통적 요소들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그 원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역할이 많이 필요한 거죠.

    • 2014.03.26 10:51

      한 가지 예로 소작제도를 생각해 보죠. 소작제도는 나쁜 것이고 그런 제도가 보편적으로 시행된 시대는 나쁜 시대였다는 게 우리 통념입니다.
      그런데 이 흉악한 이미지는 조선 말 내지 일제시대의 '말기 증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겁니다. <토지>의 최 참판 댁에서 보이는 모습은 이에 비해 훨씬 인간적이죠. 조선 말기 세태가 험악해지는 상황에서 점잖은 집안이나 품성 좋은 사람들은 세태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쓰지만 이런저런 방식으로 세태에 밀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모습이 변화의 실제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 2014.03.27 17:10

    <전래 소화>이야기가 재미있으면서도 깊은 의미를 시사하는군요. 박노해 사진전에서 아버지와 여섯 일곱살쯤 되는 아들이 함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 있는 사진이 있었어요. 사진옆에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나 노년이 된 부모에게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저를 보면서 언제나 제가 오기를 기다리던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나는군요.

    • 2014.03.28 11:47 신고

      사향님 아이들 만나면 전화 자주 드리라고 이를게요.
      어렸을 때 읽은 이런 얘기들, 막상 떠올리려 하면 많이 떠올리지 않는데, 지내다 보면 하나씩 떠오르곤 하는 걸 볼 때,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퍼낼 수 있을지.

  3. 2017.03.30 13:31 신고

    "충성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박근혜를 성실하게 보좌하려 하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네요. 법률대리인들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