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를 통해 가장 뛰어난 세력을 떨친 제후 몇을 꼽아 춘추오패(春秋五覇)라 일컫는데, 그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제(齊)나라 환공(桓公)이다. 명 재상 관중(管仲)의 보좌를 받은 환공은 후세 사가들에 의해서도 제후국의 국력을 새로운 차원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제나라의 생산력과 군사력을 크게 발전시켰다. 춘추시대의 슈퍼파워였던 셈이다.
  
  제나라의 인접국 중 제법 덩치가 큰 것이 노(魯)나라였다. 그래서 제나라의 팽창정책에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되곤 했다. 노나라 장군 조말(曹沫)은 용기와 담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명성이 있었지만 제나라 군대와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졌다. 노나라 장공(莊公)은 견디다 못해 제나라가 탐내는 수읍(遂邑)의 땅을 할양하기로 결정하고 환공과 가(柯)라는 곳에서 화친의 맹약을 맺기로 했다.
  
  두 나라 임금이 단상에 올라 맹약을 맺으려 하는데 장공을 수행해 온 조말이 뛰어올라가 비수 한 자루로 환공을 위협했다. 환공이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묻자 조말이 대답했다. “제나라는 강한 나라이고 노나라는 약한 나라입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핍박하는 것이 너무 악착스럽습니다. 이제 노나라 성벽이 무너지면 제나라 땅에 떨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환공이 이에 전쟁으로 빼앗은 노나라 땅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자 조말은 비수를 거두고 단을 내려와 신하들 틈에 끼어 공경하는 자세로 서는데 얼굴빛과 말소리에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환공은 분한 마음에 조말과의 약속을 묵살할 생각을 했다. 그러자 관중이 간했다. “작은 이익을 탐해 스스로의 즐거움만 찾는다면 제후에게 신의를 잃고 천하의 지지를 잃을 것입니다. 약속대로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환공은 노나라에서 빼앗은 5백 리 땅을 모두 돌려주었다.
  
  사기 자객 열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가만 생각하면 두 나라가 모두 이득을 본 윈-윈(win-win)의 결말이다. 노나라는 잃었던 땅을 되찾았고 환공은 협박 밑에서 억지로 한 약속까지 알뜰하게 지키는 신의의 명성을 천하에 떨친 것이다. 관중 열전에도 이 일을 들어 천하 제후들이 제나라를 믿고 따르게 한 전화위복의 명책(名策)이었다고 칭찬하였다.
  
  전국시대의 무한경쟁 분위기에 비해 춘추시대는 균형과 질서가 지켜진 시대였다. 천자를 받들어 오랑캐를 물리친다[尊王攘夷]는 것과 끊긴 나라를 이어주고 망하는 나라를 살려준다[繼絶存亡]는 것이 이 시대의 구호였다. 제후의 힘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천자를 공경하는 자세를 지키고 약한 나라를 과도하게 짓밟지 말아야 했다. 이 규범을 어기면 천하의 공적(公敵)으로서 만인의 타도대상이 되어야 했다.
  
  오늘의 유엔을 춘추전국시대의 주(周)나라 천자에 비교할 수 있을까? 강대국에 비해 돈도 힘도 없는 미약한 존재지만 천하를 대표하는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조그만 약소국이라도 천자에 충성을 바치고 그 신하로 인정받으면 계절존망의 원리에 따라 주권을 존중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유엔에서는 크고 작은 회원국들이 어느 정도 대등한 발언권을 보장받는다.
  
  환공보다 4백여 년 후 진(秦)나라가 천하통일의 길로 치달을 때 주나라의 마지막 천자 난왕(赧王)은 진나라의 무도함을 꾸짖으며 천하의 제후에게 진나라를 공격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이미 압도적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주나라를 정복해 천자의 자리를 없애 버렸다. 기원전 256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35년 후 진나라가 통일을 완성한 후 시황(始皇)이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십여 년만에 진 제국은 붕괴해 버리고 한(漢)나라가 천하를 물려받는다. 한 고조(高祖)가 천자의 자리를 차지하고도 50여 년이 지나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내란을 겪은 뒤에야 천하가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기원전 154년의 일이었으니 주나라 천자가 사라진 후 백여 년만의 일이었다.
  
  이 백여 년은 중국의 역사 중 양육강식의 행태가 두드러진 시기의 하나였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인륜을 따지지 않는 행태가 만연했고 통치자는 도덕적 권위보다 물리적 힘에 의지했다. 춘추전국시대의 뛰어난 문화가 이 시기에 파괴된 것을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탓을 돌리지만, 진시황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중국의 온 천하가 야만으로 돌아간 시대였다.
  
  환공의 제나라는 천하에 대적할 자 없는 국력을 쌓았지만 천자의 권위를 중심으로 하는 기본질서 안에서 합리적 발전의 길을 찾았다. 관중의 저술로 알려진 관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창고가 가득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衣食)이 넉넉해야 영욕(榮辱)을 안다. 위에서 법도를 지키면 육친(六親)이 굳어지고 사유(四維, 禮義廉恥)가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가 바로 멸망한다. 영을 내리되 물이 아래로 흐르듯 민심에 순응하도록 해야 하므로 논의를 낮추고 시행을 쉽게 하는 것이다.”
  
  관중이 환공에게 권한 정치는 기본을 중시하고 원리에 충실한 정치였다. 그래서 영토를 크게 확장하기보다 민생을 두텁게 하는 데 치중하여 춘추시대의 화려한 문화를 꽃피게 한 것이었다.
  
  역사의 흐름에 큰 힘을 끼친 것은 조말의 기개보다 환공의 도량이었다. 일개 필부의 행패를 당하면서도 이것을 오히려 신의를 과시하는 계기로 삼은 것은 목전의 득실보다 천하의 형세를 살피는 안목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읍이 작은 나라 하나 크기가 되는 큰 땅이었다고 하지만 환공은 이를 돌려줌으로써 그 대신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움켜잡았던 것이다.
  
  오늘의 슈퍼파워 미국이 어떤 정책을 취하는가에 따라 세계의 앞날이 크게 좌우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부시 정권은 관중이 말하는 법도와 사유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천하의 형세는 살피지 않고 목전의 득실에만 집착한다.
  

  이제 ‘선제 핵공격’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선제 핵공격’은 인류의 존속을 위한 기본문법에서 벗어나는 어휘다. 지금 선제 핵공격을 취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 뿐이라 해서 거리낌없이 그런 말을 입에 담고 있는 모양이지만, 누구에게든 선제 핵공격을 당할 수 있는 날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그토록 철석같이 믿을 수 있는 것인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