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서>가 나오고 2년쯤 후니까 벌써 20년이 되어 간다. 그때 살고 있던 제주도로 다테노 선생이 찾아왔다. 그 책을 일본어로 번역출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일부를 일본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 있다고 하셨다. 사적인 일기가 아니라 공적 자료로서 작성하신 뜻을 어머니도 물론 알아보고 있었던 것인데, 국내 발표 전망이 없는 30여 년 세월을 지내는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본어로 옮겨 놓을 생각까지 일으키셨던 것이다.

 

어머니가 번역해 놓은 원고를 미처 꺼내보기 전에 찾아온 다테노 선생에게 일부 번역이 있다고 하니까 반색을 하면서 "그러면 이 선생님께서 마저 번역을 하시면 출판교섭 등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을 도와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크레딧에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책이 잘 나오기만 바라는 그 마음에 약간 감동했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 번역을 꺼내 보니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을 선생에게 보냈더니 어머니와 자기의 공역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 제안을 어머니는 정말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당시까지 수필은 쓰고 계셨지만 긴 작업은 바라볼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당신 뜻을 대신 이뤄드리겠다는 제안이었으니. 미안한 마음을 이런 말씀으로 눙치셨다. "시작이 반이라니까, 공역 맞지 뭐."

 

그래서 일본어 번역판 <소우루노 人民軍>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요즘 나 욕하는 사람 없나 싶어서 네이버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는데, 뜻밖에 다테노 선생 기사가 떠오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350794

 

그 양반도 여든이 다 되었구나. 그러고 보니 제주도로 찾아올 때 연세가 지금의 나랑 비슷했겠네. 아직까지도 하고 싶은 일 열심히 찾아서 하고 계시다니 참 보기 좋다. 나도 저렇게 되었으면.

 

그런데 선생이 지금 하고 싶은 일로 내 책을 일본어로 옮겨 내는 것을 꼽고 있다니! 또 한 번 감동이다.

 

"그동안 번역한 한국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는 김성칠 전 서울대 교수의 한국전쟁 일기 '역사앞에서'를 꼽으면서 김성칠 전 교수의 아들인 역사학자 김기협 씨의 책도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내 책이 선생의 번역을 받을 수 있다면 일생의 큰 기쁨 하나가 될 것이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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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08 17:00

    <역사 앞에서>와 <해방 일기>는 저에게 역사서에 ‘혼’이 담길 수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의 가슴 떨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역사 앞에서>는 한국 전쟁 중에 그 시대를 밝히는 역사학자의 진솔한 일기이기 때문에 가치가 높지만 <해방 일기>는 방대한 양 뿐 아니라 해방 공간의 신문 자료, 그동안의 한국 현대사의 연구 성과물을 망라하고 국내의 역사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세계사적인 폭넓은 시야로 쓰여진 진일보한 연구성과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해방 일기>가 상, 하 두권 정도로 발간이 되고, 일본어로나 영어로 번역 출판이 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 뿐 아니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역사서로 남을 것입니다.
    다테노 아키라 선생님 같은 분이 일본에 많다는 사실이 일본이 가지는 힘입니다. 국내에서도 교수님께서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원합니다.

    • 2013.07.09 10:25

      다테노 선생이 의중에 둔 책은 <밖에서...>나 <망국의...>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끝 줄 말씀 동감합니다. 한국사회에 비해 자기 생각 하고 자기 길 걷는 사람이 많다는 점은 일본사회가 부러운 점입니다.

  2. 2013.07.08 18:46

    선생님 개인 뿐만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희망적인 소식이네요. 꼭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3.07.09 10:28

      다테노 선생이 일본 문화계에서 존중받는 권위를 가진 분인 만큼 그분이 뜻을 둔 책이라면 돈 안 되는 책이라도 받아줄 출판사가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기대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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