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메일에 왜 자꾸 착오가 생기는지 잘 모르겠네요.

 

선생님 블로그 통해서 진즉에 편지는 접수했습니다.

다만 요즘 제 마음이 썩 편치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어졌네요.

선생님의 우호적인 반응과 달리,

저는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얻어 맞고 있거든요.

한국사 전공하시는 한 분과는,

메일로 실시간으로 다섯 편의 글이 오고가는 설전도 펼쳐야 했습니다.

근대라는 잣대를 거두고 동아시아의 과거를 다시 보자, 는 제안이,

자꾸 '친중파'로 독해되니 곤혹스러움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저의 궁극적인 지향 또한 더 나은 '한반도'에 있음이 분명한데도요.

작년까지의 글에서는 이런 격한 반론이 없었는데,

그래서 요즘에는 제가 선생님을 대신하여 덤탱이로 욕을 실컷 먹는 것 아닌가 하는 투정도 입니다.

나이도 모자라니 만만한데다가,

아직 소화도 덜 된 채로 자꾸 토해내니 마땅치가 않을 수 있겠죠.

 

소화불량의 절정은 이번 달에 쓴 <고별민주>라는 글이었어요.

어디 응모를 겸하여 작심하고 시작은 했더랬습니다.

이 또한 다분히 선생님과 교신하며,

또 직접 뵙고 들은 몇 토막 말씀들에 크게 자극받은 바가 있었지요.

이거야말로 근대의 마지막 신화마저 깨는 파천황이구나 해서 덥석 물었고,

몇 달간 민주주의 공부를 좀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몇 달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큰 주제였나 봅니다.

원고지 80매 쓰는데 근 한 달을 전전긍긍 했거든요.

아주 죽을 썼습니다.

본래는 선생님께 미리 선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투고할 만한 것인지, 아직 여물지 않아 더 익혀야 하는 것이지 감별을 청하려고요.

헌데 억지로 겨우겨우 글을 짜내다 겨우 마감에 임박해 마침표를 찍었고,

원고를 보낸 이후 지금은 후회만 한가득입니다.

다시 꺼내어 보고 싶지도 않네요.

애당초 감당할 수 없었던 일을 저질렀구나.

쓰다 만 글을 보냈으니 민망함도 이루 말할 수 없고요.

약간 울적하기까지 합니다.

아는 것의 8할만 말하라, 는 말씀도 귓가를 계속 맴돌고요.

아무래도 '어른 흉내'는 그만둬야 겠습니다.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아요.

 

서중석 선생님 정년 인터뷰는 여러 매체에서 접했습니다.

뉴라이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진보(역사)학계'에 대한 호통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현대사 공부만 열심히 해서야 제대로 된 반격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그래서 역전(?)당한 것 같거든요.

조선에도 '근대'의 맹아가 있었다라는 내재적 발전론의'뻥'이 밝혀지면서,

식민지 근대론 등이 맹위를 떨치고 이에 마땅히 대응할 방로를 못찾은 것 같아요.

그들이야말로 근대의 가치=진보에 충성했던 사람들이니까요.

역문역, 한역연 등 '87년체제'의 역사학 그룹들이 활력을 잃은 것도,

19세기 이전과 단절된 20세기에 지나치게 편중되었던 패착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조선을 다시 읽는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 작업이 '회심의 일격' 같던데요.

 

그런 차원에서 저는 <노무현의 대한민국>을 크게 기대하는 편입니다.

선생님이 자처하시는 '보수주의'라는게,

근대의 좌/우 자체를 상대화하는 새로운 지평을 말하는 것 같거든요.

제가 여기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어울렸던 친구들이 대저 '좌' 쪽인데,

그 편도 뉴라이트 못지 않게 근대의 질곡에 갇혀 있는 듯해요.

제 글에 부정적인 반응도 그 쪽이 더 심하고요.

'건강'이라고 표현하셨던 잣대,

20세기나 근대를 근원적으로 재인식하는 척도로 대한민국을 살필 수 있는 안목.

그런 패러다임으로 한구사를 조감해 주시면,

저도 그에 슬쩍 기대어서 좀 편하게 욕 덜 먹으면서 말할 수 있지 싶습니다. ^^

 

<해방일기>의 대미가 머지 않았네요.

마지막 편의 글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건강과 건필을 빌면서.

 

-이병한 드림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