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30년 전 계명대학에서 바둑팀 만들어 재미있게 놀고 지내단 이야기를 적은 일이 있다. ("이제 후보 선수를 어디서 구해 오지?") 통계학과의 김장한 교수와 김용곤 교수, 물리학과의 김규택 교수, 그리고 나, 넷 다 김 씨라서 우리 팀에 '4김방'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학교를 떠난 후 22년 동안 세 분 다 만나지 못하고 지냈다. 가까이 다정하게 지내던 생각을 하면 아쉬운 일이지만, 내가 워낙 사람들 안 만나는 방식으로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다 지난 추석 직전 김규택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도 학교 떠난 지 여러 해 됐고 양평 가까이 살고 있으니 틈 나면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김규택 선생은 4김방 중에서도 제일 무관하게 지낸 사이였다. 고등학교 후배에 같은 과 후배이기도(1년 다닌 물리학과도 다닌 걸로 쳐준다면) 할 뿐 아니라 기질이 묘하게 맞물리면서도 부딪치는 데가 있어서 어울리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가까운 사람들 둘러앉아 얘기하다 보면 꼭 우리 둘이 맞붙어 싸우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 집에 얼마나 많이 놀러 다녔는지, 그 집 딸아이(하나) 이름뿐만 아니라 강아지(초롱이) 이름까지 여태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김규택 교수 얘기 나온 길에 내가 포복절도했던 상황 하나를 적어놓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한 번 김규택 교수가 내 방에 들렀는데, 마침 피아노과 김형배 교수도 들렀다. 김형배 교수는 오하이오대학 소속이면서 객원교수로 계명대학에 와 있었는데, 내게 중학교 2년 선배고 신선 같은 우리 형과 친구 사이라서 각별히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그분이 계명대 있는 동안 내 배꼽을 뽑아놓은 일이 여러 차례였는데, 그 날이 그중 한 차례였다.

 

나는 뭔가 잠깐 정리해 놓을 일이 하나 있어서 커피를 뽑아 초면인 두 분이 잠깐 담소를 나누게 해놓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오디오 마니아로 음악감상을 좋아하는 김규택 선생, 모처럼 피아니스트와 이야기 나누는 기회를 반갑게 받아들여 금세 열띤 음악론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아뿔싸! 가야금의 대가 황병기 교수가 화제에 오르는가 하더니 김규택 교수의 입에서 속마음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탄성 한 마디가 나오고 말았다. "음악을 하는 데도 머리가 필요한가 보죠?"

 

지금까지는 음악을 하는 데 머리가 필요한 줄 전혀 몰랐다는 얘기가 경기중학 6년 선배인 피아니스트를 상대로 어찌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나온단 말인가! 그것도 자기 딴에 음악을 많이 이해한다는 인간이! 귓등으로 이 말을 들은 나는 아연 긴장했다. 고함이 터져나올 것인가, 재털이가 날을 것인가?

 

그런데 한참 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다.(그 시간이 내겐 무척 길게 느껴졌다.) 김형배 교수는 눈을 꿈벅꿈벅하며 김규택 교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내가 보기엔 "아이구, 한심한 인간아~" 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떼는데, 상상도 못 한 희한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문요, 귀가 머리에 달렸거든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김규택 교수는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조금 전 자기가 했던 말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걷잡지 못할 웃음을 터뜨리다가 한참 만에 조금 걷잡을 듯하다가는 주고받은 말이 다시 머릿속에 돌아오는지 걷잡던 웃음을 다시 터뜨리기를 몇 차례 거듭했다. 원래 잘 웃는 사람이지만, 앉은 자리에서 그렇게 많이 웃는 것을 다시 본 일이 없다.

 

22년 만의 전화를 받은 며칠 후에 마침 양구 갈 참이었기에 가는 길에 들렀다. 아내는 친정 다니러 가 있어서 혼자였다. 서종면의 별장 단지에서 부인이랑 오붓하게 살고 있었고, 잘 웃는 편안한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떠나고 10년쯤 지난 뒤에 학교를 떠났으니 벌써 10여 년 된 일인데, 내 얼굴을 보니 그 생각이 나는지 학교 떠나던 경위를 이야기해준다. 취미를 살려 오디오 분야의 IT사업체를 만들면서 교수직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조그만 사업체 하나 정도야 교수직 걸어놓은 채로 운영하는 것이 보통인데 굳이 그만둔 것도 지나친 욕심을 싫어하는 그다운 일이라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사업도 몇 해 전 걷어치우고 생활에만 열중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교수직 그만두는 과정에서도 음악을 둘러싼 오해가 한 고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학교 측에서 생각을 돌려보라고 사표를 처리하지 않고 있는 동안 대구 지역 IT업체 합동 박람회 같은 것을 여는데 이 친구 회사도 참여했다고 한다. 어느 날 여러 대학 경영진이 함께 구경 왔는데 계명대 신일희 총장(당시엔 이사장이었을지도)도 있었다. 이 친구 회사 차례가 왔을 때 누군가가 "진부하게 클래식판 올리지 말고 대중가요 같은 걸로 올려보지 그래요." 하기에 손에 잡히는 대중가요판을 올렸다고.

 

그런데 이튿날 아침 부총장에게서 전화가 와서, 총장님이 김 교수 사표를 당장 처리하라고 하셨다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묻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생각하니 어제 시연으로 올린 판에서 나온 노래가 "잘 있거라~ 나는 간다~"였다고.

 

추석 밑에 보고 몇 달 됐는데 이번 주말에 나도 아내도 일이 없어서 김 교수 내외 보러 같이 갈 마음을 먹었다. 목요일 저녁때 전화하니 형편 괜찮다고, 환영이라고 해서 금요일 점심때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어제 아침 일어나 떠날 생각을 하니 너무 피곤하다. 떠나기 전부터 이러니 갔다 와서는 일에 지장이 크지 않을까 겁이 난다. 그래서 전화 걸어 약속을 취소했다.

 

일에 너무 짓눌려 보고 싶은 사람도 못 보고 지내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보려던 사람들 생각이라도 틈 날 때 몇 자 적어놓는다. <해방일기> 끝나면 좀 인간답게 살아야지.

 

참, 찾아갔을 때 '4김방'의 최후 얘기도 들었다. 김규택 교수 떠난 얼마 후 통계학과의 두 김 교수도 재임용에 탈락해 학교를 떠났다고 한다. 내 생각에 교수가 학교를 그만두면 90퍼센트 이상이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 같은데, 어울려 놀던 네 사람이 모두 교수직을 아주 그만두고 말았다니, 이것이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