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방문자께서 어머니에게 관심 가지시는 것을 느낍니다. 원래 어머니를 아시는 분들이 제 글을 통해 그리운 마음 달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제 글을 통해 이런 분이 계셨구나, 하고 관심을 일으키는 분들도 계시지요.
1986년 퇴직 이후 어머니께서는 블제자로 수행생활을 해 오셨고, 여러 해 동안 <월간 불광>에 수필을 게재하셨습니다. 그 글을 모아 <두메산골 앉은뱅이의 기원>(1991)과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1999), 두 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블로그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어머니 글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월간 불광>에서 데스크를 맡아준 편집장 남동화 보살님께 의논드렸더니 흔쾌히 공감의 뜻을 밝히며 <월간 불광> 홈페이지에서 퍼갈 수 있다는 힌트까지 주셨습니다. 보살님께 감사드리며 틈 나는 대로 한 꼭지씩 올려놓겠습니다. 성질 급하신 분들은 <월간 불광> 홈페이지로 가 보시기를...
첫 번째로 올리는 글은 2003년 5월호에 실린 것으로 손수 쓰신 가장 최근의 글 같습니다.
2003년 05월 통권 343호
특집 /부처님 감사합니다
2003년 05월 통권 343호 글· 영주(塋宙) 이남덕 |전 이화여대 교수  a


지금 대자암에는 연천봉(連天峰)에서 내려오는 맑은 봄바람에 백화만발입니다.

오늘은 초이레 대법회 날이라 법당에 모인 대중들은 큰스님을 모시고 봄기운에 가득 찬 예불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오늘 큰스님 법문은 마침 묘법연화경의 서품(序品)으로 다시 새로 시작하는 날이라 대중의 환희심도 컸습니다.

법화경은 우리가 아직 그 가르침의 깊은 뜻은 다 모른다 해도 다른 경전과는 달리 어려운 교리용어보다 비유담이 많고 우리가 일상 속에서 쓰는 말로 되어 있어서 우리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는 경전입니다.

오늘 법화경 독송과 큰스님 설법이 유별히 기쁘고 감동 깊었던 것은 천지에 가득 찬 봄기운의 덕택과 함께 사실은 지난 한 달 동안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으로 하여 새삼스럽게 ‘인간은 왜 전쟁을 해야 하나?’하는 인간성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것에서 해방이 된 것 같은 기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전쟁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은 한 지역의 좁은 범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설킨 복잡미묘한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가령 홍수가 난다든지 지진이 난다든가 하는 천재지변이면 그래도 뒷수습이 쉽지만, ‘전쟁’이라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재앙의 진행과 그 후유증은 그렇게 쉽고 간단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이 골치 아픈 문제에서 해방이 된 것 같은 기쁨을 느끼고 있는가?

그것은 ‘전쟁이 왜 일어나는가? 일어난 전쟁은 어떻게 해야 빨리 그치는가?’에 대한 대답을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은 내가 새로 발견한 대답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부처님께서 고구정녕 가르쳐 주신 것을 내가 눈, 귀를 막고 순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도 답답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가르침을 주셨건만, 현대의 우리들은 그 ‘마음’의 중요성보다 물질을 더 높은 데 두고 그것이 개인의 차원이거나 국가의 차원이거나 엄청난 숫자의 부(富)를 축적하지 않으면 마음의 넉넉함을 얻지 못하는 무슨 결핍증 환자가 된 듯이 느껴집니다. 미국이 얼마나 부강한 나랍니까?

그런데 왜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궁지에 몰린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지난 해 9월 11일에 뉴욕의 무역센터 건물이 한 허리가 두동강난 사건에 대하여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사건이라고 표현할 만큼 온 세계가 경악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미국은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태반을 이루는 나라입니다. ‘마태복음’ 5장 산상교훈에서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을 예수는 주셨습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라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시오. 오히려 누가 당신의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그에게 다른 편 뺨마저 돌려대시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하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원수를 사랑하고,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은 하늘에 계신 여러분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양사람들은 2천년 동안 들어왔습니다.

그러기에 로마교황청은 이번에 여러 번 미국에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리고 UN이사회에서도 미국이 내세우는 이라크가 소유하고 숨겨놓고 있다는 ‘대량학살무기’의 발견까지 전쟁도발을 만류했건만 미국은 듣지 않고 영국과 연합하여 대 이라크전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왜 ‘명분없는 전쟁’이란 말을 들어가면서 선제공격전쟁을 벌였는가?

그 후에 세계도처에서 미국에 대한 반전론이 치열하게 일어났고 미국 내에서조차 처음에 미국의 작전 미스로 반전논이 치성했지만, 개전 20일이 지난 이즈음은 전쟁을 일찍 마무리 짓는다고 할 만큼 형세가 미국에게 유리하게 되니 반전논이 수그러졌다고 합니다.

이번 미국·이라크 전쟁에 내가 그렇게 마음이 쓰였던 것도 다음 차례로 우리 한반도의 위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미국은 이라크·이란 등과 함께 ‘악의 축(軸)’이라고 불렀으니 말입니다.

미국이 왜 그렇게 전쟁광처럼 설쳤는가? 진짜 전쟁의 동기는 이라크에 있는 유전(油田)에 있었다고 하니 불교적 용어로 하면 탐·진·치(貪瞋痴) 삼독이 그 마음에 꽉 들어찼기 때문입니다. 모든 전쟁의 원인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해소할 약은 무엇인가? 이 삼독의 해독제.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옵니다.

인간이 공생(共生)주의 철학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진리입니다. 과거 성인들의 가르침이 전부 ‘사랑’과 ‘어짐〔仁〕’과 ‘자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전체가 함께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인간 및 모든 존재의 운명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 나머지 성인들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참으로 감사하게도 동양 천지에 태어나서 천지는 나와 동근(同根)이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동체(同體)라는 느낌을 저 소나무가지를 울리는 태고의 바람소리와 밤을 새워 계곡을 씻는 물소리가 하나로 화합하는 그 속에서 느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소동파(蘇東坡)의 시 그대로입니다.

山色豈非淸淨身 溪聲卽是廣長舌
색은 어찌 법신불(비로자나불)이 아니며, 시냇물 소리는 곧 부처님 설법이로다

우주에 꽉 차있는 생명을 느끼는 것이 참선이고, 진리〔眞如佛性〕와 하나가 되는 것이 선정(禪定)입니다.

이 진리를 가르쳐 주신 부처님! 그리고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부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는 오직 이 한마디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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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같은 방 계신 분들이 회의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어제 회의에서 중요한 안건들이 많이 논의되었다고 하던데... 행정복합도시 수정안도 백지화하기로 했다던가?
계시는 방 바로 앞의 복도 가 테이블에들 앉으셨군요. 뒤쪽이 거실이고 왼쪽 까만 카운터가 너스스테이션입니다. 원장님이 수시로 보내주시는 사진 덕분에 자주 가뵙지 못해도 일상생활의 단면들에 접할 수 있습니다. 한창 추울 때는 사진 속 근무자들의 반팔 차림만 봐도 마음이 놓이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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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젊었을 때는 몸의 힘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늙으면 몸을 달래고 돌봐줘 가며 살게 된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곤 했다. 그 말씀이 근래 들어 절실하게 느껴진다. 작년 봄 혈당 문제가 드러난 것이 확실한 경고장이다.

생각날 때마다 내 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커녕 신경조차 별로 쓰지 않으면서, 특별히 혹사시키지는 않아도 너무 살펴주지 않고 살아 왔는데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작년 초에 문제를 느끼기 시작하고도 매주 한 차례 산에 가 걷는 습관을 세운 이후 많이 또 좋아졌다.

그래도 앞으로는 더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마침 이 전무가 자기 다니는 한의원을 권해 줬다. 잠깐 설명을 들어도 오 선생이란 분이 믿음직한 의사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당동은 매주 두 차례 다니기에 너무 멀다. 고심 끝에 이 전무에게 부탁했다. 오 선생 아는 분 중에 일산 쪽에 추천해 줄 만한 믿음직한 분이 있는지 여쭤봐 달라고. 설 전에 연락이 왔다. 그래서 지난 주 일을 끝내 놓은 뒤 화정역 부근으로 한 선생을 찾아갔다.

과연 믿음직하다. 불필요한 말 별로 없이 자기가 생각하는 문제를 매우 효과적으로 설명해 준다. "믿음직한" 의사를 가리는 데 나는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한다. 첫째는 돈에 환장한 사람이 아닐 것. 둘째는 독단이 심하지 않을 것. 그런데 이 두 가지 기준이 서로 상치되는 면이 있다. 의사질 하면서 돈에 환장하지 않으려면 주견이 분명해야 하는데, 주견이 분명하다는 것은 독단이 심하기 쉬운 조건이다. 주견이 분명하지만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을 잘 돌아보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내 몸도 마음도 그런 사람, 자신을 잘 돌아보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다.

진찰 과정에서 나누는 몇 마디 이야기에서도 권위의 부담감 없이 '대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한 선생도 환자 중에 이렇게 천연덕스러운 사람 마주친 게 기분 좋았던 모양이다. 진찰이 끝날 무렵 한 가지 기분좋은 말을 덧붙인다. "선생님 말씀하시는 태도가 아주 유연하십니다. 그런 태도가 건강에도 좋은 것이지요. 원래부터 성격이 그러신 건가요?"

이것도 진찰 내용으로 유의할 만한 사항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도 나 자신을 돌아보는 자극이 되는 말씀이다. 원래는 학문적으로도 엄격하고 인간관계에도 참을성이 없는 편이었는데, 약 3년 전부터 이런저런 인연으로 매사를 전보다 넓게 보고 뒷쪽까지 들여다보는 쪽으로 습관이 바뀌어 왔다는 대답을 하면서, 이 변화의 의미를 스스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장 뚜렷한 계기는 어머니의 보호자 노릇을 하게 된 것이 분명하다. 모자간의 관계는 어머니 쓰러지신 후 완전히 새로운 양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는데, 그와 나란히 내 일과 생활의 모든 면에 변화가 일어나 왔음을 이제 돌아보며 확인할 수 있다. 주변의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몇 해 전과 달라진 것 같고, 무엇보다 글쓰기의 자세가 바뀌었다.

지금 매달려 있는 <망국 100년> 작업, 몇 해 전 같으면 이런 식으로 안 했다. 내 생각 중에서 꼬투리 잡힐 여지 없도록 확실히 다듬어낸 것이 아니면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몰려 덜 다듬어진 생각이라도 열심히 내놓는다. 어찌 보면 학문적 엄밀성을 포기하는 무책임한 태도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독자를 객체화하지 않고 함께 고민을 나누고자 하는 측면을 나 자신 분명히 느끼는 것이다. 독자에게 필자가 권위자로 임하기보다 이 세상을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의 관계를 앞세우게 된 것이다.

유연한 태도가 건강에도 좋은 것이라는 한 선생 말씀을 요긴하게 마음에 새긴다. 몸을 잘 보살핀다는 것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과 근본적으로 통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생각한다. 아주 망가져버리기 전에 추스를 수 있다는 것은 체질이나 심질(心質)이나 괜찮은 편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부모님께 새삼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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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