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뉴라이트 비판> 작업을 마무리할 때부터 바라보고 있던 <조선망국사> 작업, 1년 넘게 쳐다보고만 있던 것을 이제 시작해야겠다. 한 가지 작업에 이만큼 공을 들여 보는 것은 <밖에서 본 한국사> 이후 처음인데, 시간이 갈수록 벅차게만 느껴진다.
지난 봄까지는 빡빡한 틀을 바라보고 있었다. 1860년에서 1910년까지, 10년 단위로 하나씩 장을 만들고 하나하나의 장을 연표 형태로 풀어내는 틀을. 그런데 여름 동안 현실정치에 열을 올리는 동안 관련된 생각의 범위가 너무 넓어졌다. 이 생각을 치밀한 틀에 담아낸다는 것은 몇 달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니, 몇 년이라도 자신없다.
지난 주 김 선생님께 이 작업 구상을 말씀드렸을 때 생각 외로 깊은 흥미를 보여주시며 몇 가지 지표를 짚어주신 끝에 딱 한 가지 주의를 주신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쟁쟁하다. "자네, 똑똑한 체하지 마."
똑똑한 체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지 않아도 절감하고 있는데 아주 오금을 박아주신 말씀이다. 세상 어느 일에나 그렇듯 이 일에 지성도 필요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지성이 앞서서 밝혀줄 성질의 일이 아니다. 백여 년 전에도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 많았다. 나라 지키는 일을 지금 내가 소중히 여기는 어떤 일보다 소중하게 여긴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라는 무너졌다.
지성보다 중요한 것은 소속감이고, 거기서 번져나오는 고통이다. 백년 전에 있었던 일, 그럴싸한 설명 한 가닥 뽑아내면 크게 탓할 사람도 없고, 더러 탄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밖에서 본 한국사>를 그런 가닥으로 썼고, 선생님이 아무리 노여워하시든, 나는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사 전체를 놓고 보는 데 더 절실한 자세를 취했다가는 읽는 이들이 숨넘어 갈 염려가 있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다르다.
'망국'을 '국치'로 보는 관점은 넘어서야 한다. "나라의 부끄러움"이라니? 그 와중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주체로 "나라"라는 게 있었나? 고작 느끼는 게 "부끄러움" 정도인가?
비극이었다. 그것도 비장한 비극이 아니라 비참한 비극이었다. 백년 전의 조상들이 겪고 지나간 비극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비극이다. 해방, 4-19, 6월항쟁, 어떤 승리도 망국의 참혹함을 극복하지 못했다. 백년 전 이 사회를 덮친 참혹함은 그 자리를 지금도 지키고 있다. 형태만 바꿔서.
그 참혹함이 어떤 것인지 밝히는 것이 이 작업의 목적이다. 똑똑하다고 해서 잘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참혹함으로 받아들이고 괴로워할 줄 알아야 한다. 거기서 벗어나는 길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괴로움을 통해 그 참혹함이 어떤 것인지 힘껏 밝혀내면,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찾으러 나설 이들이 있겠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