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wards A Modern Future / 근대적 미래를 향해

 

이제 지금 상황으로 돌아와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는지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이 과거에 겪은 여러 단계와 수많은 접점을 되찾으려 하는 노력이 제게 놀랍습니다. 제일 먼저 지난 30년의 경험과 그 앞 30년의 경험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해방 후 60년의 시기를 쪼개지 않고 하나로 보는 것이며, 중국인이 원래 좋아하는 연속성의 느낌을 되찾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두 차례 혁명처럼 보이는 상황이 있었으나 그 상황들을 과거와의 근본적 단절로는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두 상황을 일관된 변화의 두 개 단계로 보고 중국에 닥친 도전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1949년 이후 두 개 세대가 겪어온 경험은 지난 30년과 그 앞의 30년을 합쳐서 볼 마음이 들게 합니다.

 

다음으로 찾는 과거와의 접점은 쑨원과 국민당이 대표한 민족주의의 연속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민족주의는 중화문명의 기초에 닥친 실존적 위협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합당한 반응이었습니다. 민족주의가 이룩한 현대 중국의 통합성은 소련에서 들여온 국제주의로 대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안에서 중국의 위치를 확보하는 데 민족주의의 결정적 역할을 지금은 서슴없이 긍정할 수 있습니다. 민국시대와의 접점을 확인하면 더 거슬러 명-청 왕조를 비롯해 중국의 역사 전체로 접점을 늘려갈 수 있습니다. 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 사이의 재균형을 이루는 능력은 미래를 향한 중국몽의 확실한 첫걸음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귀가 맞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1911년 혁명 이후 새 세대 역사학자들은 중국 근대사가 1840년 아편전쟁으로 시작되었다고 판정했습니다. 이 판정이 진보적 관점으로 인정되어 모든 역사교재에 도입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 후의 중국 역사학자들은 1840년 이후 시기를 1644년 명나라 멸망 시점부터 연결해서 서술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모든 왕조의 역사를 연결하는 장치가 정사(正史)인데, 명나라는 정사가 작성된 마지막 왕조였습니다. 청나라의 정사가 없기 때문에 1644-1840년 사이 근 2백 년의 공백이 남아있습니다. 후세의 정부들이 확인할 수 있는 청나라 역사가 없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19세기의 왕조 쇠퇴 이후의 진행과 느슨하게 맞춰진 여러 가지 서술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나라 멸망 후 전직 관료들이 표준적 청사(淸史)” 편찬을 시도했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고, 1928년에 나온 <청사고(淸史稿)>는 품질과 정확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명나라 멸망 시기와의 재접속을 해주는 청나라 정사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진지한 편찬 사업이 2002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역사학자가 힘을 쏟고 있으나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중국에게 과거와 현재 사이의 재균형을 찾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주는 한 사례입니다. 2백 년 공백을 메울 중요한 연구 대부분이 서양학자들이 세계사의 틀에 따라 내놓은 것이라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근세 역사의 비연속성을 부각시키는, 중국중심주의를 벗어난 <청사>의 편찬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Rebalancing, The Way Forward / 재균형, 앞으로 나아가는 길

 

재균형에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여러 형태의 유럽 사회주의와 중국의 국가사회주의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재균형이 있습니다. 중국이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유럽에서 발전한 자유민주적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발전 목표를 위한 모든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체제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강력한 국가에 의한 사회주의적 진보를 통해 세계적 자본주의에 내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중화문명의 핵심 가치들과 밖에서 들어온 이념들, 근대화 과업에 필요한 과학적, 경제적, 정치적 이념들 사이의 절충이 필요합니다.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하나는 충효(忠孝) 같은 전통적 가치에 관한 것입니다. 충과 효는 가정과 국가의 두 이념을 이어주는 접착제입니다. 얼마 전에는 젊은 중국인들이 그 가치에 회의적인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가치가 다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에는 가정과 국가 사이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여 시민사회의 발전을 촉진할 장치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개인에 대한 위로부터 국가의 요구와 아래로부터 가정의 요구 사이의 균형을 잡아 주는 결합 장치가 없습니다. 지금의 공산당이 당원들 사이에 그런 장치를 만들려는 노력을 할 수 있고, 그 장치가 사회적 결합력을 가진다면 두 가치 사이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로 생각하는 영역에는 각 왕조가 제국을 운영한 방법에 관한 모든 공식 기록이 들어 있습니다. 이 기록은 경()-고전의 원리들에 따라 편찬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바꿔 말하면, 각 왕조의 정책과 구조의 기록에 나타나는 이 원리들이 좋은 정치를 위한 지침이 된 것입니다. 그에 덧붙여 사()-기록은 현실 속에서 유가 원리들의 실효성을 확인해줌으로써 후세 학자들이 경-고전의 새로운 해석을 입증할 확실한 사례를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송나라 때 신유가(新儒家) 철학자들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

 

-기록의 이 중요한 기능이 청나라 말 유가가 국가 이념의 자리를 잃을 때 사라졌습니다. 1912년 이후 중국 사람들은 경-고전을 대신할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군벌 시대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했고 국민당 정권의 삼민주의 제안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1949년 이후로 마오쩌둥 사상도 덩샤오핑의 개혁 원리도 경-고전의 역할에 이르렀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록도 자리를 잃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근대적 방법론을 통해 중국의 과거를 세계사의 진행에 맞춰보려고 노력해 왔지만, -기록의 원래 기능이 회복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방법론 영역에서 새로운 과학과 철학을 적용해 찾아낸 새 지식을 근대 역사와 겹쳐서 본다면 경-고전을 다시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방법론을 사-기록보다 위로 올려놓는 지식 영역의 재균형이 이뤄진다면 중국중심주의와 유럽중심주의 사이의 차이가 의미를 잃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재균형의 대상이 무엇인지 모아놓고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제일 손쉬운 과제는 대륙의 힘과 해양의 힘에 관심을 고르게 가지는 지정학적 재균형입니다. 지난 20년간의 해군력 건설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새로운 인프라를 결합하기 위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으로 나타난 방향입니다. 그보다 어려운 과제는 만주족 제국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한족이 그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애쓴 배경 위에서 그 강역을 물려받은 중국이 어떤 모습의 나라가 되어야 할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은 제국의 과거와 민국의 미래 사이의 재균형을 위해 그 문명의 뿌리와의 접속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진보의 과제를 실현하면서도 중국의 연속성에 가치와 의미를 가진 요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식의 주요 영역들 사이의 재균형을 취하는 것이 좋은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여러 단계와 현재를 통합할 필요가 절실한 만큼, 중국인이 자기네 역사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결국 중국은 1911년 혁명 이후 그 사회 안에 흩어져 있던 구슬들을 모아 하나의 목걸이로 꿰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게는 강인하고 강력한 전통과 균형을 이루는 진보적 사회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빚어지는 사회주의가 중국의 특색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2016년 12월 옌칭 아카데미 심포지엄에서 강연 "중국과 세계: 관찰-분석-전망" 원고.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