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병일기", "해방일기"에 이어 "퇴각일기"로 내 글쓰기의 주축을 잡게 된 것은 <역사 앞에서>로 출간된 아버지의 일기로부터 받은 충격의 여파다. 나이 마흔이 다 되었을 때 어머니께 넘겨받은 일기를 읽으며, 무책임한 내 생활 자세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를 되는 대로 살아가던 내 모습을 매일매일 일기쓰기를 통해 반성해 가며 살던 그분과 대비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일기 쓰는 자세"에 접근하려 노력해 왔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下愚不移"의 탄식을 금할 수 없다. 아버지의 1946년 1월 30일자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한달 동안 일기를 걸렀다. 반성 없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반성할 겨를이 없었다."

 

그분의 존재가 지금은 그 일기로 세상에 남아있지만 당대 사람들에게 크게 느껴진 것은 <조선역사>였다는 사실이 신경림 선생이 <역사 앞에서>에 붙여준 글 "김선생 선생의 일기에 부쳐"에 나타나 있다. 신 선생이 "나는 그 책을 가지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공부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고 한 그 책을 집필하는 동안 걸렀던 것이다. 해방 후 동시대 사람들의 "우리 역사"에 대한 갈증을 급히 풀어주기 위한 작업을 위해 일상적인 반성을 접어놓고 한 달을 지낸 것이다.

 

"퇴각일기"를 두 달 넘어 걸렀다. 6월 중순 베이징에서 열릴 "천하란 무엇인가?" 워크숍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대니얼 벨로부터 받은 후 몰두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퇴각일기"에 적고 싶은 생각이 떠올라도 미뤄두고, 워크숍에 내놓을 생각을 키우고 다듬는 데 전념하며 지냈다. 왜 그렇게 몰두할 필요를 느낀 것인지는 출국 전에 한 차례 생각을 정리해 올리도록 하겠지만, 아버지의 <조선역사> 집필에 비기면 하찮은 일이다. 그만한 일 갖고 두 달 넘게 일기를 걸렀다는 데 "하우불이"의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챙긴 일은 <역사 앞에서> "보급판" 제작이다. 1993년에 나온 초판본은 일기 본문에 어머니와 신경림 선생 등 몇 분의 회고를 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정병준 씨의 고증과 해제를 붙인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이제 나오는 새 퍈본은 초판을 대치하는 것인데, 일기 본문만을 단촐하게 편집한 것이다. 앞으로는 새 판본과 증보판, 두 판본을 병행한다는 것이 출판사 방침이다.

 

새 판본을 만들 생각이 든 것은 일기 내용 일부를 출판에서 제외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초판을 낼 당시까지도 일기 중 등장인물이 많이 살아계셨고, 그중에는 일기 내용이 밝혀지는 것을 꺼리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기록의 큰 뜻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웬만한 내용은 접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이제 더 이상 그런 이유로 접어놓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었고, 그 사이에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시고 나도 유족 노릇을 길게 더 할 것 같지 않으니 일기 본문을 다 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재작년 가을부터, 이 블로그에 빠졌던 본문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http://orunkim.tistory.com/1608?category=256894

 

빠졌던 본문을 대충 찾아 올려놓은 다음 창비에 의논을 청하자 창비에서 "보급판" 의미에 가까운 새 판본을 만들기로 결정해 주었다. 그리고 황혜숙 씨와 유용민 씨가 앞장선 노력으로 새 책이 다음 주에 나오게 되었다.  (역사앞에서_펼침표지0525.pdf) 나는 추가할 항목 수를 헤아리지 않았는데, 표지를 보니 일기 39 항목과 기행문 1편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기행문이란 "속리산 기행"을 말하는 것인데, 일기 틈에 끼워져 있는 여러 편 글 중에 특히 완성도가 높고 아름다운 글이라서 대표로 들어가게 되었다. http://orunkim.tistory.com/1620?category=256894

 

책 앞에 붙일 짧은 글을 한 꼭지 써 달라기에 아래와 같은 글을 적었다.

 

아버지 일기를 어머니께 넘겨받은 것이 1987년 말, 내가 39세 되기 직전이었다.

아버지가 39세로 돌아가실 때 나는 두 살이었고, 직접 기억이 전혀 없다. 대단히 훌륭한 분이었다는 이야기를 자라는 동안 주변에서 계속 들었지만, 훌륭함의 의미를 어린 마음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돌아가신 분을 놓고 으레 하는 소리려니,” 삐딱한 마음으로 기울어지기도 했고, 사학과로 전과할 때도 그분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사학과를 다니며 아버지의 업적을 살펴보고 주변 분들의 새로운 회고에 접하며 그분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멋대로 추구해 온 공부 방향이 아버지의 궤적에 꽤 접근하는 것 같아서 묘한 기분이 종종 들 무렵에 어머니가 아버지 일기를 넘겨주셨다.

넘겨받은 일기에 나는 빨려들었다. 스냅사진으로만 접하던 풍경 속에 온몸으로 뛰어드는 것 같았다. 그분의 추상적인 훌륭함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구체적인 고민과 선택을 추체험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말의 세상을 살면서도 내 마음은 40년 전의 세계로 돌아가곤 했다. 무엇이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인지 생각을 모아볼 수 있었던 덕분에 얼마 후 교수직을 떠나는 결단도 가능했다.

일기를 출판하고 싶은 마음은 일찍 들었다. 그러나 많은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못하고, 한국전쟁 관련 자료로라도 남겨질 수 있다면 인연 닿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교수직을 떠난 후 틈틈이 입력해서 서중석 교수에게 가져갔다. 한국현대사 학술지에 자료로 올릴 길을 찾아달라고.

일기를 읽어본 서 교수가 어머니와 내게 치하해 마지않았다. 전쟁에 관한 자료로서만이 아니라 수필문으로서도 가치가 대단히 큰 것이니, 더 넓은 범위 독자를 위한 출판을 권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창비에 참여하던 백영서 교수에게 출판 검토를 부탁한 결과 1년 후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출판 과정에서 정해렴 선생과 한기호 선생을 비롯한 창비 여러분들의 이 책에 대한 애정은 유족들이 오히려 감동할 정도였다.

1993년 첫 출판 때는 출판 자체가 감지덕지한 일이어서 소소한 아쉬움은 접어두고 진행했었다. 그 아쉬움을 2009년의 개정판으로 털어낼 수 있었다. 개정판의 해제와 고증을 맡아준 정병준 교수의 성의에 또 한 번 깊은 감동을 느꼈다.

 

몇 해 전에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떠나시기 전 몇 해 동안은 제법 가까이 모시며 많은 교감을 나눌 수 있었고, 이 때 적은 시병일기를 <아흔 개의 봄>(2011)으로 출간했는데, 아버지의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긴 <역사 앞에서>에 이어 어머니의 흔적을 남긴 글이라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어머니가 아직 의식을 지키고 계시는 동안 아버지 일기 원본을 이화여대 도서관으로 보냈다. 힘든 세월 동안 일기를 지켜내신 공덕을 어머니가 긴 세월 보금자리로 삼으신 곳에 남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긴 것이다.

아버지 전쟁일기를 내 손으로 정리해 냈고, 어머니 시병일기를 내 손으로 써 냈고, 내 작업의 가장 큰 성과도 <해방일기>(2011-15)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일기라는 코드가 가족사를 관통하게 된 것이다. 역사학도의 업()이라 해야 할지.

일기 3부작이 갖춰진 후 생각이 <역사 앞에서>로 돌아왔다. 어머니도 떠나신 이제 유족의 역할을 내 손으로 마무리할 것은 없는가.

2009년 개정판 준비 때 제안했으면 좋았을 일을 소홀히 한 것 하나가 떠올랐다. 1993년 첫 출판 때 일기 내용을 접어둔 곳이 조금 있었다. 일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내용을 출판에서 제외한 것이다. 그리고 19506월 이후의 일기에 치중하면서 그 앞, 1945년 말에서 1946년 초 사이의 일기 중 맥락을 파악하기 힘든 부분도 더러 제외했다. 이제 그것을 펼쳐놓는 일로 마무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뜻을 창비에 알렸고, 창비에서 고마운 방침을 세워주었다. 정 교수의 해제와 고증이 담긴 개정판은 그대로 두고 일기 내용을 그대로 살리는 데 중점을 두는 작은 판본을 새로 만들어 나란히 발행하겠다는 것이다. 담당하는 이들이 바뀌어도 이 책을 아껴주는 창비의 마음이 한결같은 데 다시 한 번 감동한다.

저자의 존재는 다른 어떤 업적보다도 이 일기를 통해 세상에 남았다. 그 동안 지켜 온 유족의 손에서 이제 아주 떠나보내며, 새로운 세대의 많은 독자를 만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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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