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파국'을 기다리는 전략

기사입력 2009-01-29 오전 8:35:44

한반도의 엔트로피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엔트로피'는 통상적인 말로 정확히 바꾸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굳이 갖다댄다면 '평형'이나 '안정' 비슷한 것이다. 열역학 원리로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 하는 사회열역학에서는 인간 사회의 자연적 변천이 특권의 해소와 계급의 소멸을 향해 간다는 비유로 엔트로피의 법칙을 제시하기도 한다.

쉬운 말로 "물은 아래로 흐른다"고 하는 것도 엔트로피 법칙의 한 표현이다. 중력의 작용을 받는 물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여지를 가지고 있다면 평형성이 부족한 상태다. 흐르고 흘러 바다나 호수에 들어가든, 웅덩이에 고이든, 더 낮은 곳을 찾을 수 없을 때 엔트로피는 최대가 된다. 말하자면 물의 흐름은 엔트로피를 늘려 가는 과정이다.

'평형'이니 '안정'이니 하면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실인즉 엔트로피 증가의 방향은 곧 죽음의 방향이다. 사람을 비롯해 생물체가 살아있다는 것은 엔트로피가 비교적 낮은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더 늘어날 여지가 없는 상태가 바로 '죽음'이다.

평형과 안정이 없는 사회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든다. 그래서 평형과 안정을 늘리려고 많은 사람들이 애쓴다. 그러나 평형과 안정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사회의 역동성이 사라져 버린다. 공산권 붕괴 과정에서도 드러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엔트로피 수준이 꽤 낮은 편이다. 남한 사회만 봐도 그런데, 북한까지 넣어 민족 전체를 본다면 평형과 안정을 늘려갈 여지가 엄청나게 많다. 물에 비유하자면 높은 폭포를 앞둔 강물과 같다. 앞으로 당분간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큰 변화를 겪어갈 장래가 눈앞에 닥쳐있다.

지금까지의 냉전체제는 물이 낭떠러지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댐이었다. 이 댐이 무너지며 폭포의 위력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정주영 씨의 소떼가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도, '총풍'을 빌미로 북한 측이 남한 정치권을 갖고 노는 듯한 모습도, 이 폭포의 낙차가 큰 데 말미암은 일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억지로 막아온 흐름이기 때문에 한번 터지면 큰 파괴력을 보일 수밖에 없다. 급격하고 심대한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도 가져다주고 고통도 가져다줄 것이다. 이 폭포의 잠재적 에너지가 터빈을 돌려 생산적인 용도에 쓰일지, 아니면 배를 뒤집어버리고 말지, 사회 전체의 큰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 관계의 전개는 좁은 이해관계를 떠나 대국적 자세로 임해야 할 과제다.

▲ 마오쩌둥이 죽었다느니, 김일성의 건강이 어떻다느니, 심심하면 한 번씩 헛소문을 열심히 돌리는 것이 냉전시대 반공 풍속의 한 양상이었다. 2008년에 그 풍속이 되살아난 것은 냉전 회귀를 바라는 일부 세력의 염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일과 만나겠다는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이 염원은 좌절되고 말겠지만,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한민족의 과제를 외면하는 지금 상황이 국가와 민족 사이에 끼인 이 사회의 장래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지.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1998년 말 위 글을 쓸 때는 냉전체제가 한반도에서도 걷혀지고 있다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전망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까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듬해부터 정체 상태에 빠졌다. 후퇴는 하지 않았지만, 진척이 더뎠다.

정체상태를 가져온 일차적 원인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긴장 강화 정책에 있었다. '악의 축'이란 이름 아래 부시를 앞세운 네오콘의 국지적 긴장 강화 획책에 한반도가 걸려든 것이었다. 갈등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고착·심화시킴으로써 군사대국으로서 미국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것이 네오콘 전략의 기조였다.

갈등을 지키고 키우는 데도 지렛대가 필요하다. 분쟁 지역에 미국의 긴장 강화 정책에 동조하는 앞잡이가 없으면 정책의 효과에 한계가 있고 오히려 역효과가 클 수 있다. 이슬람권 쪽에서는 파키스탄과 이스라엘이 그 역할을 맡았고, 북한과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남한에게 그 역할이 기대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 정책은 부시의 긴장 강화 정책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고이즈미의 일본 정부가 그래서 앞잡이 노릇 대신 해주느라고 나름대로 수고했지만, 한국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과는 수준이 달랐다. 그 동안 남 북관계 발전이 빠르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일이라도, 부시 일당의 의도를 놓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선방'한 셈이다. '악의 축' 얘기를 할 때 부시에겐 분명히 북한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한국과 중국이 앞장서서 그 의도를 가로막은 것이다.

햇볕 정책을 견지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부시에게 불만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는 이 불만을 여러 방식으로 드러냈다. 한국의 수구파는 이 불만에 고무받아 자파 단결을 촉구하는 전형적 레토릭으로 미국과의 '혈맹' 관계를 활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미 간의 혈맹 관계는 한국인에게 부끄러운 과거일 뿐이며, 한국 수구파와 미국 네오콘 사이에 그 그림자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명박의 열렬한 부시 사랑이 이 그림자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지만, 부시가 백악관을 떠난 이제 누가 이에 응답해줄 것인지.

폴 크루그먼이 <미래를 말하다>(The conscience of a Liberal, 예상한 외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펴냄)에서 '자유주의자의 양심'을 들먹이며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도덕성을 비판했거니와, 평화를 등지는 네오콘의 대결 정책은 신자유주의의 연장선 위에 펼쳐진 것이었다. 대결 아닌 통합의 메시지를 내세운 오바마의 등장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퇴진과 함께 네오콘 대결 정책의 청산예고하고 있다.

이제 남북 관계는 혈맹의 그림자에서마저 벗어나 한반도가 처해 있는 상황에 맞춰, 그리고 그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펼쳐질 기회를 맞고 있다. 이 기회에 임하는 북한 주민들의 자세에 관해서는 내가 잘 알지 못하고, 또한 관여할 일도 아니다. 남한 주민들의 태세를 보며 정치의 질곡을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다. 이명박 정부의 단절·대립 자세는 어느 여론 조사를 보아도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받고 있는데도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0년 전 급격한 남북 관계 변화의 전망을 폭포에 비유하면서, 폭포 대신 그런 대로 헤쳐 나갈 만한 급류로 그 낙차를 소화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동안 부시와 네오콘 때문에 낙차를 많이 줄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물러선 이제 지금부터라도 엔트로피의 급격한 증가에 대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텐데 이명박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일종의 전략"이라며 직무유기 전략으로 버티고 있다.

엔트로피의 비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북 관계의 변화가 한국 사회에 엄청나게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내다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부시와 오바마의 교체가 이 변화에 획기적인 고비가 되리라는 것도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다. 그런 판국에서 택하는 '기다리는 전략'이란 파국을 기다리는 전략일 수밖에 없다. 오바마가 명언한 북한 지도자와의 대화 용의를 놓고 "선거 때 무슨 소린들 못 하겠냐?"고 하는 것은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해야 할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고 해야 할지.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펴냄)에서 경제는 멋대로 말아먹어도 좋다고 했다. 그 짓 하라고 뽑아준 거라 우기면 할 말 없다. 하지만 남북 관계만은 정략적 득실 때문에 망치는 일이 없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적었다(164쪽).

남북 관계 파탄은 경제 파탄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손실을 이 나라 이 민족에게 가져올 것이다. '경제 살리기'에 현혹돼 찍어준 사람들은 많아도 '남북 관계 죽이기'를 하라고 찍어준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 믿는다. 남북 관계, 정말 그런 식으로 틀어막아도 되는지는 국민들에게 다시 물어보기 바란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