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황제의 꿈

기사입력 2009-01-23 오전 8:28:01

새로운 연재 '10년 전으로'를 시작하며…

"보수주의자의 한국 근·현대사" 연재를 연초에 마친 후 '페리스코프'를 그 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들께 또 무슨 밑천을 보여드릴 것이 있을지 고심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보수주의의 흐름을 짚어보는 일을 지금까지 작업의 연장선 위에서 구상하고 있으나, 독자 여러 분께 보여드릴 만한 틀을 짜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좀 색다른 방식의 칼럼을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7년 봄에서 2000년 봄까지 3년간 매주 두어 개씩 짤막한 칼럼을 쓰며 지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칼럼들을 묶어 2003년에 <미국인의 짐>(아이필드 펴냄)이란 제목으로 책을 냈었는데, 다시 들춰보니 1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원래의 칼럼과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나란히 올려서 여러 가지 주제의 앞뒤를 비쳐보는 데도 나름의 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인터넷 기반의 언론이라서 가능한 방식이겠지요. 여러분과 함께 그 묘미를 살려보도록 애쓰겠습니다.

황제의 꿈 : 人治와 法治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루고 천하통일에 이르는 데는 법가(法家)의 법치주의가 큰 몫을 맡았다. 제민(齊民)의 원칙 아래 귀족의 세력을 억눌러 절대왕권을 세우고 엄정한 상벌로 효과적 국민동원을 기했던 것이다.

통일을 이룬 뒤 시황제(始皇帝)는 법치주의를 천하에 확장하려 했다. 황제의 호칭을 시황제로부터 2세 황제, 3세 황제로 나아가도록 한 것도 황제의 인격을 배제하고 철저한 법치를 내세우려는 상징적 조치였다.

몇 해 전 프랑스의 젊은 중국사학자 장 레비가 시황제를 소재로 <황제의 꿈>이라는 소설을 써 공쿠르상(역사 소설 부문)을 받은 바 있다. 이 소설에서 시황제는 인간의 불확실성을 싫어해 자신을 중심으로 기계와 로봇의 세계를 쌓아나가는 편집광적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의 극단적 법치를 풍자한 것이다.

시황제가 구축한 정교한 통치체제는 그가 죽자마자 파탄을 드러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일화로 악명 높은 환관 조고(趙高)가 황제의 죽음을 숨긴 채 황제의 뜻을 가장해 황제의 작은 아들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며 자신에게 대항할 만한 인물을 몰살시킨 것이다. 얼마 후 통일 이전의 전통을 회복하려는 봉기가 각지에서 일어나자 지도력을 잃은 제국은 삽시간에 와해되어 버렸다.

조고의 발호는 극단적 법치의 폐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통치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형식화돼 있었기 때문에 황제 측근에서 정보를 장악하고 있던 일개 환관이 권력의 공백기를 틈타 천하를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이다. 태자 부소(扶蘇)가 조작된 자결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던 것이 시황제가 만든 통치체제의 성격이었다.

시황제는 통일의 위업을 완벽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영원히 유지될 체제를 만들려 했다. 불로장생의 선약(仙藥)을 찾은 것과 같은 욕망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바로 체제의 파탄으로 이어진 사실은 그 체제가 법치의 원칙 못지않게 그의 개인적 지도력에 의존해 왔음을 반증해 준다.

권력 운용의 난맥상이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인치(人治)가 법치(法治)로 바뀌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물론 유린돼 온 법치의 원칙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법치의 원칙은 훌륭한 정치를 보장하는 만병통치의 선약(仙藥)이 아니다. 법치 원칙 회복과 함께 지도력 육성과 도덕성 강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을 우리 사회는 필요로 한다.

  1997년 봄 위 글을 쓴 것은 당시 법치의 강조가 도를 넘는 풍조를 걱정한 때문이었다. 오랜 독재시대를 통해 국가 운영이 통치자의 자의에 맡겨지던 폐습에 대한 반발로 인해 인치로부터 법치로 옮겨가는 것이 사회 발전의 진로라고 널리 인식되고 있을 때였다. 그런 분위기에 맹목적 법률 만능주의가 끼어들어 새로운 형태의 억압 기제로 나타나고 있었다.

20일 아침 용산 참사에 대해 청와대에서 맨 처음 나타난 반응은 "과격 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는 부대변인의 논평이었고, 한승수는 총리로서 '유감의 뜻'을 표하는 자리에서 '불법 시위'란 말을 거듭 써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시위가 과격하고 불법한 것이었다면 진압 방법의 잘못이 정당화된다고들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러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한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이유로 죽고 다친 일을 놓고 '과격'과 '불법'을 따지는 사람들, 공직자의 책임은 차치하고 인간으로서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존재들이다.

현 집권 세력의 법률 만능주의는 소위 '입법 전쟁'에서 드러난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을 힘겹게 이겨낸 이명박 측은 대통령 선거를 가뿐하게 치른 다음 한나라당의 국회 세력을 자기네 정략적 목적에 이용하려 해 왔다. 대통령의 힘을 지렛대로 한나라당을 농락, 자기들이 원하는 정책을 무더기로 법제화하려는 것이다.

정책의 법제화는 의회정치의 원리에 맞는 것이며, 그 자체로 아무 문제없는 일이다.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입법 전쟁에 쏟아낸 법안 중에 정책 법안이 아닌, 위헌 가능성 높은 권력 강화용 공안 법안이 잔뜩 들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나라당 차원과 국회 차원의 논의가 청와대의 강압 때문에 모두 부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음현금으로 바꾸듯 대선과 총선의 승리를 권력으로 환전하는 수단으로 법률을 이용하려는 것이고, 이 수단의 효과를 담보하기 위해 법률 만능주의를 내세우는 것이다. 이런 법률 만능주의가 진정한 의미의 '법치'가 되지 못하는 것은 헌법 정신, 나아가 명문 헌법의 효과까지도 권력과 법률의 장벽으로 차단하기 때문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법률을 도입하고 그 운용을 대통령이 지휘하는 권력기관들에게 맡긴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조항과 헌법 정신은 국민들에게서 모습을 감출 것이다.

▲ 인간의 불확실성을 싫어해 다양성을 말살하려던 진 시황은 온 세상 전체주의자들이 우러러볼 선구자였다. 수천 년 뒤의 추종자들에게까지 남겨진 그의 가르침은 법률 절대주의였다. 사진은 지난 6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적, 폭력적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명박 대통령. ⓒ프레시안
 
나라꼴이 갈수록 이상해지는 것을 놓고 사람들은 지금 국회보다 청와대를, 한나라당보다 이명박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하면 국회와 한나라당의 문제가 더 크다. 한 개인이나 하나의 집단이 권력에 눈이 멀어 이상한 짓 하려 드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있는 일이다. 제대로 된 제도라면 그런 요소가 나타나더라도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히는 일이 없도록 억제를 해줘야 한다. 국회는 가장 중요한 국가 제도이고, 한나라당도 '공당'으로 자타가 공인할 규모의 정당이라면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로서 면모를 보여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집단이 일으키는 문제를 억제는커녕 증폭시키기만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국회와 한나라당의 문제를 내가 크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을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로 보기 때문이고, 청와대와 이명박의 문제를 작게 생각하는 것은 없어도 괜찮은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 제도는 없애도 되지만 국회가 없는 세상을 나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명박은 없어도 괜찮지만 한나라당은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다. 이명박은 폐쇄적 소수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인물일 뿐이지만 한나라당은 이 사회 상당한 범위의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연재한 <뉴라이트 비판>을 읽고서 어떻게 진짜로 '비판'만 하면서 '비난'은 그만큼 자제할 수 있냐고 신기해하는 분들이 있었다. 비결은 간단하다. 그들의 생각을 바꿔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지금 휘두르고 있는 힘에 현혹되어 제 할 일을 잊고 있는 한나라당 사람들에겐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을라!"

이 사회에 법치 원칙 회복 못지않게 지도력 육성과 도덕성 강화가 요긴하다고 10년 전 썼던 글을 다시 꺼내 보며 마음이 착잡하다. 미국처럼 구성이 복잡한 나라에서도 도덕적 쇄신의 필요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도력의 발전을 보고 있는데, 이 나라 정치 도덕의 추락에는 바닥이 없는 것인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