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해방에서 꼭 반년이 되는 오늘 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이 성립되었습니다. 선생님은 1월 4일 김구 선생의 비상정치회의 소집에서부터 비상국민회의를 거쳐 민주의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내내 앞장서서 힘써 왔습니다. 해방을 독립으로 연결하고자 반년간 애써 온 보람을 크게 느끼시는지요?


안재홍: 반년이 되었군요. 민족통일전선 결성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아직 보람을 이야기하기는 이른 것 같군요. 이제부터 민주의원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린 일입니다.


김기협: 선생님은 시종일관 독립의 길을 여는 열쇠로 임정 추대를 주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해방 시점의 임정이 변동 없이 그대로 가야 한다는 한민당의 ‘직진론’에 맞서 임정이 지금의 국내 사정에 맞는 변화를 겪어야 한다는 ‘보강론’을 견지해 왔습니다. 김구 선생 이하 임정 요인들이 주축이 되어 비상국민회의와 민주의원을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보강론’에 맞는 방향 아닌가요?


안재홍: 직진론은 애초에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었고, 임정은 어떻게든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변화가 그렇게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 것 같아 걱정입니다.

바람직한 변화란 본질적 가치를 지키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임정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이겠습니까?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성 아닙니까? 임정 밖에서도 독립동맹, 재미한인회 등 해외 독립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정이 대표적 상징성을 가지는 결정적 조건은 1942년 가을의 좌우합작입니다. 비록 현실적 여건 때문에 모든 독립운동을 임정의 품안에 바로 끌어안지는 못해도 여건만 된다면 모두 끌어안겠다는 자세를 보여준 것입니다.

비상국민회의로 방향을 바꾸면서 좌익에 대해 너무 성의를 안 보였습니다. 더 성의를 보인다 해서 좌익이 충분히 호응했으리라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임정 비주류 몇 분이 주비회에서 물러서는 일은 피할 수 있었고, 피해야 했습니다. 그분들이 임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임정이 비상국민회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이탈은 실질적으로 임정과의 결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주류의 이탈은 임정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손상입니다. 임정의 본질적 가치가 지켜지고 있다면 만일 비상국민회의나 민주의원이 제대로 안 될 경우 임정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임정은 실질적으로 소멸되어 버린 셈입니다. 지금의 비상국민회의나 민주의원이 국민에게 과연 임정만한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습니다.


김기협: 선생님은 건준 이래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전선을 계속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1월 7일의 4당 코뮈니케에서 반탁의 표현이 너무 약하다고 불만을 표하신 후 좌익의 포용에 전처럼 공을 들이지 않으신 감이 있습니다. 비상국민회의 주비회 좌장을 선생님이 맡고 있는 동안 좌우 결별이 더 뚜렷해졌지요. 통일전선의 방향에 대한 생각이 바뀌신 건가요?


안재홍: 방향에 대한 생각이야 바뀔 수 있나요? 다만 마음먹는 대로 바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갈수록 깨닫게 됩니다. 합작을 궁극적 목표로 잊지는 말되 너무 집착하지 말고 당장의 일은 형세 돌아가는 대로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쪽에서 합작에 목을 맬수록 공산당은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임정과 인공이 5대 5씩 합치자는 말을 하더니, 4당 회의 때도 반탁이라는 말 자체도 꺼내지 못하게 하더군요. 모스크바 결정을 존중한다는 데 한민당, 인민당, 국민당이 모두 찬성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존중하더라도 신탁통치에 반대한다는 뜻은 민족의 입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요.

4당 코뮈니케 폐기를 놓고 한민당에 비난이 쏠렸습니다만, 한민당 입장, 특히 대표로 나왔던 가인(이병로)과 춘곡(원세훈) 두 분 입장을 어렵게 만든 것이 공산당입니다. 어떻게든 공산당을 포용하기 위해 무리한 정도로 양보해야 했으니. 국민당과 나는 참고 넘어가려 했습니다만, 반탁의 뜻 표시를 그렇게 가로막은 데는 한민당만 불만이 아닙니다.

공산당은 우익 쪽이 제안하는 합작을 외면하면서 따로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결성을 꾀하고 있습니다. 합작은 양측 성의가 마주쳐야 이뤄지는 것이죠. 지금 상황에서는 좌우가 각자 내부 통합을 추진하면서 다음 단계에서 대통합의 기회를 바라봐야겠습니다. 사실 좌우합작에 매달려 있는 동안 우익 내의 보조도 많이 흐트러진 것 같습니다.


김기협: 그런데 비상국민회의의 최고정무위원회가 민주의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나온 데는 여러 모로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28인 위원은 밑에서부터 선출된 것이 아니라 김구, 이승만 두 분 영수가 위로부터 임명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의결기구처럼 ‘의원’이란 이름을 단 것이 우선 이상합니다.

그리고 민주의원은 미군정의 자문기구죠. 비상국민회의가 민족을 대표하는 기구라면 미군정과 거래의 상대방이어야 할 텐데 미군정에 부속된 자문기구와는 격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전 민족을 대표하는 이름도 가지지 못하고 ‘남조선’에 국한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안재홍: 그것은 나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군정청과의 협조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비상정치회의에 독립촉성중앙위원회(독촉)를 끌어들여 비상국민회의로 방향을 바꾼 것도 군정청과의 관계에서 이승만 박사의 영도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임정에 비해 군정청에 협조적인 자세를 잘 취할 수 있는 길로 비상국민회의를 만든 것이죠. 하지만 그 집행기구인 최고정무위원회에 군정청 자문기관 간판을 단다는 것은...

이것이 지금의 형세가 요구하는 길이라면 어쩔 수 없죠. 그러나 나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에 계속 끼어들어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고정무위원회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을 이 박사께 재삼 말씀드렸더니 종당에는 흥분까지 하면서 참여를 강권하더군요.

이 박사 말씀인즉 지금 최고정무위원들이 머잖아 성립될 통일국가의 ‘대신’이 될 자리이니 꼭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좌우합작도 접어놓은 상황에서 자리 차지할 궁리나 하고 있으라는 것인지, 서글픈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차지하는 자리라면 정말 물러나고 싶었습니다.

‘민주의원’ 간판을 닮으로써 지난 한 달여의 노고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을 압니다. 그러나 결국 끼어들고 말았습니다. 지금 혼자 깨끗한 척한들 민족에게 무슨 공이 되겠습니까? 부끄러운 마음을 끌어안고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해나갈 수밖에요.


김기협: 인민당은 민주의원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더군요. 그 성명을 보면 인민당은 비상국민회의 불참여를 표방하고 있는 상태에서 굿펠로우 군정청 고문에게 자문위원회에 참여를 부탁받아 조건부 참여를 결정하고 있었다는군요. 그랬다가 최고정무위원회와 민주의회가 같은 기구라고 하니까 황당한 모양입니다.

인민당의 자문위원회 참여 조건이 참 당당했다고 생각합니다. (1) 당면한 민생 문제에 한한 자문기구일 것, (2) 결의제가 아닐 것, (3) 과도임시정부 수립 등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말 것의 세 가지였죠. 대표성도 없는 기구가 정치놀음 하는 데 들러리로 끼여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이겠죠. 민주의원의 문제점을 꿰뚫어본 것 아닙니까?


안재홍: 아무리 좋은 뜻의 일이라도 방법의 졸렬함 때문에 그 뜻을 잃고 마는 것이 늘 안타깝습니다. 작년 말에 독촉도 졸렬한 추진방법 때문에 많은 사람의 신뢰를 잃고 좋은 기회를 놓친 일이 있지요. 이 박사 말씀대로, 민주의원을 무슨 벼슬자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명분이 안 맞아도 벼슬자리를 미끼로 인민당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본데, 몽양이 그런 데 끌려들 사람이 아니죠.


김기협: 뜻이 좋은데 방법이 졸렬한 일이 더러 있을 수는 있지만, 하는 일마다 방법이 졸렬하다면 그 뜻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승만 씨가 12월 초 독촉 전형위원을 너무 편파적으로 뽑는 바람에 성망이 크게 깎였을 뿐 아니라 독촉 사업까지 저애된 일이 있었죠. 선생님께도 민주의원 참여가 통일정부의 ‘대신’이 되는 길이라면서 강권했다죠. 사람들을 그렇게 이해득실로 얽으려 드는 것은 자기 마음이 이해득실에 얽혀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한 가지 일을 하는 데도 자기 권력 위주로 결정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심(私心) 아닙니까? 사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방법의 졸렬함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일 것 같습니다.


안재홍: 이 박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는 보통사람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성격 관계도 있겠지만, 서양인들 사이에서 오래 산 까닭이 더 큰 듯합니다. 설산(장덕수)도 미국에서 오래 지낸 사람인데, 그 사람 행동방식을 이해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요. 가만히 보면 하지나 아놀드 같은 사람들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심, 즉 이기심을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박사는 이미 26년 전에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분입니다. 미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선 사람이고, 미국의 최고위 인사들과도 교분을 가진 분입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인 만큼 미국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 해서 멀리할 수 없는 것이고, 이 박사가 중요한 지도자인 만큼 역시 아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다른 점 때문에 사업이 잘못되지 않도록 열심히 도와드려야지요.


김기협: 김원봉, 장건상, 김성숙, 성주식, 비상국민회의를 거부한 임정 인사 네 분이 내일 민전에 참여할 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상정치회의 주비회를 떠날 때 그분들은 민전에도 참여하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좌우합작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했었죠. 그 입장을 바꾼 것을 놓고 비상국민회의 쪽에서는 비난이 높은 모양인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안재홍: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그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입장을 바꾼 것은 상황 때문에 부득이한 것입니다. 최고정무위원회가 민주의원 간판을 단 것이 더 큰 입장 변화죠. 이쪽에서 그분들을 비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입장 변화로 인해 임정이 무너져버리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임정의 가장 큰 가치는 그 선명성이 아니라 통합성에 있습니다. 주류와 비주류가 3년 동안 서로 다른 의견을 절충하면서 임정의 깃발을 함께 지켜온 바로 그 자세가 더 큰 틀의 좌우합작을 이루는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임정이 환국해서 움직임을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갈라져 버리다니.


김기협: 그분들이 임정 안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 역시 상황 때문에 부득이한 것 아닐까요? 이승만 씨가 이해득실에 따라 책략 부리는 것을 그분들은 신뢰하지 못합니다. 원래 비상정치회의는 그분들이 앞장서서 만든 것인데, 그것을 독촉과 합치고 한민당과 이승만 씨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임정을 대신할 비상국민회의와 최고정무위원회를 만든다고 하니 그분들이 그야말로 벼슬자리 하나 챙기려는 것이 아니고야 어떻게 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김구 선생이 임정을 든든히 지켜야 그분들도 임정을 지킬 수 있을 텐데, 지난 연말 이래 김구 선생의 행보가 선생님께는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는가요? 임정의 이름으로 통치에 나서겠다고 ‘국자’ 1, 2호를 발포했다가 체통을 깎이고, 이제 이승만 씨에 의지해 군정청 자문기구의 부의장으로 나서다니, 임정은 네 분이 떠나서 무너지기 전에 이미 주인에게 버림받은 신세 아닙니까?


안재홍: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국자’ 사태는 자신감이 지나쳐 ‘직진론’에 말려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일이 좌절되고는 너무 자신감을 잃어서 민주의원 간판까지 받아들이기에 이르신 것이 아닐지.

김구 선생마저 흔들린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김규식 선생이 손수 이끌던 민족혁명당을 포기하면서까지 곁을 지켜드리는 것이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떠날 분들은 떠나더라도 남는 사람들은 남아서 김구 선생의 앞으로의 행보를 잘 도와드려야지요.

지난 한 달 동안의 이야기를 하려니 나도 심사가 어지럽습니다. 당장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두고 민주의원에서 할 일을 잘 찾아서 하려니 당분간 무척 바쁘겠습니다. 다음에 만나요.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