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학자인 James Lynch에 따르면 영국이나 캐나다, 독일과 비교해볼 때 미국은 재산침해 범죄에 대한 형량이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침입 강도의 경우 캐나다에서는 5.3개월, 영국에서는 6.8개월이 선고된 반면 미국에서는 평균 16.2개월의 형량이 선고됐다. (홍은택, <블루아메리카를 찾아서> 178쪽)

 

모든 국민은 생명을 하나씩 갖고 있다. 그러니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서비스는 공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산에는 차이가 있다.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의 서비스는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집중적인 혜택을 주는 것이다. 모든 동물이 평등한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이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한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이 누리는 가치 중 생명은 가장 보편성이 큰 것이다. 생명이 없고는 다른 가치를 누릴 길이 (거의) 없고, 따라서 다른 가치를 위해 생명을 버리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재산은 그와 차원이 다르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성공이나 자기 마음의 평안을 위해 재산의 일부를 내놓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재산 전부를 버리는 사람도 생명을 버리는 사람보다는 훨신 많다. 그런데 다른 가치는 접어놓고 재산만을 생명과 함께 국가의 보호 대상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다른 가치들을 재산에 종속시키는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어떻게 되어 있나? 23조 1항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재산권을 보장하되 절대화하지는 않는 것이다.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할 수 있으니까. 국회가 판단하는 범위에서 보장한다는 것 아닌가.

 

그보다 훨씬 위에서 "기본적 인권"을 국가가 보장할 의무를 규정한 제 10조에는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제한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人權(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실제로는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사법제도가 있는 것이다. 재산권도 질서의 중요한 요소이므로 재산권을 침해한 범죄자는 징역을 통해 인권을 제한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재산권 침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인권을 제한받아야 할 것인가? 제한이 너무 심하면 인권이 위축되고 너무 약하면 재산권이 위축된다. 그런데 영국이나 캐나다가 재산권의 지나친 위축 때문에 질서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반면 그보다 2~3배 재산권 보호가 강력한 미국에서는 인권 위축이 상당한 문제로 나타나 왔다.

 

자본주의체제의 지나친 재산권 옹호 경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어 왔으면 "재산권 철폐"를 내세운 공산주의가 그만큼 큰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공산주의 운동이 좌초했다 해서 극단적 자본주의체제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사회구성원의 대다수가 불행을 겪는 체제가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개인소유권에 반대한다 해서 집단소유권만을 내세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소유'는 문명사회 인간생활의 불가결한 요소 아닌가. 소유의 대상 중에는 집단소유가 적당한 것도 있고 개인소유가 적당한 것도 있다. 다양한 소유 형태를 병행하는 것이 소유로 인한 불행을 가장 줄이는 길이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 전통문명에서는 꽤 다양한 소유 형태가 병행하고 있었다. 단적인 예가 농지에 대한 수조권과 경작권의 병립이었다. 일본 식민지배의 기초가 된 토지조사사업이 바로 경작권의 말살을 통한 소유권의 절대화를 위한 조치였다. 경작권이 있을 때는 소작인을 자의적으로 쫓아낼 수 없었고, 따라서 소작료가 소출의 절반을 바라볼 수 없었다. 조선 말기에 소작료가 5할에 이른 것은 국가의 경작권 보호 기능이 쇠퇴한 결과였다. 그런데 일제가 경작권을 아예 말살해 버리자 7할을 넘어 8할까지 치닫게 되고 수백만 농민이 농지에서 쫓겨나 일본의 탄광과 만주의 개척지로 몰려가게 되었다.

 

경작권의 존재만이 아니었다. 문중이나 마을의 공유지가 많이 있어서 불리한 조건의 구성원들도 의탁할 여지가 있었다. 동아시아만도 아니었다. 근대 이전의 어느 문명권에서도 소유권이 근대사회처럼 절대화된 곳이 없었다. 근대문명의 본산인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에서 근세에 겪은 인클로저 현상이 바로 사유재산권의 절대화를 향한 길이었다.

 

지금의 세계 상황에서 내가 가장 걱정하게 된 것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다. 사유재산권의 절대화에 이 관계를 악화시켜 온 큰 책임이 있다. 자연의 일부를 내 재산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어떤 가혹행위도 제도적 보장을 받는 것이다. 장차 위기가 심화되면 무엇보다 토지 등 자연자원에 대한 재산권부터 폐지되든가 조정될 것을 기대한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