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사람 아니면 보러 다니지 않고 꼭 필요한 일 아니면 나서지 않으며 산 지 오래되었다. 게으른 성격 탓이지만 공부에 집중하기는 좋았다. 그런데 "보이는 것"에 얽매여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는 근대인의 폐단에서 나도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즐거움을 나눌 상대나 가르침을 얻을 상대를 접할 기회를 많이 놓치는 것이다.

 

작년 초 신영복 선생의 부음에 접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분 글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읽은 중에도 흥미로운 것이 많았고 함께 할 시간이 있었다면 많이 묻고 배웠을 것이다. 장례식 같은 데 잘 찾아가지 않는 내가 그분 장례식에 간 것은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 장례식에서 그분에 대한 내 인식을 더 깊게 만든 일이 있었다. 그보다 2년 전, 그분 발병하시기 전에 돌베개 카페에서 마주친 일이 있다. http://orunkim.tistory.com/1389 나는 10여 년 전 이근성 씨와 함께 커피 한 잔 함께 한 기억이 있지만 초면의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 그분 글에서 가르침을 많이 얻는다는 내 인사말씀에 그분 응대가... "우리 집사람이 김 선생님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니, 부인이 좋아하신다면 당신 자신은 별로란 말씀인가? 떠오를 때마다 쓴웃음이 되살아나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장례식에서, 국화꽃을 영정 앞에 올리고 우향우, 유족에게 인사드리러 접근할 때, 부인이 곁에 있던 아드님에게 일러주는 것이었다. "김기협 선생님이시다." 면식 없는 분이 알아보시는 것을 보면 돌아가신 분 말씀대로 내 글을 무척 좋아하는 분 아니겠는가.

 

이어서 신 선생의 독특한 화법을 음미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 글을 당신도 좋아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그분은 당연한 사실을 인사치레로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이다. 그 부인이 내 책을 (아마 <아흔 개의 봄>?) 유별나게 좋아하신 일이나 그분에게는 언급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그분 글을 새로운 눈으로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문면에 나타나 있는 내용을 넘어 드러내지 않은 의미까지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고전의 독법과 비슷한 방식이다. 그 방식으로 새롭게 얻는 깨우침이 적지 않다.

 

지난 겨울, <China Model> 번역을 끝낼 무렵 번역의 의미에 관한 생각이 새로 떠올랐다. 저술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번역을 할 때, 지적 활동으로서는 불완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한 10년간 저술활동을 신나게 하고 보니 번역이란 작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저술활동의 '창조성'에도 결국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번역 작업에 더 실속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블로그에 "For Foreign Eyes"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http://orunkim.tistory.com/1687

 

<China Model>의 저자 Daniel Bell이 프린스턴 출판부의 중국총서 기획을 맡고 있는 터라 한국 학자의 중요한 글 번역출판 가능성을 물어볼 때 예시한 것이 신영복 선생 글이었다. http://orunkim.tistory.com/1769 상당히 고무적인 반응을 그는 보였지만, 나는 바로 추진할 수 없었다. 동양고전을 다룬 <담론>이나 <강의> 같은 책을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인데, 막상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니 제대로 옮기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남아 신 선생의 글을 조금씩 번역해 보기 시작했다. 신 선생 따르던 이들의 모임 더불어숲에서 소식지를 메일로 보내준 것은 장례식에서 남긴 흔적 때문일 텐데, 주간 소식지 <샘터찬물편지>에 신 선생 글의 짤막한 대목을 하나씩 발췌해 보여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내킬 때마다 번역해 블로그에 쌓아놓았다. 그런 식으로 그분 글을 더 익혀나가다 보면 더 적극적인 번역 작업을 시도할 엄두가 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며칠 전 더불어숲에 소식지 편집자 앞으로 메일을 보낸 것은 반년 남짓 작업해 본 결과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 선생 글은 해외 독자들에게도 내놓을 가치가 큰데, 내 작업이 그 자체로 번듯한 성과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나름의 노력이 잠재적 번역자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마중물 노릇이라도 할 수 있기 바란다는 뜻을 적어 보냈다.

 

봉선미 국장이 바로 답장해서, 내 뜻을 환영한다며 운영위원 몇 사람과 함께 나를 보러 찾아오고 싶다고 했다. 여러 사람 움직일 것 없이 내가 그쪽에 한 번 들르겠다고 하고, 마침 어제 운영위원회 회의가 있다기에 필동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즐겁고 편안한 자리였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신 선생 글과 가르침의 가치를 나처럼 알뜰하게 음미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반갑고도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준비하지 않았던 생각까지 함께 나누게 되었는데, 나는 이분들과 힘을 합쳐 신 선생의 앤솔로지 하나를 구체적 목표로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샘터찬물편지>에 실리는 것 같은 짭짤한 대목들을 잘 편집해 낸다면 저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외국 독자들에게도 꽤 강한 소구력을 갖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의욕 일으키는 이야기를 적다 보니 "이게 퇴각일기 맞나?" 갸우뚱하는 독자들도 계실 것 같다. 퇴각일기 틀림없다. 고개 푹 숙이고 "날 잡아잡수" 하는 표정으로 터덜터덜 걷는 것은 잘하는 퇴각이 아니다. 물러서는 길이라도 해야 할 숙제는 열심히 찾아 해야 제대로 된 퇴각이 된다. "나"의 껍데기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나"의 본질을 살리는 것이 퇴각의 옳은 자세고, 신영복 선생은 그 길의 좋은 선배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