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상식이 무너진 상황을 경험했다. 자본권력이 국가권력을 조종하는 일 정도는 오랫동안 많이 익숙해져서 그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기획력과 실행력도 변변찮은 일개 집단이 인품도 능력도 변변찮은 한 사람을 앞세워 여러 해 동안 이 나라를 마음껏 주물러 왔다는 사실은 아무리 상식 수준을 낮추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말한 것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이 많은 세태 때문이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기만 하면 사회가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원칙과 상식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통하고 말고 할 원칙과 상식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원칙과 상식에 믿음을 가졌던 것이 구시대의 막내로서 노무현의 비극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던가?

촛불의 승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는다. 하지만 이 승리는 원칙과 상식 사이의 거리를 보여줬다.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는 원칙을 한 차례 관철시키기 위해 온 세계가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일과 생활을 접어놓고 광장으로 나와야 했다. 정치가 무엇인가. 인민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회를 운영해 주는 일 아닌가. 몇몇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직접 나서야 했던 것은 한 마디로 정치 부재의 상황이었다.

촛불의 축제를 마감하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때다.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데는 90% 가까운 압도적 동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축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느 길을 가고 무엇을 할지에는 그런 압도적인 동의를 바라기 힘들다. 그런데 이 사회는 64, 5.54.5의 대립을 원만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는 원칙은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상식 중에는 되돌아볼 것이 있지 않을까? 한국인은 70년간 민주주의를 최고의 정치 원리로 추구해 왔다. 그 실현을 위해 많은 피와 땀을 흘려 왔다. 그런데도 온 국민이 자괴감을 겪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면, 그 목표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정의로 상식이 된 말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인민을 위한은 민주주의 원리가 분명하다. 인간사회에는 힘(재산)의 불균등이 존재한다. 힘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이익만을 위해 사회가 운영된다면 힘없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 사회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인민을 위한정치 원리는 정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체제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인민의에는 정치 원리로서 큰 의미가 없다고 나는 본다. 이름 붙이기는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되는 일 아닌가. 나치 정권도 스탈린 정권도 문화혁명기의 중국 정권도 인민의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특별히 어려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인민에 의한이란 원리에는 생각할 점이 있다. 인민의 대다수는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판단력도 시원찮은 사람들이다. 선거 끝나고 얼마 지나면 자기 손가락 자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우리나라 일만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도 요즘은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정치가 인민을 위한원리에 충실하려면 품성이 훌륭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운영을 맡겨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능력은 있지만 품성은 훌륭하지 못한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던 끝에 능력도 품성도 형편없는 대통령까지 겪고 말았다. 우리가 이제 막 뽑은 대통령의 능력과 품성은 어떨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선거를 3주일 앞둔 시점이지만 책이 나올 때 뽑혀 있는 대통령의 품성과 능력을 내가 확실히 믿지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믿음을 못 가진 사람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국민의 절반이 넘을 것이 분명하다.

몇 달에 걸친 평화적 항의를 통해 권력자를 퇴진시킨 우리 사회의 정치역량은 온 세계가 부러워할 높은 수준이다. 그런 역량을 갖고도, 게다가 최근의 경험을 겪고도, 국민 대다수가 만족할 만한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면 제도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원리를 밑바닥부터 뒤집어보는 이 책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것은 그 까닭이다. 1년 전 번역할 마음을 먹을 때는 물론 촛불사태 전이었다. 그래도 사태를 몰고 올 문제들은 이미 드러날 만큼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번역을 진행하는 동안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 미국의 대통령선거 등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리에 의혹을 품을 만한 상황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민주주의에 아무리 깊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의혹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품성과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의 선발을 인민의 투표에 맡기지 않는 상현주의(尙賢主義) 정치제도를 다룬 책이다. 정치가 좋아지려면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는 상식에 역행하는 생각을 담은 책이다. 민주주의 아닌 과거의 모든 정치제도를 봉건적이니 전제적이니 깔보던 근대인의 오만을 반성하게 해주는 책이다. 과거의 정치제도 중에는 지금의 선거민주주의제도보다 인민을 위한정치 원리에 더 충실하고 더 효과적인 것도 있지 않았을까? 중국의 1당독재에 다당제 민주정치보다 나은 점들이 있지 않은가?

중국 정치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인데, 화자(話者)가 순() 중국인이 아니라서 우리 읽기에 편하다. 캐나다 출신의 저자가 민주주의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이어서 민주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상식에 쪄들어 있는 독자들을 배려할 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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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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