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절 리치의 補儒論

 

리치는 1583肇慶에 처음 자리 잡을 때부터 입고 지내던 승복을 1594년 말부터 儒士 복장으로 바꿨다. 복장만 바꾼 것이 아니라 이때부터는 자신의 신분을 西士로 내세우며 중국의 관리, 학인계층과 대등한 예를 나눌 것을 고집했다. 이런 주장과 고집이 10년 너머 승복을 입고 승려로 행세하던 廣東省에서 통하기는 어려웠겠지만, 廣東省을 떠나 南昌, 南京, 北京으로 근거를 옮겨감에 따라 저항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337]

[337] <中國誌> 260: “유감스럽게도 廣東省의 영역 안에서는 이라는 지긋지긋한 딱지를 떼어버릴 수가 없었다. 다른 성에서는 도착하면서부터 학인계층과 같은 신분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하고도 유용한 일이었다.” 같은 책 271: 廣東省에서 교분이 있어서 리치가 친구로 생각하고 의지하려 한 南京 공부시랑 徐大任은 리치가 유삼을 걸치고 南京에 나타나자 리치를 즉각 南京에서 쫓아냈다.

融和의 방침은 한편으로는 두 문명의 상호 접근을 최대한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 문명의 이질적 측면들이 직접 부딪히게 만들었고, 그 충돌 속에서 리치와 그의 노선을 따른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과 서양 양쪽에서 협공 받는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19세기 중국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인 서양인 중 한 사람인 윌리엄스(Samuel Wells Williams, 1812-1884)가 중국을 소개한 책 The Middle Kingdom에서 마테오 리치를 극렬하게 비난한 것도 그런 맥락이 이어진 것이다:

리치는 신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들을 무시했다. 신학보다 책략에 소질을 가진 그는 중국에서 편안히 지내는 비결을 찾아냈다. 황제에게 그는 말 잘 듣는 신하였다. 이교도들에게는 미신에 영합해 주는 사제였다. 관리들에게는 궁정의 온갖 잔재주를 익힌 예의바른 동료였다. 그리고 악마에게는 충실한 하인이었으니, 악마의 지배를 배격하기는커녕 이교도에 대한 그의 지배를 강화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도들에게까지 넓혀 주었다. 그는 꽃으로 가려지거나 거짓된 들의 전당을 밝히는 촛대에 감춰 붙여진 십자가에 경배의 마음을 향하기만 한다면 기독교인도 우상숭배에 참여하거나 협조해도 된다고 가르치고 공자와 조상에게 제물을 바쳐도 된다고 하는 등, 이교도의 미신을 충실하게 섞어 넣음으로써 (기독교를) 왜곡했다.”[338]

[338] The Middle Kingdom (2 vols., New York, 1883): II-293.

19세기 후반, 유럽인의 자신감이 극에 달하고 중국의 제국체제가 눈에 띄게 무너지고 있던 시절, 중국의 開化에 매진하고 있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의 관점으로 전형적인 것이다. 윌리엄스의 눈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중국인들의 행복한 장래를 위해서는 통째로 말살해 마땅한 중국의 전통에 조금이라도 경의를 표한 리치의 태도가 악마의 심부름으로밖에 비쳐질 수 없었다. 리치가 26세 나이에 모국을 영영 등지고, 31세 이후로는 한 차례 마카오 방문 외에 중국인 사이에서만 평생을 보낸 것도 편안히 지내기위한 목적으로만 이해가 된 모양이다.

공격자의 편협성은 여기서 접어두고, 공격의 실질적인 내용 한 번 살펴보자. “신학의 기본적 원리를 무시했다는 것은 기독교인들도 우상숭배에 참여하거나 협조해도 된다고 가르치고” “공자와 조상들에게 제물을 바쳐도 된다고 한 것을 뜻한다. 이것은 리치가 기독교의 儒家 경전에 나오는 上帝와 동일시한 것, 그리고 불교와 도교의 범위를 제외한, 일반 중국인들의 제례를 원칙적으로 종교행사가 아닌 사회적 관습으로 보아 개종자들의 제례를 최대한 관용한 방침을 지적한 것이다.

이 방침들은 사실 리치가 죽은 직후부터 기독교의 본질과 신앙의 순수성에 저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점을 제기했다. 제일 먼저 제기된 것은 선교단 안에서였다. 동아순찰사 파시오가[339] 1612년 마카오에 왔을 때 리치의 후임 중국선교단장 롱고바르디에게 일본 선교사들의 우려를 전달했다. 리치가 보여준 의 모습이 중국인과 일본인들에게 잘못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340]

[339] 파시오(1551-1612)1578년 리치와 같이 동방으로 항해하고 1582년에 같이 발리냐노에게 불려 마카오까지 왔다. 리치보다 앞서서 1582년 말 루지에리와 함께 肇慶에 정착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 이듬해 일본으로 갔다. 그 후 일본 관구장, 극동순찰사를 지내고 1611년 일본 준관구가 관구로 승격하면서 초대 관구장을 지내는 등 예수회 극동선교의 조직과 행정에 발리냐노의 뒤를 이어 큰 역할을 맡았다. 리치와는 같은 이탈리아인이고 나이도 비슷해서 특별히 가까운 친구였다.

[340] 이런 위구심이 특히 일본 선교사들에게 일어난 것은 사비에르가 처음 일본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할 때(1549-51) 현지 신앙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채로 적응주의 노선을 너무 적극적으로 편 결과 하느님을 다이니치(大日)’라 불러서 혼란을 일으킨 일을 기억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롱고바르디가 선교사와 주요 개종자들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 개종자들은 리치의 관점을 지지했고 선교사들은 의견이 엇갈렸다. 롱고바르디는 지나친 적응주의에 반대하는 의견을 조사결과에 덧붙여 1623De Confucio ejusque doctrina tractatus를 발표했는데, 이 글은 1701년에 외방전교회에 의해 파리에서 Traite sur quelques points de la religion des Chinois 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어 예수회의 적응주의를 공격하는 근거로 널리 활용되었다.[341]

[341] J Gernet, China and the Christian Impact (Cambridge, 1985): 30-31.

롱고바르디가 가장 문제로 느낀 것은 과연 리치 등 선교사들의 경전 해석이 정확한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옛 경전들이 여러 가지 주석을 통해 상당히 넓은 폭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상황을 그도 가능한 한 유리하게 활용하고 싶었던 것은 경전 文面이 유리할 때는 그대로 따름으로써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함으로써 그들은 儒家 인물들과 쉽게 연합을 이룰 수 있었고, 그리하여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었다.”[342] 한 데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너무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을 개종자들의 태도에서 느낀 것 같다:[343]

[342] Gernet, 전게서: 28에서 재인용.

[343] Gernet, 전게서: 32-34에서 재인용.

우리의 학식 있는 교우들이 이런(경전의 文面이 기독교의 교의와 부합할 때는 그대로 해석하고 무신론자인 주석자들을 무시하라는) 권유를 해 주는 까닭은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자기들이 외국인의 법칙을 받아들인 데 대한 비난을 면하려는 생각에서 우리 종교와 자기네 교파 사이에 얼마만큼이라도 통하는 점이 있는 것을 너무나 기뻐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학자들이 경전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주석에 따른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오류가 많다고, 儒家의 원칙에서 벗어난다고 경멸을 받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자기 자신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에게 시키려고 드는 것일까?”

서 바오로[徐光啓]는 내게 진지하게 고백하기를 자기는 上帝가 우리의 일 수 없으며, 고금의 학자들 가운데 아무도 천주에 대해 알지 못했음을 확신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 신부들이 훌륭한 이유를 가지고 무엇보다 학인계층을 포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上帝에게 天主의 이름을 부여한 이상, 上帝에게 天主의 고유한 특성도 부여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하였다.”

레온[李之藻]과 이냐시오[孫元化]는 모든 근세의 학자들이 무신론자이며 주석자의 설명만을 따른다고 아주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유리한 文面만을 고집하고 주석에 신경 쓰지 말라고 권유한다.”

리치는 16092월에 당시 일본 관구장으로 있던 파시오에게 쓴 편지에서 중국선교의 전망을 밝게 보는 이유를 열거하는 가운데 중국인은 원래 天理를 중시하고 경전에 事天의 개념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344] 그는 중국인들을 기독교에 접근시킬 수 있는 통로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고, 선교를 위한 서적을 꾸미는 데도 엄밀한 의미의 교리서가 아닌, 일종의 안내서 같은 형태로 만들면서 기독교 교리가 중국 지식층의 철학과 연결되어 받아들여지도록 애썼다. 그는 <天主實義> 내용을 스스로 이렇게 내세웠다:

[344] <書信集> 413-414.

맨 처음에는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시는 유일신이 계시다는 증거가 제시된다. 이어서 인간 靈魂의 불멸성이 증명되고 善行惡行에 대한 賞罰, 특히 내생에서의 賞罰이 설명된다. 중국인들에게 많이 통용되는 靈魂輪廻에 대한 피타고라스 학설은 철저히 배척된다. 책의 끝 쪽에 가까이 가서는 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실용적인 글 한 편이 들어가고, 이 책에 완전히 설명되지 못하고 간략하게 소개만 되어 있는 법칙들에 대해 신부들에게 추가설명을 청하도록 권유하는 말로 끝맺어져 있다.”[345]

[345] <中國誌> 449.

실제로 <天主實義> 내용을 살펴보면 여덟 편 가운데 제일 앞 두 편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시는 유일신의 존재를 제시하는 데 바쳐져 있다. 上帝와 이 을 연결시키는 것은 의 속성이 충분히 설명된 뒤, 2편 끝부분에서 논의의 결론이 나오는 것이며, 이 명제가 논의의 다른 부분을 구속시키지 않도록 되어 있다.

1편에 들어가기 전, 引文에서부터 독자들에게 의 존재의 개연성을 힘들여 제시한 것은 논의에 앞서 독자의 저항감을 줄이는 데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어리석은 자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으로 여기니, 마치 소경이 하늘을 보지 못하여 하늘에 해가 있음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햇빛은 참으로 있는 것인데, 눈이 이를 보지 못한다 하여 해가 없음을 걱정할 것인가? 天主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데, 사람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며 또 돌아보려 하지 않는구나. 하늘의 주재자가 비록 형태가 없으나 그 온몸이 눈이라서 보지 못하는 바가 없고, 그 온몸이 귀라서 듣지 못하는 바가 없고, 그 온몸이 발이라서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음을 알지 못하는구나. 무릇 착한 일을 행하는 자는 높은 분이 계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심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분이 안 계시거나 계시더라도 人事에 관여치 않으신다고 한다면 어찌 行善의 문을 닫고 行惡의 길을 여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벼락이 고목나무만을 때리고 못된 사람들을 바로 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위에 그런 분이 계시지 않으리라 의심하는데, 이는 하늘의 갚음이 성글면서도 새지 않는 것이라서 늦을수록 더욱 무겁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346]

[346] <天主實義> .

首篇에 들어와 리치는 立說 방법에 있어서 인간이 禽獸와 다른 것은 是非를 가리고 眞僞를 알아내는 靈才가 있기 때문이니, 靈才를 배경으로 에 입각해서 추론할 것을 밝힌 다음[347] 주재자로서 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이렇게 제시했다.

[347] <天主實義> 23-26.

첫째로, 우리는 배워서 얻는 능력에 앞서서 良能을 가지고 있다. 이제 천하만국이 각자 자연의 誠情을 가져서 서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모두 하나의 上尊을 공경한다. 어려움에 빠진 자는 애달프게 구원을 바라기를 마치 어진 부모 바라보듯 한다. 악을 행한 자는 놀라고 두려워하여 마음이 억눌리는 것이 마치 큰 적국을 대한 듯하다. 어찌 이 達尊이 계신 것이 아니라면 세간의 人心을 주재해서 스스로 받들게끔 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로 知覺을 가지지 않은 사물은 원래 자리에서 스스로 움직임을 일으킴에 절도를 맞출 수가 없다. 절도에 맞춰 움직이기 위해서는 밖에 있는 靈才가 도와주어야만 한다. 예컨대 돌멩이를 공중에나 물속에 놓아두면 떨어져 바닥에 닿은 뒤에야 멈추고, 그리고는 다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돌이 저절로 떨어지는 까닭은 물속이나 공중이 돌의 원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람이 땅으로부터 일어나는 경우 같으면 원래 자리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지만, 그 움직임은 어지러워서 절도에 맞출 수가 없다. 하늘을 수놓고 있는 日月星辰의 경우는 하늘이 그들의 원래 자리이기는 하지만 기실 知覺도 없는 존재들이다. 이제 上天으로부터 운행하고 日月星辰諸天西로부터 거꾸로 운행하는 것을 보면, 度數가 법칙대로 지켜지고 次舍가 편안히 자리 잡혀 있어서 티끌만한 오차가 없다. 만일 尊主가 계셔서 그 사이에 알선하고 주재하지 않으신다면 이렇게 혼란을 피할 수가 있겠는가?

셋째로 知覺은 가졌지만 靈性을 갖지 않은 사물이 더러 영특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영특한 존재가 있어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鳥獸의 무리를 보면 원래 冥頑不靈한데도 배고프면 먹이를 찾을 줄 알고, 목마르면 물을 찾을 줄 알고, 화살이 두려워 하늘을 날기도 하며 그물에 놀라 山澤에 숨기도 한다. 입에 든 것을 뱉어주거나 젖을 먹여 주는 것은 모두 자신을 보존하고 새끼를 키우기 위함이니, 해로운 것을 막고 이로운 것을 따르는 것이 을 가진 존재와 다름이 없다. 이는 필히 尊主가 계셔서 보이지 않게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348]

[348] <天主實義> 29-31: 其一曰 吾不待學之能 爲良能也 今天下萬國各有自然之誠情莫相告諭而皆敬一上尊 被難者籥哀望救 如望慈父母焉 爲惡者捫心驚懼 如懼一敵國焉 則豈非有此達尊 能主宰世間人心 而使之自能尊乎 / 其二曰 物之無魂無知覺者 必不能于本處所自有所移動 而中度數 使以度數動 則必外靈才以助之 設汝懸石於空 或置水上 石必就下至地方止 不能復動 緣夫石自就下 水之與空非石之本處所故也 若風發于地 能於本處自動 然皆隨發亂動 動非度數 至如日月星辰竝麗于天 各以天爲本處所 然實無魂無知覺者 今觀上天自東運行 而日月星辰之天自西循逆之 度數各依其則 次舍各安其位 曾無纖忽差忒焉者 倘無尊主斡旋主宰其間 能免無悖乎哉 譬如舟渡江海 上下風濤而無覆蕩之虞 雖未見人 亦知一舟之中必有掌舵智工撑駕持握 乃可安流平渡也 / 其三曰 物雖本有知覺 然無靈性 其或能行靈者之事 必有靈者爲引動之 試觀鳥獸之類 本冥頑不靈 然饑知求食 渴知求飮 畏繒繳而薄靑冥 驚網罟而潛山澤 或吐哺 或跪乳 俱以保身孶子 防害就利 與靈子無異 此必有尊主者默敎之 纔能如此也 ...

이어서 리치는 이 주재자가 바로 창조주임을 다시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지만[349], 앞에 예시한 논리를 크게 넘어서는 것은 없다. 그 다음은 이 절대적인 존재임을 주장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제일 먼저 이 존재의 궁극적 근거임을 강조했다: “天主를 칭하여 근본()이라 하는 것이니 만일 출생의 근거가 따로 있다면 이는 곧 天主가 아니다. 사물 가운데 有始有終한 것은 鳥獸草木이요, 有始無終한 것은 天地와 귀신, 그리고 인간의 靈魂이다. 천주는 곧 無始無終한 존재이니, 만물의 출발점이며 또 그 근원이다. 天主가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물이 天主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지, 天主가 다른 무엇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350] 만일 天主께서 天地를 장악하지 않으신다면 어찌 天地가 만물을 생육할 수 있을 것인가? 天主께서는 진정 無上至大所以然이시니, 그런 연고로 우리의 옛 선배들이 그분을 所以然의 첫 所以然이라 한 것이다.”[351]

[349] <天主實義> 34-40, 앞 제1.

[350] <天主實義> 42: 西士曰 天主之稱 謂物之原 如謂有所由生 則非天主也 物之有始有終者 鳥獸草木是也 有始無終者 天地鬼神及人之靈魂是也 天主則無始無終而爲萬物始焉 爲萬物根柢焉 無天主則無物矣 物由天主生 天主無所由生也.

[351] <天主實義> 47: 使無天主掌握天地 天地安能生育萬物乎 則天主固無上至大之所以然也 故吾古儒以爲所以然之初所以然.

그리고는 을 인식하는 방법이 범상한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과 같을 수 없음을 밝힌 다음[352] 여러 측면에서 의 절대성을 논하였다:

[352] <天主實義> 55: 蓋物之列於類者 吾因其類 考其異同 則知其性也 有形聲者 吾視其容色 聆其音響 則知其情也 有限制者 吾度量自此界至彼界 則可知其體也 若天主者 非類之屬 超越衆類 比之於誰類乎 旣無形聲 豈有迹可入而達乎 其體無窮六合不能爲邊際 何以測其高大之倪乎 庶幾乎擧其情性 則莫若以非者無者擧之 苟以是以有 則愈遠矣.

이제 우리가 天主가 어떤 것인지 가리켜 말하고자 한다면,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니면서 그 高明博厚함이 天地보다 더하다, 귀신이 아니면서 그 신령함이 귀신의 따를 바가 아니다, 사람이 아니면서도 遐邁聖睿한 존재이다, 이른바 도덕도 아니면서 도덕의 출발점이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그에게는 사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서, 우리가 그의 과거를 말하고자 한다면 無始라는 말 밖에 할 것이 없고, 그의 미래를 말하고자 한다면 無終이라는 말 밖에 할 것이 없다.

그의 몸에 대해 미루어 말하고자 한다면 그 몸을 담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또 그 몸으로 채워지지 않은 곳이 없다. 움직임이 없으면서도 모든 움직임의 근원이 되며 손도 없고 입도 없으면서 萬森化生하고 萬生敎諭한다.

그의 은 허물어지지도 줄지도 않는 것으로, 에서 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의 는 막히는 곳도 틀리는 곳도 없는 것으로, 萬世以前부터 萬世以後까지 눈앞에 놓여 있는 것처럼 그를 벗어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의 은 완전하고 깨끗한 것이어서 모든 의 귀착점이면서 티끌만한 不善도 끼어들 수 없다. 그 은혜의 광대함은 아무 곳으로도 막힌 데가 없어서 사사로움도 없고 가리는 바도 없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으니 작은 버러지들까지 그 혜택을 입지 않는 것이 없다.

무릇 乾坤 안에 善性善行天主로부터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이를 本原과 비겨 본다면 물방울 하나를 滄海와 비기는 것만도 못하다. 天主福德은 그 융성하고 원만함이 洋洋優優하니 어찌 더할 것이 있고 뺄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江海의 물은 다 퍼낼 수 있고 모래밭의 모래알은 다 헤아릴 수가 있으며 우주를 다 채울 수가 있을지언정, 天主의 모습을 다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하물며 이를 다 설명해낼 수 있겠는가?”[353]

[353] <天主實義> 58-62: 今吾欲擬指天主何物 曰 非天也 非地也 而高明博厚較天地猶甚也 非鬼神也 而其神靈鬼神不啻也 非人也 而遐邁聖睿也 非所謂道德也 而爲道德之源也 / 彼寔無往無來 而吾欲言其以往者 但曰無始也 欲言其以來者 但曰無終也 / 又推而意其體也 無處可以容載之 而無所不盈充也 不動 而爲諸動之宗 無手無口 而化生萬森 敎諭萬生也 / 其能也 無毁無衰 而可以無之爲有者 其知也 無昧無謬 而往之萬世以前 未來之萬世以後 無事可逃其知 如對目也 其善純備無滓 而爲衆善之歸宿 不善者雖微而不能爲之累也 其恩惠廣大 無壅無塞 無私無類 無所不及 小蟲細介亦被其澤也 / 夫乾坤之內 善性善行無不從天主稟之 雖然 比之于本原 一水滴於滄海不如也 天主之福德 隆盛滿圓 洋洋優優 豈有可以增 豈有可以減者哉 故江海可盡汲 濱沙可計數 宇宙可充實 而天主不可全明 況竟發之哉.

이렇게 주재자-창조주로서 절대자 天主의 개념을 세운 다음에는 이것을 儒家의 다른 개념과 혼동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리치의 할 일이었다. 리치는 1604년 아콰비바 총장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太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太極은 새로운 것으로 50년 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354] 세밀히 검토해 보면 이 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고대 중국 성현들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들의 말에 따르면 太極이라는 것은 우리 철학자들이 말하는 제1質料[355]일 뿐이며, 하나의 실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의 물체가 아니라고까지 말하며, 또 동시에 이것이 모든 사물의 구성요소로 들어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의 일종도 아니고 이해의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물의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들이 말하는 物質도 아니고 知性도 아닌 것이니, 추론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理性을 뜻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실에 있어서 그들의 주장에는 워낙 괴상한 것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해석만 엇갈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겠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이 책[天主實義]에서 그들의 논설을 반박하기보다 우리의 의 개념에 적합한 방향으로 돌려세우는 편이 더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가 중국의 사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중국 사상가들이 우리 사상에 따라오는 쪽으로 해석해 내는 모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을 통치하는 학인계층은 우리가 이 (太極) 원리를 비판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는 원리 자체보다 원리에 대한 해석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마침내 太極이라는 것이 제1의 실존원칙으로서 지성과 무한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바로 이것이 다름 아닌 이라고 동의할 것입니다.”[356]

[354] Gernet‘50년 전이라는 것이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으로 보았지만,(전게서 253, 51) 필자가 보기에는 단순한 착오 같다. <中國誌> 95에서 道學의 시작을 ‘500년 전의 일이라고 한 적이 있으며, 周敦頤(1017-73)의 연대를 기준으로 보아 ‘500년 전을 쓰려던 것으로 생각된다.

[355]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물체의 현실성을 뒷받침하는 形相에 대칭하여 물체의 가능성에 관련되는 개념.

[356] Gernet 전게서: 27에서 재인용. 이 편지는 로마의 Casanantese 도서관에 문서번호 2136으로 소장되어 있는 데, <書信集>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天主實義>에서도 당시 儒學의 주류에서 우주의 근본원리로 파악하고 있던 와 존재의 출발점으로 생각되고 있던 太極上帝, 天主와 다른 것임을 역설했다. 먼저 太極尊奉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경전의 근거로 따졌다: “내가 비록 말년에야 중국에 들어왔지만 옛 經書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옛날 군자들이 天地上帝恭敬한 일만 들었지, 太極尊奉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만약 太極上帝이며 만물의 근원이라면 옛 성인들이 왜 그 을 감추었겠는가?”[357]

[357] <天主實義> 78: 余雖末年入中華 然竊視古經書不怠 單聞古先君子敬慕于天地之上帝 未聞有尊奉太極者 如太極爲上帝萬物之祖 古聖何隱其說乎.

그리고 太極이 존재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依賴者(accident, 偶有性)’自立者(substance, 實體)’라는 스콜라철학적 개념의 분석을 통해 주장했다:

대저 사물의 宗品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自立者, 하나는 依賴者. 사물 가운데 다른 몸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성립하는 것, 예컨대 天地, 귀신, 사람, 鳥獸, 草木, 金石, 四行(地水火風4원소) 등이 自立者. 한편 스스로 서지 못하고 다른 몸에 기대어서야 존재하는 것으로 五常, 五色, 五音, 五味, 七情 같은 것들은 依賴의 품에 속한다. 이들을 비교해 본다면 무릇 自立者는 앞서는 것이고 귀한 것이며, 依賴者는 뒤지는 것이며 천한 것이다. 한 물건의 몸에 自立者는 하나뿐이지만 依賴者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붙어 있다. 예컨대 사람의 몸 하나는 진정 自立者인데, 거기에는 情聲, 貌色, 彛倫 등 여러 가지가 依賴해 있고 그 종류가 매우 많다.

太極과 같은 것을 만 가지고 풀이한다면, 이것은 천지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다. 무릇 라는 것이 또한 依賴者여서 스스로 서지 못하는 것인데 어찌 다른 사물을 세워준단 말인가! 중국의 문인, 학사들이 논리를 논할 때 二端이 있음을 말할 뿐이니 곧 人心事物이다. 事物人心에 합할 때 事物眞實하다고 비로소 말한다. 人心事物에 깃든 를 남김없이 헤아려 그 가 완전할 때 이를 格物이라 한다. 이 두 가지를 볼 때 依賴者임은 확실한 일인데, 어떻게 사물의 근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두 가지가 모두 사물의 뒤에 있는 것인데 뒤의 것이 어떻게 앞의 것의 근원이 된단 말인가?

또 사물이 처음 있기 전에 가 존재했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어디에 자리 잡고 무엇에 기대어 있었단 말인가? 依賴者自立하지 못하니 기댈만한 自立者가 없으면 依賴者는 있을 수 없다. 묻건대 盤古에 앞서서 가 이미 존재하였다면 놀고 있으면서 움직여 사물을 만들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가? 그 후에 움직이도록 충동한 것은 무엇인가? 하물며 는 원래 動靜이 없다는데, 어떻게 움직였겠는가? 전에는 사물을 만들지 않다가 나중에 와서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났다고 한다면 에 어찌 뜻이 있다는 말인가? 사물을 만들고 싶어도 하고 않기도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358]

[358] <天主實義> 83-85: 夫物之宗品有二 有自立者 有依賴者 物之不恃別體以爲物 而自能成立 如天地鬼神人鳥獸草木金石四行等 是也 斯屬自立之品者 物之不能立 而託他體以爲其物 如五常五色五音五味七情等 是也 斯屬依賴之品者 且以白馬觀之 曰白 曰馬 馬乃自立者 白乃依賴者 雖無其白 猶有其馬 如無其馬 必無其白 故以爲依賴也 比斯兩品 凡自立者 先也 貴也 依賴者 後也 賤也 一物之體 惟有自立一類 若其依賴之類 不可勝窮 如人一身固爲自立 其間情聲貌色彛倫等類 俱爲依賴 其類甚多 / 若太極者 止解之以所謂理 則不能爲天地萬物之原矣 蓋理亦依賴 自不能立 曷立他物哉 中國文人學士講論理者 只謂有二端 或在人心 或在事物 事物之情合乎人心之理 則事物方謂眞實焉 人心能窮彼在物之理 而盡其知 則謂之格物焉 據此兩端 則理固依賴 奚得爲物原乎 二者皆在物後 而後豈先者之原 / 且其初無一物之先 渠言必有理存焉 夫理在何處 依屬何物乎 依賴之情不能自立 故無自立者以爲之託 則依賴者了無矣 如曰賴空虛耳 恐空虛非足賴者 理將不免于偃墮也 試問盤古之前旣有理在 何故閑空不動而生物乎 其後誰從激之使動 況理本無動靜 況自動乎 如曰昔不生物 後乃願生物 則理豈有意乎 何以有欲生物 有欲不生物乎.

<天主實義>의 사상적 근거가 스콜라철학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리치는 중국인 독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그 개념을 직접 끌어들이는 일을 최소한 자제한 것 같다. 依賴者自立者 개념 외에 리치가 드러나게 쓴 것은 所以然개념이었다. 리치는 作者(final cause, 目的因)’, ‘模者(formal cause, 形象因)’, ‘質者(material cause, 質料因)’, ‘爲者(efficient cause, 動力因)’의 개념을 설명한 다음, 模者質者는 사물 안에 내재하는 것이지만 作者爲者는 사물 밖에 있어 사물의 존재를 뛰어넘어서 先行하는 것이라 하고, 이것이 天主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359]

[359] <天主實義> 45-46.

그런데 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보는 儒家의 관점을 공격하다 보면 얼마간의 自家撞着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수레 만드는 사람의 예를 들면서 수레의 匠人의 마음속에 들어 있다면 왜 수레 하나를 마음으로부터 재깍 만들어내지 못하는가, 왜 목재와 기계와 노동이 들어간 뒤에야 수레가 만들어지는가, “어이하여 처음에는 크나큰 天地를 만들어내던 신기한 재주가 오늘날에는 쭈그러들어서 조그만 수레 하나 꺼내 놓지 못한단 말인가?”[360] 추궁하지만, 자신의 所以然이론을 가지고는 그 차이를 분명히 하기 어려운 것 같다. 결국 의 개념을 충분히 확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天主가 될 수 있으며, 호칭의 문제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리치는 인정한다: “당신이 말하는 가 만물의 을 품고 있어서 만물을 化生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곧 天主이니, 굳이 , 太極이니,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361]

[360] <天主實義> 87: 西士曰 ... 譬如今日有輿人於此 有此車理具于其心 何不卽動發一乘車 而必待有樹木之質 斧鋸之械 匠人之工 然後成車 何初之神奇 能化天地之大 而今之衰敝 不能發一車之小耶.

[361] <天主實義> 98: 如爾曰理含萬物之靈 化生萬物 此乃天主也 何獨謂之理 謂之太極哉.

 

의 모습을 중국인에게 밝혀주는 일 못지않게 리치가 공을 들인 일은 기독교 윤리를 중국인의 마음에 들도록 제시하는 일이었다. 리치가 한문으로 지은 첫 책이 <交友論>(1595)이었다는 사실에서도 리치가 얼마나 기독교 윤리 내지 서양 윤리를 중국인에게 제시하는 데 큰 의미를 두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15998南京에서 고향의 코스타 신부에게 이 책 몇 장을 기념품으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은 南昌에서 建安王의 요청으로 쓴 것인데, 이탈리아어로 설명을 붙여 놓았습니다만 중국어로 쓴 것은 유려하지는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 선교소에 있는 책 속에서 찾아낸 서양 격언과 哲人들의 名句를 가지고 중국인의 취향에 맞도록 꾸며 엮어낸 것입니다. 이 책은 나와 유럽인 모두의 명예를 적지 않게 높여주어서, 지금까지 한 어떤 일보다도 큰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과학이나 다른 분야 책들은 유럽의 과학기술이나 예술만을 보여주는 데 비해 이 책은 수양과 지혜, 문학을 소개해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몹시 좋아합니다. 이 책을 인쇄하려면 회장 신부님의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인쇄를 내가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두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인쇄해서 학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362]

[362] <書信集> 258.

몇 해 후(1604) <二十五言>[363]을 펴낸 데 대해서는 이런 기록이 있다:

[363] Christofer Spolatin, Matteo Ricci's Use of Epictetus (Waegwan, 1975)에는 이 책이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투스(55-135)의 글을 번역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

리치 신부는 여러 가지 도덕상의 문제와 靈魂한 성향을 바로잡는 방법에 관한 스물다섯 편의 짧은 글을 지었다. 인쇄 전에 내용을 검토해 준 중국인 친구들은 충심으로 공감을 표해 주었다. 사실에 있어서 그들은 그때까지 야만족에 속한다고 생각해 온 외국인이 그런 심오한 주제를 그토록 능란하게 다루었다는 것을 거의 믿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하고, 모두들 이 책자를 복사해 가지고 싶어 했다. 그는[馮應京] 이 책을 매우 높이 평가해서 지식층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고 나서 미신으로 얼룩진 어두운 德性과 기독교의 샘에서 솟아나오는 德性을 비교해, 어느 쪽이 개인의 에 더 적합하고 公益에 더 유용한지 판단하라고 촉구했다.”[364]

[364] <中國誌> 447.

리치는 儒家의 가르침이 현실에서 도덕과 윤리를 세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데 비추어 기독교가 儒學者들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 윤리가 일반 중국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交友論>이 넓은 범위의 중국 지식인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交友論>의 내용이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서양 철학자들의 저술에서 조각조각 주워 모은 것이기 때문에 일관된 사상체계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었고, 또 내용의 주류를 차지한 로마 사상가들은 기독교 전통과 밀접한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에게 기독교를 소개하는 목적으로 <天主實義>를 작성함에 리치가 그 내용의 중심축으로 삼은 것은 절대유일한 의 존재를 증명하고, 의 존재를 근거로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서술하는 것이었다.

앞 절에서 살핀 것처럼 의 존재와 속성을 주장한 다음 리치는 인간에 대한 논의로 옮겨오는데, 논의의 출발점을 세우기 위해 인간의 위치를 이렇게 규정한다:

세상에는 3이 있는데 下品은 이름을 生魂이라 하며 中品은 이름을 覺魂이라 하며 上品은 이름을 靈魂이라 하니, 곧 인간의 이라, 이는 生魂覺魂을 아우르기 때문에 사람을 키우게 할 수도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物情을 알고 느끼게 하기도 하며, 나아가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을 추론하고 理義明辯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의 몸이 죽어도 은 죽지 않으니 이는 영존불멸하는 것이다. 推論하고 明辯하는 일은 身形에 의거하지 않고도 그 이 혼자 할 수 있으니, 몸이 비록 죽고 모습이 비록 사라져도 그 靈魂은 그대로 이를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365]

[365] <天主實義> 133-134: 彼世界之魂有三品 下品名曰生魂 ... 中品名曰覺魂 ... 上品名曰靈魂 卽人魂也 此兼生魂覺魂 能扶人長養及使人知覺物情 而又使之能推論事物明辨理義 / 人身雖死 而魂非死 蓋永存不滅者焉 凡知覺之事 倚賴于身形 身形死散 則覺魂無所用之 故草木禽獸之魂依身以爲本情 身歿而情魂隨之以殞 若推論明辨之事 則不必依據于身形而其靈自在 身雖歿 形雖渙 其靈魂仍復能用之也.

生魂覺魂이 소멸하는 데 반해 靈魂은 소멸하지 않는 까닭에 대해서는 靈魂만이 四行의 물질계에서 초연한 때문이라 하고[366], 靈魂이 물질계에서 초연한 존재라는 증거를 다음과 같이 나열하였다.[367]

[366] <天主實義> 138: 子欲知人魂不滅之緣 須吾世界之物 凡見殘滅 必有殘滅之者 殘滅之因 從相悖起 物無相悖 決無相滅 日月星辰麗于天 何所繫屬 而卒無殘滅者 因無相悖故也 凡天下之物 莫不以火氣水土四行相結以成 然火性熱乾 則背于水 水性冷濕也 氣性濕熱 則背於土 土性乾冷也 兩者相對相敵 自必相賊 卽同在相結 一物之內 其物豈得長久和平 其間未免時相伐競 但有一者偏勝 其物必致壞亡 故此有四行之物 無有不泯滅者 夫靈魂則神也 於四行無關焉 敦從而悖滅之.

[367] <天主實義> 140-147.

1. 有形은 몸의 부림을 받지, 그 주인이 되지 못한다. 자제력을 가지지 못하고 욕망에 그대로 따르는 동물과 달리 인간이 理性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그 靈魂無形의 것이어서 몸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인간의 성품은 形性神性의 양면이 있어서 마음에도 獸心人心의 양면이 생기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도 갈등을 겪는 것이다.

3. 有形有形의 사물에 반응하고 無形無形의 사물에 반응하는데, 인간의 마음은 有形, 無形의 사물에 모두 반응하므로 그 또한 有形, 無形을 겸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 그릇에 담기는 사물은 그릇의 모양에 따라 그 상태가 정해지는데, 사람의 마음에 담기는 사물이 추상화되는 것을 보면 그 담는 마음이 無形임을 알 수 있다.

5. 有形器官耳目口鼻, , , 의 기능을 통해 有形의 대상인 , , , 를 접수하는 것인데, 無形器官인 마음은 의 기능을 통해 을 추구하는 것으로 禽獸에게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중간적 존재로 규정된 인간에게는 獸性을 떨치고 神性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그 도덕적 목표로 주어져 있다. 그를 위해서는 獸性의 조건인 有始를 벗어나 無終을 향해야 하므로 現世의 가치보다 來世의 가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내가 보건대 天主께서 또한 인간을 本世에 두심으로써 그 마음을 시험하여 德行의 등급을 매기시려는 것이다. 따라서 本世는 우리가 머물러 지내는 곳이지 길게 살 곳이 아니다 우리의 원 집은 今世에 있지 않고 後世에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으니, 그곳에 가서야 참 삶을 살 것이다. 今世禽獸之世이므로 鳥獸各類가 땅을 향해 엎드린 모양이며, 인간은 하늘의 백성이므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다. 今世로써 본 집을 삼는 자는 禽獸의 무리이며, 天主께서 인간에게 가혹히 대하시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368]

[368] <天主實義> 128: 吾觀天主亦置人于本世 以試其心而定德行之等也 故現世者 吾所僑寓 非長久居也 吾本家室 不在今世 在後世 不在人 在天 當于彼創本業焉 今世也 禽獸之世也 故鳥獸各類之像附向於地 人爲天民 則昻首向順于天 以今世爲本處所者 禽獸之徒也 以天主爲薄於人 固無怪耳.

來世利害는 매우 참되고 매우 큰 것이니, 今世의 것과 비길 바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利害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今世의 일은 흉한 일이든 길한 일이든 모두 말할 가치가 없다.”[369]

[369] <天主實義> 362: 來世之利害甚眞大 非今世之可比也 吾今所見者 利害之影耳 故今世之事 或凶或吉 俱不足言也.

리치가 제시하는 來世의 가치는 現世의 가치관을 그대로 연장한 위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해 리치는 대화상대로 설정한 中士의 입을 통해 利害관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것이 도덕적 향상의 길이 될 수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해 본다.[370] 그리고는 다시 이에 대한 답변으로 儒家에서 중시하는 誠意의 길을 내세워 가 인간의 도덕적 작용에서 핵심적 요소임을 주장하였다.[371]

[370] <天主實義> 321: “但以天堂地獄爲言, 恐未或天主之敎也. 夫因趣利避害之故爲善禁惡, 是乃善利惡害, 非善善惡惡正志也. 吾故聖賢敎世不言利, 惟言仁義耳. 君子爲善無意, 況有利害之意耶?”

[371] <天主實義> 322-323.

리치가 의 의미를 극단적으로 강조한 예를 보자: “옛날에 두 弓士가 있었는데 하나는 산에 갔다가 덤불 밑에 누워 있는 것이 호랑이처럼 보이기에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활로 쏘았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었다. 또 하나는 숲 속에서 얼핏 스쳐 보이는 것이 사람 같았는데 역시 활로 쏘았는데 사실은 사슴이었다. 앞의 사람은 살인을 한 것이지만 뜻이 호랑이를 쏘는 데 있었으니 결단코 을 주어 마땅하고, 뒤의 사람은 비록 사슴을 잡았지만 뜻이 사람을 해치는 데 있었으니 결단코 을 주어 마땅하다. 어째서냐고? 그 뜻의 美醜가 다르기 때문이다. 곧 뜻이 善惡의 근본임이 분명한 것이다.”[372]

[372] <天主實義> 335: 昔有二弓士 一之山野 見叢有伏者如虎 慮將傷人因射之 偶誤中人 一登樹林 恍惚傍視 行動如人亦射刺之 而寔乃鹿也 彼前一人 果殺人者 然而意在射虎 斷當褒 後一人雖殺野鹿 而意在刺人 斷當貶 奚由焉 由意之美醜異也 則意爲善惡之原 明著矣.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과 결과까지도 정당화된다는 극단적인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來世라는 것이 現世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서술해서, 現世利害관계에 얽히는 갈등이 來世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내가 말하는 것은 來世이니, 至大하고 至實하며 서로 엇갈리지 않는 것이어서 모든 사람이 이것을 얻어도 서로 다툴 필요가 없다. 이런 를 가지고 왕은 그 나라를 이롭게 하고, 대부는 그 집안을 이롭게 하고, 士庶는 그 몸을 이롭게 하는 데 상하가 앞을 다툰다면 천하는 곧 편안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來世의 이익을 중히 여기면 필히 現世의 이익을 가벼이 여길 것이니, 現世의 이익을 가벼이 여기면서 犯上爭奪弑父弑君을 좋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後世를 바라게 한다면 정치를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373]

[373] <天主實義> 353: 吾所指來世之利也 至大也 至實也 而無相得 縱盡人得之 莫相奪也 以此爲利 王欲利其國 大夫欲利其家 士庶欲利其身 上下爭先 天下方安方治矣 重來世之益者 必輕現世之利 輕現世之利 而好犯上爭奪殺父弑君 未之聞也 使民皆望後世之利 爲政何有.

도덕적 목적 다음에는 善惡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다. 善惡 개념에 대한 리치의 서술 가운데는 얼핏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善惡에는 사이가 없어서 선이 아니면 악이요, 악이 아니면 선이며, 다만 善惡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善惡을 비유하면 生死와 같은 것이어서, 산 것이 아니면 죽은 것이요, 죽은 것이 아니면 산 것이며, 不生不死와 같은 것은 없다.”[374]

[374] <天主實義> 397: 西士曰 善惡無間 非善卽惡 非惡卽善 惟善惡之中 有巨微之別耳 善惡譬若生死 人不生則死 未死則生 固無弗生弗死者也.

이란 별도의 사물이 아니고 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니 라는 것이 다름 아니라 이 없음을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재판관이 죄인에게 를 내린다고 할 때 가지고 있던 를 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375]

[375] <天主實義> 431: 西士曰 吾以性能行善惡 固不可謂性自本有惡矣 惡非實物 乃無善之謂 如死非他 乃無生之謂耳 如士師能死罪人 詎其有死在乎 苟世人者生而不能不爲善 從何處可稱成善乎 天下無無意于爲善而可以爲善也.

전자의 경우는 구약에 비쳐지는 유다이즘을 연상시키데, 후자는 善惡을 상대적 개념으로 보는, 전형적인 스콜라철학자의 모습이다. “자그마한 不善으로 天下萬民을 구할 수 있는 일이 있어도 행해서는 안 되는 법인데……[376] 하여 不善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절대적인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양자의 입장이 뒤섞인 것처럼 보인다. 한편 사랑스럽고 바람직한 것을 이라 하고, 밉고 싫은 것을 이라 한다고 한 것은[377] 에피큐로스의 관점을 떠올리게도 하는 것이다.

[376] <天主實義> 339: 爲纖微之不善 可以救天下萬民 猶且不可爲.

[377] <天主實義> 424: 可愛可欲謂善 可惡可疾謂惡也.

인간의 도덕적 사명과 선악의 개념을 서술하는 데는 기독교의 고유한 교의를 중심으로 한 데 비하여 人性善惡의 관계를 논하는 데는 儒家의 개념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란 다름 아니라 사물의 종류마다 內在하는 고유한 특성이다. ‘사물의 종류라 함은 같은 종류는 같은 , 다른 종류는 다른 을 가지는 것을 이른다. ‘고유하다함은 다른 종류에도 나타나는 것이라면 고유한 것이 아님을 말한다. ‘內在한다함은 그 사물의 몸 안에 있지 않은 것을 그 특성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물 가운데 自立者는 그 自立하고 依賴者는 그 依賴한다. 사랑스럽고 바람직한 것을 이라 하고, 밉고 싫은 것을 이라 한다. 이 뜻을 알고 나면 人性善否를 논할 수 있다. 서양 학자들은 이라는 것이 하고 하며 능히 論理를 펴는 자라 하였다. 함으로써 金石과 다르고, 함으로써 草木과 다르며, 능히 論理를 폄으로써 禽獸와 다른 것이다. 推論을 하되 直觀이 아니기 때문에 귀신과도 또한 다른 것이다. 귀신이란 사물의 이치를 비추어보듯 그대로 아는 것이므로 推論의 필요가 없는 데 반하여 사람은 앞의 일로 뒤의 일을 미루어 알고 드러난 일로 숨겨진 일을 미루어 알며 이미 깨우친 일로 미처 깨우치지 못한 일을 미루어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論理를 펼 줄 아는 힘이 사람을 고유한 존재로 만들어 그 존재를 다른 사물과 구별짓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人性이다. 仁義禮智로부터 미루어져 나오는 것이다.”[378]

[378] <天主實義> 423-425: 欲知人性其本善耶 先論何謂性 何謂善惡 夫性也者非他 乃各物類之本體耳 曰各物類也 則同類同性 異類異性 曰本也 則凡在別類理中 卽非玆類本性 曰體也 則凡不在其物之體界內 亦非性也 但物有自立者 而性亦爲自立有依賴者 而性兼爲依賴 / 可愛可欲謂善 可惡可疾謂惡也 通此義者 可以論人性之善否矣 / 西儒說人云 是乃生覺者 能推論理也 曰生 以別于金石 曰覺 以異于草木 曰能推論理 以殊乎鳥獸 曰推論不直曰明達 又以分之乎鬼神 鬼神者 徹盡物理如照如視 不待推論 人也者 以其前推明其後 以其顯驗其隱 以其卽曉及其所未曉也 故曰能推論理者立人於本類 而別其體於他物 乃所謂人性也 仁義禮智 在推理之後也.

이렇게 원칙적으로는 儒家의 주류인 性善說을 따랐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良善習善의 구별을 두고 도덕적 가치를 習善에 집중하였으므로 性善說의 실질적 의미는 그리 강하지 않다: “그러므로 진실로 두 단계의 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良善이요, 習善이다. 무릇 良善이라는 것은 天主께서 원래 性命에 만들어 주신 이니 내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는 것이며, 내가 공로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익혀 을 쌓은 에 그칠 뿐이다.”[379]

[379] <天主實義> 435: 則固須認二善之品矣 性之善 爲良善 德之善 爲習善 夫良善者 天主原化性命之德 而我無焉 我所謂功 止在自習積德之善也.

리치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수동적인 뜻의 性善說에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타고난 良善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이 투영된 것일 뿐이며, 이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의해 을 쌓는 것을 인간의 할 일로 그는 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태어나 밖에 행할 수가 없다고 한다면 을 이룬다(成善)’는 말이 어떻게 성립하겠는가? 을 행할 뜻이 없이 을 행한다는 일은 천하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을 행하도록 강제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행할 때 비로소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天主께서 양쪽을 모두 행할 수 있는 을 인간에게 주심으로써 인류를 후하게 해 주셨으니 인간이 이 을 선택할 수 있음으로 해서 善行의 공로가 커질 뿐 아니라 나아가 그 공로가 우리의 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녁을 세워놓는 것이 쏘는 사람이 빗맞추기 바라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惡情이 있는 것도 사람들이 빠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金石鳥獸 따위의 善惡을 행할 능력이 없으니, 사람의 善惡을 행함으로써 공로를 세울 수 있는 것과 다르다. 그 공로는 功名의 공로가 아니라 德行의 참된 공로다. 사람의 性情이 본래 선한 것이라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그대로 모두 善人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을 가진 사람만이 곧 善人이 되는 것이다. 에 더해졌을 때 이 발휘되는 것이며, 이것이 本善性體로부터 더 위로 올라가는 길이다.”[380]

[380] <天主實義> 431-432: 苟世人者 生而不能不爲善 從何處可稱成善乎 天下無無意于爲善而可以爲善也 吾能無强我爲善而自往爲之 方可謂爲善之君子 天主賦人此性能行二者 所以厚人類也 其能取捨此善 非但增爲善之功 尤 其功爲我功焉 故曰 天主所以生我 非用我 所以善我 乃用我 此之謂也 卽如設正鵠 非使射者失之 亦猶惡情於世 非以使人爲之 彼金石鳥獸之性不能爲善惡 不如人性能之以建其功也 其功非功名之功 德行之眞功也 人之性情雖本善 不可因而謂世人之悉善人也 惟有德之人乃爲善人 德加于善 其用也在本善性體之上焉.

善惡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人性을 향하는 데는 가 그 표준이 된다. 리치는 依賴者(accident)로 보고 目的因(final cause)形相因(formal cause)의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인정한 것을 앞 절에서 보았는데, 도덕에 접근하는 기준으로서 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 것이다:

무릇 의 발현에 있어서 病疾이 없다면 스스로 필히 을 들을 것이니 절도에 어긋나는 일도 없고 선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라는 것이 의 발(밑바닥)과 같은 것이어서 편벽된 폐단을 드러내는 때가 있다. 따라서 언제나 그 바라는 바만을 따르고 가 가리키는 바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몸에 병이 없을 때는 입으로 먹는 것이 단 것은 달게 느껴지고 쓴 것은 쓰게 느껴지지만 문득 병이 나면 단 것이 쓰게 느껴지고 쓴 것이 달게 느껴질 수 있다. 性情에 병이 들면 사물을 대함에 느낌이 잘못되어 에 어긋나게 되니 그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바르고 진실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본성은 그 자체가 선한 것이니 이 또한(병이 났을 때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선하다고 칭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人性은 논리를 능히 펼 수 있으므로 良能이 남아있기만 하다면 자신의 병을 알아내어 치료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381]

[381] <天主實義> 429: 夫性之所發 若無病疾必自聽命于理 無有違節 卽無不善 然情也者 性之足也 時著偏疾者也 故不當壹隨其欲 不察于理之所指也 身無病時 口之所啖 甛者甛之 苦者苦之 乍遇疾變 以甛爲苦 以苦爲甛者有焉 性情之已病 而接物之際悞感而拂于理 其所愛惡 其所是非者 鮮得其正 鮮合其眞者 然本性自善 此亦無碍于稱之爲善 蓋其能推論理 則良能常存 可以認本病 而復治療之.

이란 인간이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을 이루어나가는 결과 얻어지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우리 西國 학자들은 이 곧 神性의 아름다운 의복이며, 의로운 생각과 의로운 행위를 오래 익힘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의복이라 함은 입을 수도 있고 벗을 수도 있다는 뜻이며, 기꺼이 을 행하려는 마음으로부터 이것을 얻으면 이 곧 聖賢이며, 不善者는 이와 반대이다. 다만 는 모두 무형의 의복이어서, 오직 무형의 마음, 즉 내가 말하는 에만 입힐 수 있는 것이다.”[382](리치가 <天主實義> 文面에서 이라 하는 것은 하느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에 반대되는, ‘精神의 뜻에 가까운 것이다.)

[382] <天主實義> 438: 吾西國學者謂德乃神性之寶服 以久習義念義行生也 謂服 則可著可脫 而得之于忻然爲善之念 所謂聖賢者也 不善者反是 但德與罪皆無形之服也 而惟無形之心 卽吾所謂神者 衣之耳.

을 추구하는 기준으로 이해되었다:

유형의 몸에 耳目口鼻四肢五司가 있어서 사물과 交覺하듯이 무형의 정신에는 三司가 있어 接通하니, 司記含, 司明悟司愛欲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것이 모두 그 을 몸의 다섯 감각기관을 통해 정신에게 보내며, 정신은 司記者를 시켜 이것을 받아들인 다음 잃어버리지 않도록 창고에 재이듯이 보관한다. 나중에 우리가 한 가지 사물에 明通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司明者를 시켜 司記者가 보관하고 있는 그 사물의 을 꺼내 그 몸을 재구성해 내는데, 그 참된 性情當否에 맞추는 것이다. 그 선한 것은 司愛者를 시켜 사랑하고 바라게 하며, 그 악한 것은 미워하고 싫어하게 한다. 무릇 司明者를 밝히는 것이고 司愛者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三司가 갖추어져 있으면 우리가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데, 司愛者司明者가 갖춰지면 司記者는 저절로 이뤄진다. 따라서 講學에서는 이 두 가지만을 논할 따름이다. 司明者을 추구하고 司愛者를 추구한다. 司明者大功에 있고 司愛者大本에 있다. 따라서 군자는 仁義를 중히 여기는데, 이 둘은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한쪽을 없이할 수 없다. 司明者을 밝힌 뒤에야 司愛者가 이를 사랑하고 아낄 수 있으며 司愛者을 사랑한 뒤에야 司明者가 이를 살펴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라는 것이 또 精髓이기도 하므로 이 풍성하면 司明者도 더 밝아진다. 따라서 군자의 에는 또 을 위주로 하는 것이다.”[383]

[383] <天主實義> 449-451: 有形之身 得耳口目鼻四肢 五司 以交覺于物 無形之神有三司 以接通之 曰司記含 司明悟 司愛欲焉 凡吾視聞啖覺 卽其像由身之五門竅 以進達于神 而神以司記者受之 如藏之倉庫 不令忘矣 後吾欲明通一物 卽以司明者取其物之在司記者像 而委曲折衷其體 協其性情之眞于理當否 其善也 吾以司愛者愛之欲之 其惡也 吾以司愛者惡之恨之 蓋司明者 達是又達非 司愛者 司善善又司惡惡者也/ 三司已成 吾無事不成矣 又其司愛 司明者已成 其司記者自成矣 故講學只論其二爾已 司明者尙眞 司愛者尙好 是以吾所達愈眞 其眞愈廣闊 則司明者愈成充 吾所愛益好 其好益深厚 則司愛益成就也 若司明不得眞者 司愛不得好者 則二司者俱失其養 而神乃病餒/ 司明之大功在義 司愛之大本在仁 故君子以仁義爲重焉 二者相須 一不可廢 然惟司明者明仁之善 而後司愛者愛而存之 司愛者愛義之德 而後司明者察而救之 但仁也者 又爲義之至精 仁盛 則司明者滋明 故君子之學又以仁爲主焉.

이처럼 儒家 윤리의 주요 개념을 기독교 교리 내지 스콜라철학의 체계 속에 편입시키는 것이 리치가 <天主實義>에서 힘을 기울인 작업이었다. 이 작업이 기술적 의미에서 얼마나 성공적인 것이었는지는 중국인(서학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공격한 사람들 모두)의 반응 속에서 검증될 수 있는 것으로 제르네의 치밀한 작업이 나와 있다.[384] 그러나 기술적 차원보다 더 근본적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과 배타성이 儒家 윤리체계와 일으키는 갈등을 어떻게 소화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384] Gernet 전게서: 193-247.

리치는 儒家의 충효와 기독교 신앙을 이렇게 조화시키려 했다:

무릇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어버이가 셋 있으니, 그 첫째가 天主, 둘째가 임금이요, 셋째가 몸으로 낳은 어버이라, 세 어버이의 뜻을 거스르는 자가 곧 불효자다. 천하에 가 있으면 세 어버이의 뜻이 서로 어긋나지 않으니, 무릇 아쪽 어버이는 자기 자식에게 위쪽 어버이를 섬겨 모시도록 명할 것이니 자식된 자는 한 어버이에 따름으로써 세 어버이에게 모두 효도할 수 있다. 천하에 가 없을 때는 세 어버이의 이 서로 어긋나 아래쪽 어버이는 그 위쪽 어버이를 따르지 않고 자식을 제 것으로 하여 자기만을 받들고 위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니, 그 자식된 자는 위쪽의 명에 따라 설혹 그 아래쪽을 범하는 일이 있어도 그 효도에 손상이 없을 것이로되 만약 아래쪽을 좇아 위쪽을 거슬리는 짓은 진정 크게 불효한 짓이라 할 것이다.”[385]

[385] <天主實義> 558: 凡人在宇內有三父 一謂天主 二謂國君 三謂家君也 逆三父之旨者 爲不孝子矣 天下有道 三父之旨無相悖 蓋下父者 命子奉事上父者也 而爲子者 順乎一卽兼孝三焉 天下無道 三父之令相反 則下父不順其上父 而私子以奉 弗顧其上 其爲子之者 聽其上命 雖犯其下者 不害其爲孝也 若從下者逆其上者 固大爲不孝者也.

얼른 보아서는 信仰이 나란히 주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실제 갈등이 일어날 경우에는 큰 어버이에 대한 신앙이 작은 어버이에 대한 충성이나 효도보다 앞서도록 되어 있다. 도덕과 윤리를 서술하는 데 아무리 정교한 이론을 부연한다 하더라도 신앙의 절대성은 뛰어넘을 수 없는 엄연한 벽으로 존재했다. 황제의 기능이 위축되어 있거나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던 明末의 상황에서는 이런 한계가 그리 강렬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정상적인 중국의 체제 안에서는 사회의 주류가 접근할 수 없는 장벽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