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2. 17:28

 

몇 달 전 "글 장사를 접으며"란 글을 적은 일이 있다.

http://orunkim.tistory.com/1600#comment11600948

그 글에 OCB님이 붙인 댓글이 어제 눈에 띄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탓일 거라는 추측이다.

 

다시 생각에 잠겨본다. 1년여 전 "서세동점의 끝"이란 책을 구상하면서부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몇 해 동안 해 온 한국근현대사 정리 작업을 마무리하는 뜻에서 동아시아의 근대를 내 관점으로 정리하려는 것인데, 시간과 노력을 충분히 들이고 싶었다. 그런데 책 한 권 인세 수입으로는 두 달 생활비도 바라보기 힘들다. 그래서 처음으로 "공적 자금"을 쳐다보게 되었다.

 

제일 먼저 눈앞에 떠오른 것이 방송대출판부 교양서 공모였다. 당선되면 계약금을 2천만원이나 준다니 내 검소한 생활로는 1년 버틸 수 있다. 가작에 입선만 해도 5백만원이니 단골 출판사들에 바라는 것과 수준이 다르다.

 

그래서 냈는데, 두 달 지나 발표 때가 되었을 때, 발표를 연기한다고 한다.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1주일 지나 발표가 났는데, 가작에도 못 들었다.

 

가작에도 못 들어? 워낙 조건이 좋으니 엄청 빼어난 응모작이 더러 들어올 수도 있겟지만, 가작에도 못 들어? 이건 말이 안 된다.

 

어이를 잃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방송대출판부 직원이라며 내 훌륭한 응모작이 낙선된 데 유감을 표하고는, 공모와 관계없이 내 기획안으로 계약을 맺고 싶다고 한다. 가작 수준의 계약조건으로 하자는 것이다.

 

다른 출판사의 제안이라면 즉각 달려가 계약을 맺을 조건이다. 하지만 정문으로 집어넣었던 응모작을 뒷문으로 다시 넣을 수야 있나. 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출판사와 신뢰를 갖지 않고는 좋은 결과를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사양하고 말았다.

 

그 기획안을 갖고 다른 출판사에서 내려고 의논을 하는데, 참 힘들다. 다들 그런 책 내고 싶다고는 하는데, 주머니 사정이 다들 빡빡하다. 그런 참에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지원사업을 알게 되었다. 거기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적은 소감이 몇 달 전 글이다.

 

"블랙리스트" 얘기가 이번에 나오면서 참 나쁜 짓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그게 실제로 어떻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 이해하는 데 "서세동점의 끝"을 둘러싼 내 경험이 참고가 될 것 같아서 털어놓을 생각이 들었다.

 

두 차례 낙방에서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나는 내 공부 제대로 하는 데만 몰두해 온 사람이다. 공부가 어느 정도 틀이 잡혔을 때 저술활동을 시작했고, 예상보다 큰 독자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공부의 외형적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바람에 신이 나서 원래 공부 방향을 놓아두고 한국근현대사 정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작업의 마무리 단계에서, 처음으로 제도적 지원을 받아볼 마음을 먹었다가 물만 먹고 말았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사회를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이 있지만, 내 정체성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학인으로서 내 입장에는 한국인, 동아시아인, 그리고 세계인의 입장이 겹쳐져 있다. 그런데 최근 10년간은 한국인 입장에 치중해서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글을 써왔다. 그리고 이제 와서 한국사회의 제도적 지원 모처럼 쬐끔 바라보다가 딱지를 맞고 보니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한국사회는 한국인으로서 내 노력을 평가해 주지 않는구나."

 

우수출판콘텐츠에 낙방한 뒤 저술작업에 매진해 온 지난 몇 해를 되돌아봤다. 내 공부 성과를 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는 데는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한국 독자에게 발표한다는 목적에 너무 얽매여 내 공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많이 벗어나 있었다. 말하자면 각론에 몰두하면서 총론을 소홀히 해온 셈이다.

 

각론에 집중하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쁜 길은 아니다. 공부 성과에 대한 구체적 반응에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를 위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그런 반응을 얻기에 그리 적합한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고 있었다. 내 글 반가워해 주는 독자들의 개인적 반응에 비해 책 판매량에 나타나는 사회의 총체적 반응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제도적 지원을 바라본 두 차례 시도에 실패하자 이건 너무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조언을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된 상대에게는 아무리 좋은 조언도 낭비다. "들어야 할 말을 해주지 않는 것은 사람을 버리는 것이고 들으려 하지 않는 말을 해주는 것은 말을 버리는 것"이라고 공자도 말씀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제는 한국사회 아닌 인류사회를 상대로 말하기로 생각을 돌렸다. 총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공부(爲己之學)를 해나가면 한국인, 동아시아인, 그리고 세계인의 입장을 두루 위하는 공부를 쌓아나갈 수 있을 것 아닌가.

 

물론 그 동안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프레시안에 글을 싣던 것 같은 발표 기회는 보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시대가 아닌가. 옛날 학인들은 때를 만나지 못했을 때 후세를 바라보며 공부를 하고 글을 썼다. 그에 비하면, 인터넷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지금 학인은 글값을 받지 못할 뿐, 읽을 사람들에게는 바로 보여줄 수 있는 길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번역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동안 수십 권 책을 외국어에서 한국어로 옮겨 왔는데, 이제 갚을 때가 되었다고도 하겠다. 한국인의 글 중 옮길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 외국어로 옮기는 일이다. 당장은 영어만 가능하지만 좀 더 노력하면 중국어도 가능하게 될지?

 

번역은 공부의 깊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넓게 읽으려는 강박에 많이 시달려 왔다. 앞으로는 못 봤던 새 글을 많이 찾아 읽기보다 읽었던 글 중에 생각할 점이 남은 글을 다시 뽑아 공들여 읽고 싶다. 옛날 학인들은 깊이 읽기를 위해 주석 작업을 했다. 내게는 번역이 주석과 같은 성격의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글 중에도 번역을 염두에 두고 다시 보니 새로 음미할 의미를 꽤 떠올릴 수 있다. 내 글 옮기는 데는 저작권, 판권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우선 작업 대상이다. 그리고 얼마 전 세상 떠난 한 분 선생님 글도 적합할 것 같아서 세밀히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번역을 생각하며 글을 살피려니 나라 밖에 내놓기에 적합한 글이 그리 많지 않다. 좋아하는 필자들 글도 그런 방향에서 바라보려니, 한국사회를 향한 글쓰기라는 조건이 너무 좁은 방향을 강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제도적 지원을 받는 데 실패한 것이 "블랙리스트"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제 그 문제가 밝혀지는 것을 보며, "이제 다시 응모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얼른 든다. 하지만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건 아니다. 김기춘, 조윤선 등 몇몇 사람 때문에 내가 좌절감을 느낀 게 아니다. 그들은 이 사회의 편협성을 이용한 한 가지 책동을 일으킨 것 뿐이며, 그들의 책임이 드러나 바로잡혀질 수 있는 것은 그 한 가지 책동일 뿐, 사회의 편협성 자체가 아니다.

 

블랙리스트가 없어서 내가 약간의 제도적 지원을 누릴 수 있었더라면 "爲己之學"의 길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나 개인에게는 이것이 새옹지마가 될 것인지, 득실을 예단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게는 손실이 분명하다. 한국사회가 키워낸 한 학인이 한국사회에 직접 공헌할 길을 줄인 거니까.

 

블랙리스트 때문에 함께 좌절을 겪었을 많은 문화인 동료들 생각을 한다. 조그만 충성경쟁을 위해 벌인 일에 치어 과제와 진로를 놓고 고민에 빠져야 했던 사람들. 그중에서 나는 비교적 쉽게 빠져나갈 길을 찾은 축 아닐까? 젊은이들 중에는 다른 진로를 찾은 사람들도 있고 늙은이들 중에는 은퇴를 앞당긴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버티고 길을 지킨 사람들도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이런 엄청난 자해행위가 가능한 사회라는 사실이 끔찍하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