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자가 니체를 대하는 태도가 맘에 든다. 니체(1844-1888)의 업적을 그가 활동한 시대, 그가 처했던 상황에 비추어 보는 점이 역사학도의 구미에 우선 맞는 것 같다. 철학서 중에도 니체에 관한 이야기는 담론의 시비에만 몰두해서 문외한으로서는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 많다. 이 책에서는 건강 등 여러 조건에 따른 표현의 결함과 한계를 감안해 주기 때문에 니체가 정말로 어떤 생각을 중시했는지 알아보기 좋다.

 

니체의 글, 참 읽기 어렵다. 그런데 어려운 대목 중에는 저자의 결함이나 한계를 감안하고 넘어가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애쓰는 바람에 필요 이상으로 어려움을 키우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아마 니체를 전공한다는 이들 중에는 "나의 니체"의 권위를 세워주는 데 집착해서 이런 경향을 조장하는 일이 많은 건 아닌지.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줄이는 데 좋은 도움이 된다.

 

뭐 눈에 뭐만 보이는 격이겠지만, 나는 니체의 사상에서 "평등" 관념에 대한 저항을 중시한다. "초인",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은 물론이고 "이성의 지배"에 대한 반발도 모두 평등하지 않은 인간세상을 평등하다고 우기는 시대사조에 대한 반발로 본다.

 

갓난아이 때 걸음마를 배운 이후 걷는 동작은 누구에게나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로봇에게 이 동작을 시키려면 엄청난 수학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회적 관계에도 그런 측면이 있는 것 아닐까? 문명과 사회의 진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러운" 틀이 잡히면, 복잡한 메커니즘이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단순한 형태의 패키지로 내장되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작동된다. 그것이 "관습"이다.

 

문명 발생 이래 인간사회에서는 "불평등" 구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습을 어떤 형태로든 개발, 운용해 왔다. 근대세계에서 "만민평등"이 보편적 이념으로 나타난 것은 예외적 사례다. 옛날에도 "왕후장상이 씨가 따로 있단 말인가?" 하는 말이 만민평등을 표현했다고 하는 것은 아전인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의 불평등 구조를 다른 불평등 구조로 바꾸려는 것이지, 근대인이 생각하는 평등 구조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니체가 활동하던 시절의 유럽에서 "민주화"는 아마 백여 년 후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시대적 과제로 강력하게 제기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 바탕에 깔린 만민평등 이념에서 부조리를 읽은 것은 니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부조리를 철학 차원에서 밝히려 했고, 그것은 걷는다는 단순한 동작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 된 것 아닐까.

 

"非민주적"인 생각도 마녀 취급을 받는 세상에서 "反민주적"인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일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를 자축한 지 근 3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주술국가"의 모습을 뒤늦게 확인하고,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의 대통령 선거에서 "非호감" 챔피언 대결을 보면서는 훨씬 쉬워졌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가 가진 문제점과 한계 역시 세상을 험하게 만드는 데 한 몫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때가 되었다. 그런 생각을 열어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니체의 생몰 연대를 1900년 아닌 1888년까지로 표시한 것은 1889년 이후 그의 연명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서임.)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