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놀랐다. 공화당 후보 자리 꿰차는 정도는 있을 법한 일로 생각했다. "business as usual"이 한계에 왔다는 경고 정도로 보고, 토크빌이 그린 "미국의 민주주의"가 10년가량은 더 계속될 것으로 짐작했다. 미국이 속으로 이렇게까지 무너져 있는 줄은 몰랐다.

 

경고 정도 올 때가 되었다고 본 것은 미국이 처한 상황이 파시즘 득세에 유리했던 1930년대 독일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유사점은 "정치 실패"다. 국가사회 운영에서 정치의 역할이 형편없이 퇴화해 있는 가운데 국내외 여건이 악화할 때 아웃사이더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민주당에서 샌더스의 강력한 도전도 이 상황이 만들어준 것이다.

 

샌더스의 실패와 트럼프의 성공이 엇갈린 데는 우연한 요인도 있겠지만, "정치 실패" 상황에서 새 선수가 등장할 때는 "화끈한" 선수가 유리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샌더스는 아웃사이더라도 클럽 회원이 아닐 뿐이지 선수는 선수였다. 그가 꺼내는 얘기는 종래의 정치판에 비해 새로운 것이지만 다 "말이 되는" 얘기다. 반면 트럼프는 선수도 아닌 진짜 아웃사이더, 룰도 모르고 언어도 모른다.(또는 무시한다.) 그를 찍어준 사람 중에는 그의 메시지가 미더워서가 아니라 그냥 "다르니까" 찍어준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내가 투표권 있어도 트럼프를 찍었을 것 같다. 주류가 해 쳐먹는 거야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미국은 지나친지 오래다. 정치 전통을 그만큼 가진 나라의 (소득불평등 등) 사회 붕괴가 어떻게 대한민국 같은 독재국가랑 비슷한 수준에서 놀 수 있나? 게다가 종래 정치지도자들이 불공정-불평등 체제를 아무리 싸고 돌더라도 겉으로는 아닌 체하던 것에 비겨도 힐러리는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그에 비해 트럼프에게는 희망이 있다. 당장 뭐를 잘해줄 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모순을 서둘러 드러낼 희망은 있지 않은가.

 

파시즘 공부를 더 할 필요가 있다. 2차대전 이후 파시즘이 범죄용어처럼 되어버린 것은 세계적 현상이거니와, 우리 사회처럼 정답만 좋아하는 사회에서는 너무나 공부를 게을리해왔다. 그런데 그 풍조에도 뭔가 매력이 있기에 일세를 풍미한 것 아닌가. 미국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파시즘 대두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번져가고 있다.

 

마침 손에 잡은 책 <정치가 우선한다>(셰리 버먼 지음, 김유진 옮김)가 좋은 참고가 된다. 사회민주주의를 서술한 책이지만, 20세기 초의 세계적 정치 실패 상황에서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가 등장하는 장면 속에 파시즘의 원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백년 전의 많은 사람들에게 파시즘은 큰 희망을 주고 매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그 매력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랬다가 나쁜 결과를 가져온 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확실히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비슷한 비극을 되풀이할 위험이 느껴지는 상황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