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시아에 속한다. 그러나 해방 후 50여 년간 아시아는 한국에게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이웃의 일본과 중국은 식민지 경험과 6-25전쟁 때문에 적대감의 표적이 되었다. 타이완을 비롯한 자유우방들과는 미국의 지도력을 사이에 두고 맺어진 관계였으며, 경제발전에 따라 수출시장의 가차없는 경쟁상대가 되었다. 대규모 파병을 통해 이례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은 베트남에게도 한국은 기분좋은 이웃이 되지 못했다.

 

60년대까지 한국과 아시아의 관계를 규정한 것은 군사논리였다. 70년대부터 이에 겹치기 시작한 경제논리는 90년대 냉전 해소로 군사논리가 흐려짐에 따라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세계화에 따른 경제관계의 확대가 분쟁의 소지를 줄임으로써 세계평화에 공헌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이론(異論)도 없지 않은 전망이지만, 적어도 경제논리가 군사논리보다 평화적 관계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논리 역시 상대를 객체화하는 배타적 논리다. 이웃의 정()을 배제하고 분석적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경제논리는 서양인이 만든 근대성의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대()아시아 관계는 메이지(明治)시대 일본이 좇던 탈아입구(脫亞入歐) 꿈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유럽인들은 서로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끈끈한 정으로 공동체를 이뤄 가는 데 비해 우리는 삭막한 세상을 살아 왔다.

 

지진에 시달리는 타이완에 구호대를 보낸 데 이어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참여는 아시아 속의 한국의 새 위치를 만들어줄 것 같다. 소말리아 평화유지군 참여나 터키 지진 구호대 파견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생각해 구색 맞추는 수준일 뿐, 적극적 공헌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에 비해 타이완과 동티모르에 대한 우리의 도움은 적극적이고도 실질적인 것이 될 것 같다. 타이완은 깊은 유대관계를 가진 나라인 데다가 이번 재해로 우리 산업의 여러 부문이 호황을 바라보는 형편이니 이웃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곡진하게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동티모르 평화유지군에도 아시아국가들의 참여를 인도네시아 정부가 특히 지목해서 희망하는 사정이니 우리의 참여는 참으로 이웃의 정에 부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방될 무렵 아시아에는 독립국이 몇 되지 않았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역사의 곡절들을 뚫고 우리와 비슷하게 자라온 동아시아-동남아시아의 나라들이 이제 이웃끼리 새로운 관심을 나누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의 의미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199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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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