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0대 초반에 강단을 떠난 후 지금까지 20년간 독학(獨學)을 하며 지냈다. 이 글을 발표할 때도 “역사학자”라는 수식어가 내 이름에 붙겠지만, 내게 합당한 타이틀인지 늘 불안한 마음이다. 역사학자의 자세를 내가 잘 지켜온 것인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강단에 남아있었다면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들 여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역사학 교수’란 직업을 갖고 있는 이상, 한 인간으로서 내가 제대로 된 인간인지 반성은 할지언정, 제대로 된 역사학자인지 스스로 의문을 품을 일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뚜렷해진 것이 6년 전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펴냄)을 집필할 때였다. 그때까지는 더러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내가 내 좋아하는 일을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인데, 그것을 남들이 역사학으로 인정해 주건 말건 상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당대의 대표적 ‘경제사학자’로 꼽히는 안병직과 이영훈의 논설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러 나서려니, 비판자의 입장이 온당한 것인지 책임감을 갖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안병직은 학생 시절부터 직접 배우지는 않았어도 연구 자세를 흠모하던 학자였다. 그의 근년 논설을 찾아 읽으면서 그가 옛날의 그 안병직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옛날의 안병직을 알던 사람을 만나면 이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한 차례 조사를 한 뒤 나는 안병직이 ‘역사학자’는 결코 아니고, 학자다운 학자도 못 되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마음속으로 내렸다. 판단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이런 말이었다.

 

“김대중 씨는 자기의 주관적 통일 이론만 가지고 남북 수뇌 회담을 추진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북한 정세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우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민족이야 어떻게 되었던 자기의 개인적인 정치적 야심을 철저히 추구할 만큼 사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기파랑 펴냄) 288쪽)

 

한마디로 ‘학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학자로서 직업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 말에는 학자의 자격이 담겨 있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국가 민족을 위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볼 만한 아무런 학문적 근거 없이 감정적인 비난을 쏟아낸 것일 뿐이다.

 

‘사악’과 ‘우둔’을 한꺼번에 뒤집어씌우려 든 것은 학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격에도 의문을 품게 한다. 뭔가 잘못된 행동을 봤을 때 보통사람들은 원인이 사악함에 있는 것인지 우둔함에 있는 것인지 가리려 한다. 어느 쪽 하나만으로도 잘못된 행동을 낳을 수 있는 충분조건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 조건이 겹치는 일은 별로 없다. 겹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더라도 제3자 입장에서는 한 가지 조건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두 가지 혐의를 몽땅 뒤집어씌우려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국 기독교 우파와 한국 뉴라이트 이념의 관계를 살펴본 류대영의 “한국 기독교 뉴라이트의 이념과 세계관”(<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푸른역사 펴냄) 380-414쪽)에 이런 부자연스러운 태도에 적합한 설명이 보인다.

 

기독교 우파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세상을 극히 단순화시켜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세상에는 선과 악, 빛과 어둠만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행동과 의도, 말과 뜻, 현상과 본질, 사물의 이미지와 실체, 그리고 상상과 현실 사이에는 인간이 실측하거나 충분히 인지할 수 없는 아득한 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세상을 찬찬히 이해하는 데 유용하기보다는 화급한 전투를 위해 필요한 무기와도 같다. 그들의 이원론은 우군과 적군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하며, 적군을 악의 세력이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절박하고, 적에 대한 분노는 맹렬하며, 전투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는 결연하다. (397쪽)

 

미국 기독교 우파가 최대의 적으로 삼는 것이 ‘인본주의’라고 류대영은 짚었는데, 이것 역시 한국 뉴라이트가 공유하는 것 같다. 뉴라이트가 공격하는 ‘친북좌파’의 대표적인 구호 하나가 “함께 사는 세상” 아닌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바라는 인본주의가 실제로 뉴라이트에게는 첫 번째 적이다. 전쟁을 벌이려면 맞서는 적군을 상대하기에 앞서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내부의 평화주의자부터 자갈을 물려야 한다.

 

적에 대한 “맹렬한 분노”는 뉴라이트 대열에 서기 위한 기본자격이다. ‘뉴라이트’란 이름이 떠오를 때부터 관련된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망언(妄言)과 기행(奇行)이 꼬리를 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안병직이 김대중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욕보이려 든 것도 자기 대열의 분위기에 맞추려는 노력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자기 패거리의 범위만 벗어나면 웃음거리가 되는, 그리고 안병직 같으면 존경하던 후배의 눈으로도 ‘학자’의 자격을 벗어나는 이런 기발한 언행을 일삼는 동기가 무엇일까? 나는 뉴라이트운동의 목적이 진보진영과의 경쟁이 아니라 보수진영 안에서 수구세력의 헤게모니를 확립하는 데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뉴라이트의 목적은 진보 진영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의 봉쇄다. 그람시가 말한 '문화 헤게모니(cultural hegemony)'를 보수 진영 내에서 장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화 헤게모니의 구축을 위해서는 '상식' 체계의 확립이 필요하다. 진보와 경쟁해 국민을 설득하려는 것이라면 진보와 공유할 수 있는 상식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가 실제로 문화 헤게모니를 획득한 것은 보수 진영의 기존 조직인 한나라당 내에서일 뿐이다. (<뉴라이트 비판> 213쪽)

 

뉴라이트는 수구세력의 선봉대다. 선봉대에게는 전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보통사람과 다른 용기와 투혼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용기와 투혼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포상이 두터워야 한다. 포상이 중하면 일반 장병들도 선봉대를 선망하며 그 못지않은 용기와 투혼을 보여주려고 애쓰게 된다.

 

그 동안 일반인의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뉴라이트 깃발을 휘날린 사람들은 나름대로 수구세력의 포상을 받아왔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포상 수준이 엄청 높아졌다. 국사편찬위원장,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뉴라이트 활동 빼면 별 존재감 없는 인물들이 임명받고, 뉴라이트 주장을 받아 외우는 사람들이 국무총리를 비롯해 온갖 요직에 꽂히고 있다.

 

그런 와중에 ‘역사학자’로 행세하는 사람 하나가 KBS 이사장으로 들어앉았다. 내게 대학 선배라는 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고 안병직에게처럼 존경심을 품은 일도 없는 사람이다.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니 역사학자의 기본은 갖춘 사람이려니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 정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KBS 이사장이 되어 사회의 주목을 끌면서 그가 하는 말이 알려지는 것을 들으니 기가 턱턱 막힌다.

 

러시아사를 전공한 이인호가 한국현대사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역사학자라면 전공하는 ‘나와바리’를 넘어 역사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야 하고, 그 안목에 따른 견해를 적극적으로 발표할 의무를 사회에 대해 가지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대부분 역사학자들에게 그런 의무를 수행할 능력이나 의지가 모자라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원로 역사학자라는 이인호의 발언이 그 자체로는 반갑다.

 

발언 자체는 반가운데 그 내용이 너무 한심하다. 김구에 대해서는 나 자신 <해방일기> 작업을 통해 그에 대한 한국사회의 통념에서 거품을 좀 뺄 필요를 느꼈다. 완벽한 인물로서 ‘민족의 지도자’로 받들기보다, 투철한 민족주의자이기는 하지만 행적에 공과가 엇갈려 있는 인물로서 인간적 이해를 통해 그 뜻을 배울 만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인호는 뭐라고 하나? “대한민국 독립을 반대한 분이기에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그를 거론하는 게 옳지 않다”고 했단다.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는 정부로 평가받지 못했고 우리가 독립국가 국민이 된 것은 1948년 8월 15일 이후”라고 했단다.

 

김구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평생에 걸쳐 많은 일을 한 사람이다. 1948년에 그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것은 독립 반대가 아니라 더 좋은 나라로 만들자는 주장이었다. 66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볼 때, 그 주장이 옳았다. 그때 건국을 조금 늦추더라도 분단건국을 피했다면 한국인이 더 좋은 나라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김구의 주장이 옳았다고 보는 나와 관점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관점으로부터도 배울 것이 없는지 열심히 살펴야 하는 것이 학자로서 내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구의 1948년 주장이 옳지 않다고 본다 해서 그를 대한민국 공로자로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내 편이 아니라 해서 조금도 존중할 의미를 찾으려 들지 않는 사람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버릇 나쁜 어린아이일 뿐이다.

 

나는 이인호를 역사학자로 인정하지 못하겠다. 국내에서 학위를 받고 어느 학교 명예교수도 못 된 사람이 하버드 학위에 서울대 명예교수라는 사람의 자격을 가타부타 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가소로울지 모르겠으나, 내 주관인데 어쩔 건가? 나는 이인호가 학문을 팔아 이익을 챙긴 하나의 사이비 학자로 볼 뿐이다.

 

그렇지만 그가 사악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어 학문의 본질에 눈감은 우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사악한 사람이 아니라고 절대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둔함만으로도 그의 처신과 발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충분히 이해가 된다면 그가 사악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따질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 것까지 따지는 것은 뉴라이트나 하는 짓이다.

 

그나저나 이 정권 들어서는 뉴라이트에 대한 포상 수준이 왜 이렇게 후해진 것일까? 전에는 수구세력의 포상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은근한 방식으로 행해졌는데, 요즘은 ‘국격’을 팔아서까지, 여러 주요 기관의 권위와 신뢰성까지 팔아서까지 무절제하게 ‘퍼주기’를 하고 있다. 선봉대에 포상이 후한 것은 전쟁이 임박했다는 말일까? 누구를 상대로 한 전쟁이든 첫 전투의 타격 대상은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 중에서 ‘합리적 보수’를 추구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나는 내다본다. “보수면 보수지, 무슨 합리적 보수야? 닥치고 줄 서!”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