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15. 12:00

어린이참정권에 관한 생각에 몇 주째 매달려 있다 보니 이 방향으로 반년가량의 작업 하나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얼마동안 못 보고 지내는 젊은 편집인 한 분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오늘 아침 메일을 보냈는데, 지금 단계의 구상을 블로그 식구들께도 보이고 싶어 메일 내용을 올립니다.

 

 

두어 달째 '참정권'에 생각이 꽂혀서... 내 공부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는 주제가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스스로 갸우뚱하고 있었는데... 자꾸 생각하다 보니 그쪽도 공부 흐름의 방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공부.

이병한 선생이 언젠가 내 글을 보고 "선생님은 민주주의까지도 상대화하는군요!" 놀라는 기색을 보인 일이 있어요. 나는 이 선생처럼 공부를 넓게,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까지 '민주주의의 상대화'에 놀란다는 사실에 놀랐죠. '민주화'가 이 사회에서 오랫동안 절박한 과제로 떠올라 있다 보니 절대화의 경향이 매우 강하고, 바로 그 경향이 민주주의의 본질이 실현되기 어려운 하나의 큰 조건이 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완벽한 민주주의가 있어서, 그것이 실현되면 엄청나게 좋은 사회가 이뤄질 수 있다고 하는 환상을 벗어나, 민주주의 이념이 현실조건과 어떻게 타협해 왔는지 넓고 깊은 이해를 가지는 것이 민주주의제도를 잘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어떤 이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얘기를 할 수 있는 거겠죠.

내 공부는 근 30년간 '근대성'을 둘러싸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원자론적 세계관과 유기론적 세계관 사이의 차이에 초점을 두고 있죠. 원자론적 세계관이 산업혁명 이후 유럽식 근대화를 지배해 왔고, 그 해체와 조정이 지금 세계적 변화에서 중심적 과제로 떠올라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원자론적 세계관은 개인주의 경향을 빚어냈는데, 그 경향에 가장 깊이 물든 제도 영역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두 영역이 모두 전면적 혁파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데, 개인주의 경향에 정리의 필요가 있죠. 자본주의에 비해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엄밀한 비판과 반성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두 영역의 문제가 구조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본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검토가 많이 모자라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죠.

애초에 생각은 참정권에서 시작했는데, 다른 요소들도 진화의 과정 속에서 보인 모습과 일으킨 효과를 살펴봄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이슈화된 바 있는 비례대표제, 대통령중심제 등 익숙한 요소들을 전면에 배치하면 시장성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진행 중인 "냉전 이후"를 마무리한 뒤 이번 겨울에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구상을 다듬고 있습니다. 가까운 출판인 두 분과 의견을 나눠 왔는데, 작업 목표가 구체화하기 시작하니 L 군의 의견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L 군 일해 온 시리즈 중에 맞춤한 것도 있는 것 같고 해서. 실제 작업까지는 시간이 꽤 있으니까 구상을 차분히 다듬으며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