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한국의 傳來 笑話>란 책을 본 일이 있다. 단행본으로 나온 게 아니라 어느 월간잡지의 별책부록으로 나온 것이었고, 자료로 본 게 아니라 재미로 본 것이기 때문에 누가 엮은 것인지를 비롯해 서지사항도 유의해 두지 않았다. 그런데 내용 중 재미있고도 함축하는 뜻이 그럴싸한 이야기가 많아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가끔 잡담 중에 생각나서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해 주기도 하고, 더러 글에 넣은 것도 있다.

 

얼마 전 몇 사람 앉은 자리에서 생각나는 이야기를 하나 꺼내는데, 한홍구 교수가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도 신기해서 그 이야기를 어디서 봤느냐고 물었더니 나랑 같은 책을 본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잡지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는 몇 년도 어느 잡지였던 것 같다고 나보다 세밀한 기억을 갖고 있다. 내가 우연히 어렴풋한 기억을 남기고 있는 읽을거리를 그가 자료로서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보며, 그가 참 읽은 것도 많고, 또 읽은 것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탄복했다.

 

40여 년 동안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을 생각이 들었다. 활자화되어 나왔던 내용이지만, 내 오랜 기억 속에서 '내 것'이 된 의미가 있다. 기억대로 적을 때 원래 이야기와 조금 달라지는 데도 있을 수 있다. 인쇄술 보급 전의 사람들이 들었던 이야기를 재생산하던 틀을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다.

 

한 교수랑 앉았을 때 꺼낸 이야기가 '글 쓰기의 어려움'에 관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부터 적어놓겠다.

 

 

<글 쓰기의 어려움>

 

양반 노릇 하려면 유식해야 했다. 양반들은 유식을 과시하기 위해 시회(詩會)를 열곤 했다. 함께 소풍을 하더라도 풍광과 음식만을 즐기는 게 아니라 문자향을 나눌 수 있어야 군자의 놀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학식이 넉넉지 않은 시골 양반들에게는 이게 좀 벅찬 일이었다. 원칙적으로 현장에서 좌장이 운(韻)자를 내리면 그것으로 즉흥시를 지어야 하는 건데, 원칙대로 했다가는 대다수 참석자가 눈만 멀뚱거리다가 망신을 당할 판이었다. 그래서 좌장 맡을 사람은 참석자들에게 운자를 몰래 미리 알려줌으로써 이웃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 은밀한 풍속이 되었다.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줘서 학교 평균성적을 올리는 요즘 행태의 선구자였다.

 

그런데 문제만 알려주고 답을 안 알려주니, 그것조차 힘들어 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운자를 받은 후 시회 때까지 두문불출하고 그럴싸한 글을 준비해 두는 데 몰두해야 했다.

 

처럼 정기적으로 글짓기에 몰두하는 어느 양반에게 참 어리무던한 아내가 있었다. 시회가 다가올 때마다 아내는 지적 활동에 빠져드는 남편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꿀물도 타 드리고 간식도 준비해 드리면서 행여 남편에게 방해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을 다했다.

 

어느 날 꿀물을 갖다드리면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 마디 물었다. "글 쓰시는 게 무척 힘든 일인가보죠?"

 

대답이 바로 나왔다. "그럼. 세상에 이것보다 더 힘든 일이 없지."

 

역시 그렇구나. 정말 대단한 분이셔. 이렇게 탄복하면서도 한편으로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또 한 차례 물었다. "여보, 내겐 제일 힘든 일이 아이 낳는 일이었는데요. 당신은 아이를 낳아보지 않고 어떻게 아시는 건가요? 글 쓰는 게 아이 낳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걸?"

 

남편의 짜증 섞인 응구첩대가 대단하다. "아니, 이치를 생각하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아이 낳는 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일이지만, 글 쓰는 건 없는 것을 끄집어내는 일인데, 어느쪽이 더 힘든지 어떻게 모를 수 있는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