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본질적 요소인 불은 곧 에너지 활용이다. 문명 발전을 통해 모닥불로부터 아궁이를 거쳐 엔진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활용방법은 놀라운 변화를 겪어 왔지만 그 주종은 변함없이 불, 즉 연소현상에서 얻는 화학에너지에 있어 왔다. 전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가 근세에 개발되었지만 그 역시 대부분은 불의 열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수력, 풍력, 태양열대체에너지가 관심을 끌지만 불을 실제로 대체할 전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대체에너지로 가장 큰 성공작은 핵에너지다. 우라늄235나 플루토늄239처럼 원자량이 크고 불안정한 물질의 원자핵이 분열할 때, 또는 수소의 원자핵이 결합해 헬륨으로 변할 때 약간의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E = mc2의 공식에 따라 아무리 작은 질량이라도 광속의 제곱이 곱해지는 만큼의 에너지로 전환되기 때문에 화학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에너지를 얻는다.
  
  에너지는 언제나 양쪽의 날을 가진 칼이었다. 생산력을 키워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한편 파괴의 잠재력을 가진 존재다. 문명의 발전에 따라 에너지 활용이 집중화하면서 그 칼날은 더욱 예리해졌다. 산업화 이전에 에너지의 위험은 화재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에너지 활용이 대규모화한 산업사회에서는 화재의 규모도 커졌을 뿐 아니라 생산현장과 교통수단의 사고가 새로운 위협으로 부각되었다.
  
  전세계의 산업화가 고비를 넘겨 석탄 석유 등 연료자원의 부존량이 한계를 보이게 된 시점에서 핵에너지의 등장은 필연의 길이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에너지는 그 첫 활용이 생산적 활동이 아니라 파괴적 행위에 있었기 때문에 희망의 대상보다 먼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한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탄이 터진 11년 후의 일이었다.
  
  무기 역시 문명의 본질적 요소의 하나다. 인류가 원시상태를 벗어나 문명을 쌓은 것은 사냥용 무기와 농기구를 써서 얻은 잉여생산 덕분이었다. 그리고 문명이 일단 생기자 부와 권력을 위한 싸움이 일어나고 사냥에 쓰던 무기로부터 전쟁용 무기가 발전되어 나왔다.
  
  문명사회의 규모와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냥 수준을 넘어서는 뛰어난 살상능력의 무기가 계속 개발되었다. 무기를 쓰는 사람들끼리의 싸움이기 때문에 상대방보다 더 뛰어난 무기를 확보하려는 에스컬레이션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도 중세까지의 무기는 사냥용 무기의 원리를 대략 지킨 것이었는데 근세에 나타난 폭탄은 전혀 다른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개념의 무기였다. 폭탄의 등장이 전쟁을 더욱 참혹하게 만든 것은 폭탄의 ‘맹목성’ 때문이다. 폭탄은 적병을 겨냥하지 않고 하나의 공간을 겨냥하기 때문에 그 공간에 있는 사람에게는 전투원 여부는커녕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살상능력을 발휘한다.
  
  핵폭탄은 재래식 폭탄과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의 맹목성을 가진 무기다. 지금은 전술핵무기로 격하된 원자폭탄 한 방만 터뜨려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본 인류는 핵무기가 전쟁에 다시 사용되지 않기 바라는 공통의 염원을 가지게 되었다.
  
  핵무기를 놓고도 무기 개발의 에스컬레이션 현상은 다시 일어났다. 미국과 소련의 뒤를 따라 프랑스, 영국과 중국이 핵무기를 확보하고 1960년대 말까지 인도, 파키스탄과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이 무르익어 가자 핵무기 확산에 대한 걱정이 크게 일어났다. 핵무기의 특성상 어디서든 한 방만 터지면 보복 핵 공격이 연쇄적으로 이뤄져 전면 핵전쟁의 위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체결되었다. 이미 확인된 5개 보유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핵무기 추가보유를 막는 것이 이 협정의 기본목적이다. 미보유국에 불리한 조약이다. 미보유국의 손해를 보전해 주기 위해 몇 가지 보장이 규정되었다. 핵무기 보유국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미보유국에 핵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과 평화적 핵에너지 이용을 위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보장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이 NPT 원리를 무너뜨리는 선제 핵 공격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지금까지 핵전쟁을 억제해 온 것이 NPT의 구속력이 아니라 소련의 견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련이 붕괴된 후 10년, 소련이 보유하던 핵무기의 ‘안전성’을 확인한 이제 미국에 대한 견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핵무기 보유량을 모두 합쳐도 붕괴 당시 소련 보유량의 백 분의 1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핵에너지의 비밀이 밝혀진 이상 핵무기의 존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냉전기 수십 년간 핵전쟁을 막은 것은 상호파괴능력에 의한 견제였다. 소련의 견제를 벗어난 미국은 일체의 견제를 원천적으로 벗어나려고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꾀하고 있다.
  
  미국이 핵 견제를 벗어나는 것이 세계평화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많은 미국인들은 믿는 모양이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국가들은 핵무기를 함부로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국가’ 이외의 핵무기 보유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미국의 비호를 받는 이스라엘 같은 나라가 있다. 팔레스타인 자살폭탄에 대한 이스라엘의 끔찍한 과잉대응을 미국은 못 본 체한다. 자살폭탄보다 더 강한 위협을 받게 되면 2백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스라엘은 미국의 보복 걱정 없이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스스로 이런저런 방법으로 풍기고 있는 위협이다.
  

국제테러조직의 핵무기 입수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보복능력은 영토를 가진 국가에 대해서만 유효하다. 영토 없이 조직만 가진 상대에게 미국이 보복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알 카에다의 경우 드러난 사실이다.
  
  무엇보다 위험한 보유자는 미국 자신이 된다. 지금도 이라크나 북한에 핵 공격을 가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보복에 나설 상대가 없으니 전면 핵전쟁의 위험은 없다고 이들은 믿는다. 이 믿음이 바로 핵전쟁의 위험을 키워주고 있다. 핵무기 사용과 같은 파괴적 행위가 재래식의 핵 보복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보복의 에스컬레이션을 몰고 올 것을 어째서 그들은 생각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핵무기의 장래는 지금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미국의 정책에 일차적으로 달려 있다. 이것은 미국의 국익 차원보다 인류평화의 차원에서 판단해야 할 일이며, 국익을 살피더라도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을 취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가 근시안적이고 배타적인 국익에만 집착하려 들 경우 세계는 분열과 혼란의 길을 피할 수 없다.
  
  핵무기를 써서 실제로 인명을 살상한 유일한 나라 미국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핵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1945년 8월의 원자폭탄 투하가 정말로 부득이한 일이었는지 미국인들이 진정한 반성을 한 다음에 세계평화를 생각해 주기 바란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