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비판>을 책으로 낸 것이 2008년 12월. 꼭 5년이 되었다.

 

학문이 정치를 키워줘야 할 텐데, 거꾸로 정치가 학문을 갖고 노는 현상이 '비판' 때문에 움츠러들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현상의 본질을 까밝힘으로써 학문 아닌 게 학문인 척하는 사기에 사람들이 맹랑하게 넘어가는 일은 줄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5년 전 비판에서 주된 표적으로 삼았던 안 아무개와 이 아무개가 별로 힘을 쓰지 못하게 된 데는 내 노력도 한 몫 했다고 자부한다. 그들을 이용하려는 세력에게도 바닥이 들통난 그들의 이용가치가 크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보다도 더 낯 두꺼운 사람이 나섰다. '국사편찬위원장'이란 감투를 둘러쓰고.

 

나는 국사편찬위원회란 관청의 존재 자체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 왔다. 식민지시대를 막 벗어난 단계에서 한시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몰라도 권력기구인 국가가 특정 학문분야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권력과 권위를 혼동시키는 기본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동안 국사편찬위원회 운용에 심각한 문제가 없었던 것은 괜찮은 이들이 맡았고(역대 위원장이 대체로 무난한 분들이었고, 그중에는 매우 존경스러운 분들도 있었다.) 운영을 잘했기 때문이다. 역사학계의 인프라라 할 수 있는 작업을 많이 수행한 반면 정치에 이용당한 측면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유영익이 국편위원장을 맡다니! 지금까지 인선 기준을 통째로 무시한 이 조치는 국편의 기본 성격이 가진 문제점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국편 폐지의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르는 조치다.

 

나는 이승만에 관한 유영익의 글은 읽은 적이 없다. 다른 주제의 글을 읽은 것이 좀 있는데, 시원찮았기 때문에 더 읽어볼 생각이 없었고, 그 후 이승만에 관해 어떤 글을 썼다는 소문을 들으며 기막혀 하기만 했을 뿐이다.

 

수구세력이 자기네 정책을 뒷받침해 주는 역사관을 활용하려 노력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아니,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역사 보는 눈 없이 정책을 논해 온 대한민국 정치판에 역사관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유영익 같은 인물을 국편위원장으로 앉히는 식은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까발리는 데 한 차례 노력을 쏟을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일에 나 같은 사람이 적임이란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원래 한국현대사 연구자가 아니면서 저널리즘 차원에서 현대사를 다뤄 왔다는 게 유영익과 나의 공통점이다. 정통 연구자들보다 나 같은 입장에서 한 차례 걸러줄 필요가 있다.

 

해방공간 이후의 한국현대사에 어떻게 접근할지 1년 동안 고심해 왔다. 마침 이승만을 간판으로 내거는 유영익이 뉴라이트 기수로 나섰으니 이승만 시대를 한 차례 다루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