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선생 고별강연 행사 참석을 너무 늦게 결정했나보다. 강연 뒤의 좌담 사회를 맡은 김득중 선생이 거듭 전화해서 옛날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부탁한다. 좌담 공식 멤버는 벌써 정해져 있지만 학부 시절의 서 선생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부터 좀 나왔으면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지난 주 김 선생 전화를 받은 후 틈틈이 생각을 굴려보니, 꽤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어울리다가 하나의 질문을 빚어낸다. "서 선생은 어쩌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하게 되었을까?" 됐다! 이 질문 하나 내놓으면 그 자리에서 내 몫은 충분히 되겠다.

 

그게 무슨 질문거리가 될까 갸웃거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시절 상황을 생각하면 심각한 의미가 있는 질문이다. 우리가 학부 다니던 1970년경, 한국사에는 '현대사'가 없었다. 대한민국시대는커녕 식민지시대를 다루는 강의도 없었다. 내가 졸업한 얼마 후 일본인 학생이 식민지시대 연구하러 서울대 대학원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20세기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어느분께 들었다.

 

20세기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한국사 연구에는 금기가 많았다. 그래서 현실과 관련된 주제를 연구하려면 역사학 중에서는 서양근대사가 제일 괜찮은 영역이었다. 서 선생이 만약 1970년대 초에 순조롭게 졸업하고 진학했다면 서양사를 전공으로 잡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는 입학한 지 17년이 넘는 1984년에야 졸업했고, 연세대 대학원에 한국사 전공으로 진학해서 한국현대사 연구를 시작했다. 1971년과 1984년 사이의 13년 세월이 한국사회에 가져온 변화와 서중석 개인에게 가져온 변화가 합쳐져 그의 진로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서 선생이 1970년대 초에 서양사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그의 학문활동 내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제도권 학계에는 나와바리를 지키는 관성의 힘이 강하다. 학부 시절 은사의 한 분인 양병우 선생은 서양사학계 원로로서 한국사 관계 주제에 대한 의견을 두 차례(내가 기억하기로) 적극적으로 내놓은 일이 있는데, 국사학계의 반발이 작지 않았고, 그 반발은 대개 내용의 타당성보다 행위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이었다.

 

나 자신 한국사에 마음을 두고도 대학원 진학에 동양사를 택했다. 사상사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한국사학계의 담론 내용이 너무 척박해 보였기 때문에, 중국사상사를 일단 전공하면서 동서양 학자들의 담론을 두루 섭렵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일단 동양사로 전공을 정하자 한국사로 돌아올 길이 막혔다. 박사논문 준비할 때 한 번 시도했다. 동아시아 3국의 서학(西學)을 묶어서 보는 쪽으로 논문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당시 대학원 학과장을 맡고 있던 중국사 전공의 황원구 선생이 "한국 서학을 다루는 것은 동양사 논문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승인을 거부했다. 그래서 중국 서학만으로 계획을 다시 세워 논문을 작성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한국현대사에 달라붙어 있는데, 제도권 밖에서 공부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계속 있으면서 학회활동을 이어 왔다면 동양사학계 원로 노릇 하기 바빴을 것이다. 그 동안 학계 풍토가 달라져서 약간은 울타리 너머 기웃거릴 수 있게 되기는 했겠지만, 지금 하는 것처럼 '원도 한도 없이' 마음껏 뛰어놀게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역사 공부는 '지금 여기'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현대사는 역사학 중 '지금 여기'에 제일 직접 달려드는 방향이다. 물론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중에도 목적의식이 투철한 분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이 전체적으로 다른 분야 연구자들보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 선생이나 나나 10여 년에 걸친 '제도권 밖에서의 공부'가 한국현대사에 달려드는 배경조건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도권 밖에서의 공부였기 때문에 학계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밑천과 동기를 키울 수 있었던 결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좌고우면할 게 없으니 '지금 여기'로 곧장 뛰어들게 된 것이고.

 

1968년 가을, 사학과 전과를 생각하고 있을 때 서 선생을 만난 것이 내 역사학계 활동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동숭동에서 헤어지고 난 후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그와 얼굴 마주친 것이 스무 번이나 될까? 같은 자리에서 밥 먹어본 것은 한쪽 손으로 셀 수 있을 것이다. 가까이 지낸 것은 아닌데 가까이 느껴 왔고, 그로부터 받아온 영향이 참 크다. 나는 역시 종북주의자가 아니다. 종서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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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