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역사를 위하여!"

 

 

아시아학회 소감 두 차례 잘 봤습니다. 읽으면서 절실하게 생각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입장에 따라 말할 수 있는 범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나도 말 막하는 편으로 살아온 사람이지만, 앞뒤를 얼마간 재지 않을 수 없어요. 내가 내키는 대로 하지 못하는 말을 이 선생이 할 수 있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역시 나이 차이가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혹여 헛발질을 하더라도 바로잡을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지금 당장 논거가 충분치 못하더라도 보완할 시간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할 일의 범위를 좁혀야겠다는 마음을 새삼 굳힙니다. 수십 년 동안 공부를 키워오기만 했어요. 더 넓게 더 크게 키우지 못한 것은 내 분수이지, 그럴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탓이 아닙니다. 몇 되든 몇 섬이든 모아놓은 구슬을 꿰는 일에 취미를 붙여야 할 때입니다.

 

좁히려면 기준이 필요하죠. 얼마 전부터 ‘건강’이란 키워드를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한 사회의 상태를 놓고 좋은 상태와 나쁜 상태를 구분하는 데는 어떤 가치기준이라도 적용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한 시점의 상태만을 놓고 정태적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시간 좌표계 위에서 변화의 추이를 살피는 데서 더 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풍요로움을 기준으로 삼을 때, 한 시점의 생산과 소비 양상만을 따지는 것보다 그 변화 추세를 인식하는 데서 그 사회의 상황에 대한 더 의미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역사 공부의 가치를 이 방향에서 찾으려 할 때, 가치기준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죠. 실제로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작용하는 가치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준의 유효성에 대한 엄밀한 생각이 일반적으로 모자라는 감이 있습니다. 나 자신은 분명히 모자랍니다.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의 발달 수준을 사회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고 역사의 진행도 그 기준에서 음미하려는 노력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이 내게는 취향에도 맞지 않고, 우리 시대가 다른 기준을 더 필요로 한다는 생각도 자꾸 들게 되었습니다. 근대적 관념에 지배되지 않는 기준을 검토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배운 도둑질인지라, 중국 역사에서 먼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근대적 관념에 지배되지 않는 가치기준을 인류의 경험 속에서 검토해 보려면 역시 중국문명을 바라볼 필요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겠죠.

 

중국 전통 역사관의 대표적 가치기준이 ‘치란(治亂)’ 아닙니까. 이것을 현대 상황에 맞춰 풀이한다면 ‘건강’ 같은 개념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은 근대적 관념에 대한 반성이 제일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서양의학이 규정해 온 건강의 기준에 수정의 필요가 널리 제기되고 있고, 인간의 복리를 직접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관습과 제도의 방어력이 강할 수 없는 분야죠. 동양의학의 건강 개념이 벌써 많이 복권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20세기를 되돌아볼 때, 식민지로 있던 전반부에 비해 독립국이 된 후반부에 건강은 더 악화되었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생산력 등 모든 근대적 지표에서 후반부가 월등하게 낫습니다. 그러나 백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할 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의 고민,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의 고통, 그리고 현실 개선의 가능성이 막막하다는 좌절감 등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기본 지표는 더 나빠졌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건강’의 지표를 세워보고자 하는 동기를 설명했습니다. 여러 방면, 특히 의사들과 얘기를 나누며 그 전망을 더 다듬어보려 합니다.

 

이 생각을 갖고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인물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이 선생도 흥미를 느낄 만한 인물 같은데, 이미 파악하고 있는지? Ibn Khaldun(1332-1406).

 

위키에서 살펴보는 중 국가를 “스스로 저지르는 것 이외의 불의를 가로막는 제도”라고 정의한 것이 인상적이군요. 그리고 ‘social cohesion’으로 번역된다는 ‘asabiyya’를 중심개념으로 삼았다는 점에 흥미가 많이 끌리고요. 이슬람의 14세기를 다시 보게 하는 발언들이 있습니다.

 

When civilization [population] increases, the available labor again increases. In turn, luxury again increases in correspondence with the increasing profit, and the customs and needs of luxury increase. Crafts are created to obtain luxury products. The value realized from them increases, and, as a result, profits are again multiplied in the town. Production there is thriving even more than before. And so it goes with the second and third increase. All the additional labor serves luxury and wealth, in contrast to the original labor that served the necessity of life.

 

Businesses owned by responsible and organized merchants shall eventually surpass those owned by wealthy rulers.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