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두 권 다 잘 살펴보지 못해서 그에 대한 의견은 못 보냅니다. <함께 읽는...>은 아직 구경도 못했고, <함께 쓴...>은 책장 어딘가 꼽혀 있을 텐데, 큰 관심을 두지 못했어요. 이 선생 얘기를 들으며 틈나면 훑어볼 생각이 납니다.
 
‘동-서’로만 봐 온 현대사에 ‘남-북’의 관점 적용할 필요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 관점에서 북한의 의미를 크게 볼 필요에 대해서도요. 단, 필요한 시각 조정의 폭에 대해 더 정밀한 생각이 필요할 것 같군요.
 
20여 년 전 유럽 친구들과 어울릴 때 ‘palimpsest’란 말을 신기하게 배운 생각이 납니다. 종이를 넉넉히 쓰던 동네에서는 중시되지 않던 개념이니 신기할 수밖에요. ‘팔림세스트’란 말을 일상적으로 쓰면서 현상의 중층성을 쉽게 파악하는 그들의 감각이 부러웠죠. ‘남-북’ 관점의 도입도 팔림세스트 차원에서 생각할 일로 봅니다.
 
중국사의 남-북 관계에 대해 나는 통념에서 벗어나는 해석을 시도해 왔어요. 대등한 주체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중국문명 전개 중의 하나의 변증법적 양상으로요. 북방세력의 대두를 중국문명 발전이 투영된 종속적 현상으로 보는 겁니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는 절대적 시비가 있을 수 없는 것일 텐데, 그렇게 볼 측면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남-북 관계에 관한 이 선생 글을 보며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내 관점을 무의식적으로 적용시켜 보게 되는데, 더러는 이 선생 관점을 더 강화해 주는 대목도 있는 것 같습니다.
 
‘탈중화’와 ‘재중화’라 하여 ‘중화’ 개념을 중심에 두는데, 나는 ‘중화’를 ‘천하체제’의 한 요소로 봅니다. 그래서 이 선생의 설명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같은 것을 내가 설명한다면 좀 다른 방식이 될 것 같은데, 그 사이의 득실을 생각해 보는 것은 내게도 득이 되고 이 선생에게도 득이 될 것 같네요.
 
안 해도 좋을 말, 또는 안 하는 편이 좋을 말인지 몰라도, 문체에 대해 한 마디만. 좀 너무 발랄해요. 백 선생이 칭찬보다 비판에 익숙해지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하는데, 내 뜻도 비슷한 겁니다. 절제. 쓰는 본인이 가진 자신감에 비해 읽는 사람이 너무 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에 내 자신감이 더 크고 더 단단하게 되었을 때 표현을 강화할 여지를 생각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안정된 자세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두 차롄가 글 올리는 것 볼 때마다 의견 적어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내 코가 석 자다 보니 그만큼 생각을 모을 틈을 잡지 못하고 지냈네요. 내 코 얘기 좀 할게요.
 
만났을 때 얘기하던 데서 생각을 많이 돌렸습니다. 그때는 이런 일을 해야겠다! 당위에 많이 쏠리고, 이런 식으로 해야겠다! 끼에 많이 매달렸죠. 현실주의적인 방향으로 뒤집어 생각을 다듬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록’보다 ‘사론’ 성격으로 생각이 기울고, 애초의 <동아시아의 20세기> 구상에 가까워졌습니다.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산책>을 보며 생각을 다듬었죠. 원래 생각했던 ‘실록’ 성격은 강 교수 작업에 많이 포괄되어 있습니다. 물론 내가 한다면 그에 보탤 의미가 없지 않겠지만, 중복으로 인한 낭비가 적지 않겠더라고요. 다른 이들이 하기 힘든 방향으로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길로 생각되었습니다.
 
지금은 <동아시아의 20세기> 구상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생각을 모으고 있어요. 시간과 공간이 축소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역사학도의 작업에는 그런 축소 방향이 적절하다는 생각도 하죠. 거대담론이 내 취향인데, 내가 살아온 사회와 시대에 대한 구체적 감각이 거대담론의 실질을 뒷받침해줄 수 있지 않을까...
 
연대기적 서술방법까지 포기하고 개설서 형태를 시도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것은 지키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의 역사에 대한 서술은 역사학도들보다 사회과학도들이 많이 해왔는데,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공헌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그런 목적에서는 연대기적 서술방법이 적합하다는 생각이죠.
 
이 선생 같은 후학들의 존재가 내 일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 세대에서는 역사학도로서 사회과학의 관점을 폭넓게 파악하는 사람이 적어서 할 일에 대한 강박을 많이 느껴 왔는데, 요즘은 한계를 마음 편하게 인정하고 내 몫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그 점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기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