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5. 09:03

이제 당분간 매주 한 번도 찾아뵙기 어렵게 될 사정을 앞두고 틈 나는 대로 다시 찾아뵈었다. 한 시간 남짓밖에 모시고 있지 못했지만, 생활의 틀이 며칠 사이에도 더 든든히 자리 잡으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착했을 때 노인들께서 현관 앞 테라스에 많이 둘러앉아 여흥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안경 할머니가 보이기에 다가가 인사했더니 돌아보고 반가워하며 어머니는 방에 계시다고 일러주신다. 휘둘러볼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 안 계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건 어머니가 계시고 안 계시고를 신경 써주신다는 표시 아니겠는가. 그런 분이 몇 분만 계시면 어머니 생활은 괜찮으신 거다.

다들 즐겁게 노시는 자리에 끼지 못하고 계신 건 무슨 까닭인가 조금 걱정도 되었다. 2층에 올라가니 간호사 서 선생이 얼굴 보자마자 알아보고 방을 옮기셨다고 일러준다. 스테이션 바로 옆방인데, 전의 방보다도 더 환하고 좋다. 전의 방에는 거동 못하는 분들만 계셨는데, 이 방은 어머니 침대 외에 모두 비어 있는 걸 보니 다 거동하시는 분들인가보다. 활동력 있는 분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생활환경은 나을 게 분명한데, 어머니가 활동력은 없어도 표현력이 넉넉하시니까 배려해 준 것 같다.

서 선생에게 물었다. 밖에 못 나가고 계신 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건 아닌가 하고. 서 선생이 수줍게 웃으며 걱정하실 것 없다고 말해준다. "엉치가 아프시대요.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계시더니." 간호사씩이나 하는 분이 그만 일에 수줍어까지 할 거 있나, 우스운 생각도 들었지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서 선생, 참 순박한 느낌이 드는 분이다. 모시고 왔을 때 수속을 밟느라고 잠깐 같이 얘기를 하면서는 좀 너무 고지식한 분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는데, 한 차례 더 올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진정한 애착을 조그만 말 한 마디에서도 느끼며 고마운 마음이 든다.

반야심경 외우고, 노래 몇 곡 하고, 오랫동안 해 온 일들을 권해 드리는 대로 따라 하시는데, 전에 병원 계실 때에 비해 열정이 다소 줄어드신 듯하다. 요모조모 기색으로 볼 때, 생활의 내용이 그때보다 다양하고 풍성해졌기 때문에 집중도가 줄어든 것 아닌가 생각된다. 같은 말씀을 몇 차례 반복하시는 패턴은 이제 더 분명히 이해가 된다. 병원에서보다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시면서 표현의 정형화를 통해 자극을 완화하시는 것이라 할까? 대여섯 살 된 아이들이 많이 보이는 표현양식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된다.

식사시간이 되어 휠체어로 모시고 나와 세 분 할머니가 먼저 앉아 계시는 식탁으로 모셔가는데,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이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것을 보며 마음이 크게 놓인다. 오신 지 열흘이 되었는데 여러 분들이 동거인으로 이만큼 흔쾌하게 받아주신다면 이제 이곳은 어머니의 집이 된 것이다.

어머니가 별난 분이시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별난 면이 대다수 동거인들에게 재미있게, 그리고 불편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데서 이 양노원의 운영이 잘 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 당신도 평생 묶여 계시던 긴장상태를 금년 초의 회복 이후 크게 벗어나신 것이 참 다행한 일이다.

집에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아 일을 하다가 한 차례 바람이라도 쏘일 생각이 들 때, 병원에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불식중에 들었다가 혼자 쓴웃음을 짓게 된다. 생각 나는 대로 바로 가뵐 수 없는 곳에 모셔놓으니 뵙고 싶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대로 마음에 고이게 된다. 이렇게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고 저절로 쌓이게 되다니, 이러다가 내가 정말 효자 돼버리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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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